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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숲에서의 축축한 야영… 그리고 생명의 안간힘 날짜 2018.07.22 19:08
글쓴이 고규홍 조회 917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대숲에서의 축축한 야영… 그리고 생명의 안간힘

  대숲에서 긴 이틀을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맑은 바람 소리 깊은 대숲이긴 해도 이 무더위를 견디기에는 그리 맞춤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예상하시는 대로 대숲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더위가 참……. 가만히 앉아 있어도, 살며시 드러누워도 온몸에 땀이 흐르는 조그마한 천막! 그 곁에 사람이 있고,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나무가 있고 풀이 있고 벌레가 있었으며, 온갖 여름 생명과 바람이 지어내는 숱한 소리가 있었습니다. 견디기 쉽지 않은 더위로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은 상쾌했습니다. 나무와 숲이 있어서입니다. 숲에 들어서 숲을 바라보고, 숲을 이야기한 이틀 간의 일정이었습니다. 야영지를 마련하고 돌아본 전라남도 나주 지역의 숲과 나무 이야기는 천천히 전해드리겠습니다.

○ 무더위의 밤 내내 그리워했던 아침햇살의 왕버들 숲길 ○

  이틀 동안 머무른 대숲 가까이에 너른 연못이 여럿 있고, 그 연못 가장자리의 길에는 왕버들이 줄지어 자랐습니다. 사십 년 정도 자란 나무여서, 그리 큰 나무라 할 수야 없겠지만, 자람이 바르고, 무성하게 가지와 잎을 펼치는 특징을 가진 나무여서 초록의 숲길을 걷는 느낌은 여느 큰 숲의 삽상함에 결코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한낮의 끓어오르는 더위는 왕버들 나뭇가지를 스쳐 연못 안으로도 깊숙이 스며듭니다. 바람조차 더위에 주눅 들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둡고 무더운 밤 지나고 이른 아침에 찾아 본 왕버들 숲길은 아름다웠습니다. 작은 천막 안에서 보낸 긴 밤 동안 내내 왕버들 숲길의 아침 풍경을 그리워 했던 듯합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아침햇살이 반짝입니다.

  연못 안에는 연꽃이 한껏 잎을 피워 올렸습니다. 언제 만나도 연꽃은 좋습니다. 옛 사람들이 애련설愛蓮說을 노래하며 연꽃을 가까이 하면서 연꽃을 ‘꽃 중의 군자君子’라 한 까닭을 이해할 만합니다. 아직 이 연못의 꽃송이는 채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연잎 무성히 솟아오른 물 가까이 다가서기가 쉽지 않은데, 멀리서도 꽃 피우기 위해 꼬무락거리는 힘찬 재우침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합니다. 물 속 곳곳에서 불쑥 내민 뽀솜한 너른 잎 위에 내려앉은 햇살은 잎 뒤에 살며시 숨은 꽃봉오리를 재우칩니다. 곧 피어날 이 연못의 무성한 연꽃송이들이 이뤄낼 아름다운 여름 풍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그러나 꽃 피어날 때까지 머물러 기다리지는 못하겠지요.

○ 모든 생명을 일으켜 세우는 생명의 양식 통로 ○

  가만히 보면 연꽃은 꽃 못지않게 잎사귀들도 아름답습니다. 잎 역시 한 생명체가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꼭 필요한 몫을 다 한다는 건 잎을 더 세밀하게 살펴보며 깨우치게 됩니다. 무엇보다 잎 표면 전체로 자잘하게 퍼져나간 잎맥의 흐름을 볼 때 그렇습니다. 사람을 비롯한 동물의 온몸에 퍼진 혈관을 떠올리게 되는 거죠. 생명의 그물입니다. 아무렇게나 퍼진 듯하면서도 분명한 규칙과 일정한 패턴을 가진 잎맥들, 그 안쪽에 생명의 양식을 지어내기 위해 가득 들어있는 물의 흐름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침 햇살을 거슬러 바라볼 때에 더 또렷하게 드러나는 잎맥의 흐름은 곧 생명의 흐름이고, 이 흐름이 곧 이 땅의 모든 생명을 일으켜 세우는 생명의 양식 통로입니다.

  바람도 없지만 연못 가장자리에 우뚝 솟아오른 파초의 넓디넓은 잎이 너울너울 춤춥니다. 그냥 공기의 흐름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흔들리는 건지, 제 무게가 겨워 끄덕거리는 건지, 바람을 불어오기 위해 제 몸의 에너지를 이용해 스스로 움직이는 건지, 분명히 가늠할 수는 없습니다. 알게 모르게 이 땅의 모든 생명을 살아있게 하는 가장 진실한 춤사위라는 것만 생각으로 짚어볼 뿐입니다.

  무더위의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시작’이라고도 합니다. 아예 일기예보에 귀 막고 눈 감아야 할 날들이 이어집니다. 그래도 이 더위 속에 생명을 더 푸르게 이어가려 애면글면 안간힘하는 이 땅의 모든 식물들의 싱그러움을 한번 더 바라보며 건강하게 이 여름 보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생명이 더 생명다울 수 있는 날들을 생각하며 7월 23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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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신명기 (2018.07.25 08:53)
오늘은 제가 일하는 곳에도 나뭇잎이 흔들립니다.
바람이 왔다는 뜻이겠지요.
요즘은 이틀만 지나도 잎을 땅을 향해 늘어뜨린 녀석들이 있어
하루가 멀다하고 물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일터 작은 숲에 있는 식물들에게 물을 주는 일은
선생님 말씀처럼 핏줄에 피가 돌게 하는 일이니
생명을 위한 헌혈이나 마찬가지네요~^^
김동락 (2018.07.25 11:26)
대숲에서의 경험이 훗날 더 많이 이야기 거리가 될거라 믿습니다. ㅎㅎ
고규홍 (2018.07.27 09:47)
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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