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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뭇잎 다 떨어지게 한 첫 추위를 고단하게 맞이하며 날짜 2020.11.22 23:28
글쓴이 고규홍 조회 697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나뭇잎 다 떨어지게 한 첫 추위를 고단하게 맞이하며

  겨울이 참 고단하게 다가옵니다. 기온이 영도씨 아래로 떨어진 날씨였으니 첫 추위라 해도 되겠지요. 추웠던 한 주일을 참 고단하게 지나왔습니다. 무엇보다 ‘도구’와의 관계가 지어낸 고단함이었습니다. 차가운 아침 바람으로 다시 시작하는 한 주일의 아침, “도구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합니다. 순전히 도구로 인한 고단함에 지친 때문입니다. ‘도구’가 무엇이든 ‘도구’를 포기한다는 건 ‘호모 사피엔스’임을 포기하는 게 될 수도 있으니 그럴 수야 없겠지요. 싫어도 정말 싫어도 어쩌는 수 없이 다시 도구를 돌아보며 한 주일을 시작해야 할 겁니다.

○ 도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호모 사피엔스의 운명 ○

  지난 주 초에는 컴퓨터가 멈췄습니다. 얼마 전부터 컴퓨터의 소음이 심상치 않았던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눈앞에 쌓인 일들을 우선 마무리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는 하루 이틀 미뤘지요. 문제가 있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버텨주리라 생각하고 조마조마하며 며칠을 보내던 어느 순간 컴퓨터가 대책없이 멈췄습니다. 서둘러 멈춰버린 컴퓨터를 재가동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적지않은 데이터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일단 사라진 데이터가 뭔지를 알아야 했습니다. 어떤 데이터가 사라진 건지를 알아야 사라진 데이터를 포기할지 말지를 결정할테니까요. 사나흘이 그렇게 지났습니다.

  없어서는 안 되는 자동차도 문제였습니다. 컴퓨터의 고장 기미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타이어 교체 시기가 지났다는 것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요. 그래도 눈 내리기 전까지는 별 탈 없이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많은 비가 쏟아지던 지난 목요일 이른 아침에는 먼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표면의 홈이 거의 다 닳아버린 타이어는 물 고인 자리를 지날 때마다 대책없이 미끄러지며 운전자의 통제를 벗어났습니다. 갈 길은 먼데 통제되지 않고 미끄러지는 타이어! 고속도로에서 비상등을 켜고, 시속 60킬로미터쯤으로 서행해야 했습니다.

○ 아무리 미소한 부분이라 할지라도 전체의 일부라는 이치를 ○

  돌아보면 ‘도구’가 문제가 아니고, ‘도구’를 이용하는 방식이 잘못 된 것임을 잘 압니다. “도끼 날을 벼릴 시간이 없다”며 무뎌진 도끼로 나무를 찍어내던 나무꾼 이야기가 생각날 수밖에요. ‘미디어’의 의미를 이야기한 마샬 맥루한도 생각났습니다. 컴퓨터는 내 글쓰기 도구의 확장이고, 자동차는 내 발과 다리의 확장, 도구는 결국 내 몸과 다름 없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다른 부분은 모두 멀쩡하고, 타이어 하나만 문제였지만, 타이어 하나는 그냥 하나가 아니라, 자동차가 제대로 움직이게 하는 하나의 중요한 부분이겠지요. 컴퓨터도 그럴 겁니다. 하드디스크의 아주 작은 파티션 일부만 망가진 것이지만, 결국 그 작은 부분이 전체를 멈추게 한 것일 겁니다. 결국 부분은 그냥 하나의 부분이 아니라 전체의 하나라는 깨달음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이 그렇겠지요. 아무리 미소한 한 부분이라 해도 그는 결코 작은 부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제대로 살아가게 하는 소중한 부분이라는 아주 간단한 사실을 되짚어 보게 됩니다. 이번 한 주는 아마도 제 몸의 연장이고 확장인 도구들을 돌아보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될 겁니다. 자동차, 컴퓨터, 그리고 ‘불안한 조짐’을 보이는 휴대전화기도, 태블릿도, 만년필도, 심지어 가방과 신발까지도……. 고칠 수 있는 건 최대한 성의를 다해 고치고, 바꿀 건 과감하게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시간도 돈도 많이 드는 일입니다만 ‘무딘 도끼날을 휘두르는 나무꾼’의 오류만큼은 피할 채비를 단단히 하겠습니다.

○ 이제 모두 떠나버린 가을의 흔적들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

  가을 들어 백두대간수목원에서 몰아쳐서 진행한 열 차례의 ‘백두대간 나무기행’ 프로그램은 지난 주말에 모두 마쳤습니다. 곡절이 많았습니다만 잘 마무리했습니다. 특히 우리 《나무편지》를 아껴주시는 분들의 적극 참여가 큰 도움이 됐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에 담은 사진은 이번 백두대간 나무기행 과정에서 함께 찾아본 경북 봉화군의 ‘봉화 한수정’ 풍경입니다. 제가 처음 찾았을 때에 무성하던 나뭇잎들이 어제는 모두 떨어졌습니다. 계절이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바이러스가 다시 또 우리를 고단하게 하는 날입니다. 그래도 적지않은 낙관적인 기미들도 있습니다. 몸과 마음 단단히 하시고, 이 겨울 더 평안하게 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더 좋은 도구와의 평안한 어울림을 생각하며 11월 23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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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신명기 (2020.11.26 14:43)
도구가 우리 몸의 확장이고, 모든 것은 부분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고,
일부가 멈추면 전체가 멈출 수밖에 없는 구조.
사회도, 생명체도~~~
뜨거운 것이 밀려들었습니다~~
교수님도 저같은 사람들에게는 도구의 확장으로 느껴집니다.
다 찾아다닐 수 없고, 다 읽을 수 없고, 다 찍어둘 수 없, 다 쓸 수 없는
그 많은 것들을 대신해 주는 도구의 확장~~
그래서 교수님 건강하시기를 빌고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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