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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삼천미터 높이의 설산 지대에 살아있는 생명의 숨결 날짜 2017.06.18 19:43
글쓴이 고규홍 조회 319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삼천미터 높이의 설산 지대에 살아있는 생명의 숨결

  표고 삼천미터 높이의 설산에 오르는 게 그리 흔한 일은 아니겠지요. 삼천미터가 넘는 산이 여럿 있는 일본의 숲을 찾으며, 그만큼 높은 설산을 트레킹하려 생각하는 건 당연한 욕심이지 싶습니다. 오월 중순의 따뜻한 봄날, 삼천미터의 설산에 올랐습니다. 여전히 하얀 눈이 쌓여 있었고, 눈밭에는 스노보드를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맵지 않은 바람이지만, 하얀 눈을 스치며 불어오는 바람은 상큼했습니다. 삼천미터 높이의 노리쿠라다케 乘鞍岳 입니다.

  노리쿠라다케를 찾는 일이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일본의 북알프스라고 불리는 지역의 제일 남쪽에 위치한 노리쿠라다케는 일본에서 가장 쉽게 오를 수 있는 삼천미터 봉우리라고 해야 할 겁니다. 자동차를 이용해 이를 수 있는 도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도로는 일본에서 자동차가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도로라고 합니다. 이 도로의 맨 끝 지역인 노리쿠라 고원 관광센터까지는 버스와 택시만 갈 수 있습니다. 거친 호흡 한번 거치지 않고 삼천미터 고지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

  도로 일부 구간의 양 옆으로는 8미터 높이로 아직 눈이 그대로 쌓여있습니다. 자동차보다 훨씬 높게 형성된 눈 벽을 통과하는 순간의 상쾌함, 멀리 내다보이는 일본 북알프스 연봉의 전망이 이루는 장엄함이 어우러진 특별한 코스입니다. 경사도 급하고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을 천천히 오르는 동안 도로 가장자리에는 힘겹게 자전거를 타고 오르는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대단한 체력과 인내심으로 오르는 거죠. 그들을 위한 자전거 휴게소도 곳곳에 있습니다.

  눈 쌓인 노리쿠라다케 고원의 싱그러운 바람 맞으며 삶을 이어가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눈잣나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설악산을 중심으로 그 북쪽에 위치한 높은 산의 꼭대기 부근에서 볼 수 있는 잣나무 종류의 하나이지요. 매운 바람을 피하느라 곧추 서서 오르지 않고, 땅바닥으로 기어가며 자라는 나무입니다. 한 그루는 대개 5미터 정도까지 뻗어나갑니다. 땅을 기며 자라는 나무이지만 평지에 심어 키운다면 똑바로 서서 자라기도 합니다. 주변 환경 조건에 맞추어 살아가는 나무들의 생존전략의 결과입니다.

  군락을 이룬 눈잣나무의 열매를 먹이로 살아가는 동물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눈이 가장 많이 오는 지역 가운데 하나인 노리쿠라다케에 사는 특별한 동물입니다. 일본의 특별한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뇌조 Lagopus muta japonica’ 라는 새입니다. 비둘기보다 조금 큰 몸집을 가진 이 새는 원래 북극 지역에서 살던 새인데, 2만 년 전의 빙하기 때에 일본으로 건너왔다고 합니다. 대개는 다시 돌아갔지만, 일부는 이곳에 남았습니다. 그래서 이곳 노리쿠라다케 지역은 뇌조 종류가 살아가는 지구상의 최남단 지역이 됐습니다. 눈 덮인 추운 곳에서 살아가는 뇌조는 이 지역의 식물들 특히 눈잣나무의 열매를 주요 먹이로 취하며 살아갑니다.

  추울 뿐 아니라, 사철 내내 눈이 덮여 있어 먹을 것을 찾기 어려운 혹독한 환경조건이지만 그곳에도 생명은 살아있습니다. 새들은 자신의 몸을 추위와 눈보라에 맞추어 살아가고, 나무는 그들에게 먹이를 나눠주며 자신의 생존영역을 넓혀가며 더불어 살아갑니다. 그밖에도 이 지역은 여러 종류의 고산식물이 많이 자라고 있다고 하는데, 짧은 트레킹 일정으로는 눈잣나무 군락지를 찾아보았다는 정도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의 숲 트레킹 일정 중에 만난 또 하나의 큰 나무가 있습니다. 일본측백나무 노거수입니다. 물론 일본측백나무는 편백, 측백나무 등과 눈에 띄는 특별한 차이가 두드러지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그냥 ‘편백’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적지 않은 모양입니다만, 서로 다른 나무입니다. 일본어 이름으로는 네즈코(ネズコ)라고 부르는 나무로 학명은 Thuja standishii (Gordon) Carriere 입니다. 편백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함께 들어올 수도 있었지 싶은데,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은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온천 지역인 히라유 平湯 주변 숲 깊은 곳에 서 있는 이 노거수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숲의 거인 100선’에 당당히 들어있는 큰 나무입니다. 나무를 소개한 안내판에는 나무의 나이가 1천 년이나 된 것으로 나옵니다. 나무의 높이는 23미터이며, 나무 줄기 둘레는 7.6미터로 기록돼 있습니다. 같은 종류의 나무가 보여주는 생육 상태나 성장 속도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더 이상의 추측은 어렵지만, 겉 모습만으로도 그의 생명이 지나온 세월의 더께는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하긴 천년의 삶이 보여주는 삶의 무늬와 그보다 적은 오백 년 쯤의 삶의 무늬를 백년도 채 살지 못하는 사람의 눈으로는 구별하는 건 불가능하겠지요.

  나무를 처음 본 순간, 야릇하게도 우리나라 제주도의 구좌읍 평대리 비자나무 숲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원조 비자나무가 떠올랐습니다. 팔백 년 수령을 가진 평대리 비자나무 숲의 가장 큰 나무 말입니다. 얼핏 보아서 그 원조 비자나무의 줄기 부분과 비슷한 인상을 가진 때문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분명 서로 다른 모습입니다. 나무는 천년을 살아오면서 부러진 줄기가 많았을 뿐 아니라, 때로는 줄기의 어떤 부분에 깊은 상처가 나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돌보는 이 없이 나무는 스스로 깊은 상처들을 치유하느라 곳곳에 둥글고 커다란 혹덩어리를 돋워내기도 했습니다.

  뿌리 부근에서는 죽어가는 여러 줄기와 무관하게 새로운 줄기인 맹아지가 솟아나왔습니다. 원줄기의 굵은 몸통이 꿈틀거리며 더디게 몸피를 늘리는 동안 새로 솟아난 맹아지는 기운차게 뻗어올랐습니다. 굵은 원줄기와 대조를 이루며 곧게 솟아오른 맹아지의 기개가 옛 것과 새것의 의 대조를 이루며 세월을 버텨냈습니다. 부러진 가지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러지는 가지의 숫자만큼 많은 새로운 가지를 돋워내며 나무는 긴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담아온 생명의 이야기를 멀리서 찾아온 나그네에게 두런두런 들려줍니다. 가만히 서 있지만 나무의 꿈틀거림이 느껴집니다. 산 깊은 곳으로 찾아든 바람결 따라 나무의 생명 이야기는 은은히 퍼져나옵니다.

  천년의 원시림, 혹은 삼백년 넘게 사람의 목숨과 바꿀 만큼 엄격하게 지켜온 인공림, 그 곁에서 살아나온 천년 칠엽수, 천년 일본측백 등,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나무와 숲입니다. 짧은 일정 동안 만났던 생명 이야기를 이 아침의 《나무편지》로 더 많은 분들과 함께 기억하렵니다. 고맙습니다.

 

- 때이른 더위에 설산의 싱그러운 바람 소리를 그리며 6월 19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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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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