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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절집의 일주문이 되고 천왕문이 되고 해탈문이 되어…… 날짜 2017.07.01 14:14
글쓴이 고규홍 조회 336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절집의 일주문이 되고 천왕문이 되고 해탈문이 되어……

  얼마만인지 잘 헤아려지지 않습니다. 참 오랜만에 일요일 하루를 일 없이 보냈습니다. 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하루 쯤 쉬고 싶었기에 밀린 일 꾸러미가 잔뜩인 일정표를 팽개치고 그냥 눈 감았습니다. 대학의 학기말 평가의 가장 급한 일까지 처리하고나자 조금은 늘어지는 몸 상태가 그렇게 만든 모양이었습니다. 눈 감고 누워서 일요일 오전 느지막한 시간까지 늘어져 보내고 주섬주섬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버릇처럼 길을 나섰습니다. 그 길에 어김없이 나무가 있었습니다. 아니, 나무가 보고싶어 길머리를 그리 잡았을 겁니다.

  나무가 좋은 강화도 고려산의 백련사입니다. 오래 된 절집이지만 규모는 비교적 작은 편인 오붓한 절입니다. 절집보다 찻집이 먼저 떠오르는 곳이기도 합니다. 거개의 절집이 그러하지만 절집으로 들어서는 숲길이 좋습니다. 잎갈나무 Larix olgensis var. koreana (Nakai) Nakai 가 늘어선 이 숲길은 특히 가을 되어 붉게 단풍 든 잎갈나무 잎이 수북이 떨어질 때의 풍경이 참 좋습니다. 마치 바늘잎카펫이 곱게 깔린 듯한 아름다운 길입니다. 이 길을 따라 절집을 향해 들어가면 길손을 먼저 반겨 맞이하는 건 나무입니다. 크고 오래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마치 절집의 일주문처럼 서 있습니다. 위에 연달아 올린 두 사진이 그 나무들입니다. 두 그루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 있습니다.

  일주문 느티나무를 지나쳐 절집 안으로 들어서면 자동차를 세울 수 있는 너른 터가 나오고 그 가장자리에는 찻집이 있습니다. 요즘처럼 뜨거운 날씨에는 찻집 안보다는 찻집 바깥에 테라스 형으로 보태 놓은 자리들이 좋습니다. 그 자리에 앉아 넉넉한 품의 찻집 보살님이 내다 주는 차를 마시며 초록 숲을 내다보면 마음은 이내 평화로워집니다. 초록이 건네주는 평화로움이지요. 찻집 바깥의 가파른 언덕 쪽에는 지붕까지 얹어 더 오붓한 자리가 있습니다. 그 언덕 위쪽에는 한 쌍의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한 쌍이라고는 했지만 두 나무의 나이는 차이가 많이 납니다.

  두 느티나무 가운데에 하나는 무척 오래 된 나무입니다. 지금은 줄기 안쪽의 동공 부분을 메우는 외과수술을 한 덕에 얼핏 봐서는 나무의 연륜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물론 가까이에서 나무 줄기를 잘 살펴보면 알 수는 있습니다. 오래 전에 찾았을 때에 이 나무는 줄기의 껍데기 부분만 겨우 남아있었습니다. 뻥 뚫린 나무 줄기 안쪽으로는 어른 두어 사람이 충분히 들락날락할 수 있을 정도였지요. 그 뒤에 껍질만 남은 줄기의 한쪽 부분은 완전히 썩어 없어졌고, 그 상태에서 외과수술로 나무의 텅빈 줄기 부분을 채워준 겁니다. 하여 예전보다 더 건강해 보입니다. 절집의 형식대로라면, 이 한 쌍의 느티나무는 사천왕상이 웅크리고 있는 천왕문이라고 해도 될 겁니다.

 

  초입의 일주문 느티나무, 언덕배기의 천왕문 느티나무를 지나쳐 절집에 들어서면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높이가 20미터 가까이 되는 이 은행나무는 앞의 느티나무들에 비하면 어린 나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이 은행나무는 1947년에 이 절집에 주석하던 주지, 백련스님이 심은 나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고작 70년밖에 안 된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1990년 즈음에 갑자기 여느 은행나무로 치면 삼백 년 쯤 된 나무의 크기와 맞먹을 정도로 빠르게 자랐답니다. 형태로 보아서는 그리 대단할 것 없는 나무이지만, 작은 절집 백련사의 풍경을 싱그럽게 하는 대표적인 나무로 봐야 할 겁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강화 백련사는 고구려 장수왕 때에 지은 절집이라고 합니다. 이야기대로라면 강화도 전등사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절집 가운데 하나가 되겠지요. 장수왕 4년인 서기 416년에 천축조사가 고려산을 두루 돌아보며 절집 자리를 찾다가 오색연꽃을 산 위로 날렸다고 합니다. 연꽃이 떨어진 다섯 곳에 제가끔 절을 세웠는데, 그 중에 하얀 연꽃, 즉 백련이 자리잡은 곳이 바로 지금의 백련사 자리라는 이야기입니다. 한때에 팔만대장경이 이 절집에 봉안된 적도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작은 절집이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 않아 오붓하고 한적해서 더 좋은 일요일 한낮의 절집 나무 풍경에 가만히 묻혀듭니다.

  그렇게 평안한 일요일 한낮의 시간이 고요히 흘러갑니다. 숲에 잦아든 시간도 쉼 없이 흘러 마침내 마지막 한 송이만 남았던 시계꽃도 서서히 떨어지고, 새로 다가오는 시간을 준비하겠지요. 사람은 다시 저자로 흘러나가야 할 시간입니다.

 
 

- 오랜 만에 일요일을 일요일처럼 보내고 맞이한 월요일, 7월3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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