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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몰민들의 아픔을 치유하듯 넉넉히 사람살이를 품은 나무와 숲 날짜 2021.10.04 19:04
글쓴이 고규홍 조회 390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수몰민들의 아픔을 치유하듯 넉넉히 사람살이를 품은 나무와 숲

  길었던 명절 연휴에 이어 다시 달콤한 연휴가 이어졌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다시 한글날 공휴일, 다음 주에도 연휴는 이어집니다.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는 교통정체를 피해 연휴 바로 전 날, 나무를 찾아서 길 위에 올랐습니다. 충북의 제천 지역이었습니다. 면적으로 치면 비교적 넓은 곳이라 할 수 있는데, 큰 나무를 기대만큼 많이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나무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어 그리 아쉽기만 한 답사는 아니었습니다. 길 위에 내려놓은 시간에 비하면 많은 나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늘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는 〈제천 상천리 소나무〉를 비롯해 향나무 느릅나무 물푸레나무 등 크고 아름다운 나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 단풍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제천 금수산 자락의 호반 마을 솔숲 ○

  여러 나무 가운데에 오늘은 〈제천 상천리 소나무〉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는 처음에 한강 위쪽의 마을이어서 천상(川上)리로 부르다가 나중에 상천리로 바뀐 마을입니다. 청풍호반에 자리 잡은 오붓하고 아름다운 상천리는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싼 해발 1015미터의 금수산에서 청풍호 기슭까지 이어지는 급경사의 산자락에 자리잡은 마을입니다. 마을 어귀의 솔숲을 휘감아 도는 큰 개울인 상천천은 금수산에서 발원하여 상천리 마을회관 앞을 거쳐 청풍호로 흘러들고, 꽤 길게 이어지는 마을 안쪽의 비좁은 골목은 경사와 굴곡이 험해서 조마조마하게 지나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처음에 〈제천 상천리 소나무〉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보호수 목록에 표시된 주소지가 ‘도로’ 구역이어서, 워낙 넓은 지역을 두루 샅샅이 살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목적지를 정하지 못해 헤매는 동안 조금은 짜증이 날 수도 있었겠지만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 그냥저냥 가을 한낮의 따뜻한 햇살을 즐기며 천천히 오갔지요. 한참을 지나다가 마을 어른들을 찾아 뵙고 여쭐 요량으로 ‘마을회관’으로 길머리를 잡았습니다. 아하! 마을 회관 입구의 조붓한 골목길에 들어서자 곧바로 싱그러운 솔숲이 눈길을 사로잡았고, 한눈에도 그 작은 솔숲의 중심이 되는 커다란 소나무, 바로 오늘 《나무편지》의 〈제천 상천리 소나무〉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 처음부터 아예 마을 쉼터로 여기고 소나무 여러 그루를 심어 키운 숲 ○

  마을회관 앞 나무 그늘에서 담소하시던 마을 어른들이 낯선 나그네를 반겨 맞이하셨습니다. 나무를 찾아 헤맸다는 태를 내지 않고, 마치 잘 아는 나무를 찾아왔다는 투의 인사를 올리자, “잘 보고 가라”고 반기셨습니다. 이야기 속에는 마을을 상징하는 소나무에 대한 은근한 자존심이 그대로 배어있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지요. 급경사지에 이루어진 마을의 솔숲은 마을회관에서 다시 급경사 아래쪽으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천천히 솔숲에 들어 헤아려보니 딱 열 그루의 크고 작은 소나무가 옹기종기 마을이 거쳐온 살림살이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솔숲이 자리잡은 언덕빼기를 빼놓고 앞으로는 너른 논밭이 이어졌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 솔숲 자리는 애초에 마을 쉼터로 놔두고 소나무를 심어 조성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열 그루 가운데 유난히 큰 한 그루의 소나무는 지정번호 ‘제천 90호’로 지정한 보호수 〈제천 상천리 소나무〉입니다. 나무는 높이가 십오 미터, 가슴높이 줄기둘레가 사 미터쯤 되는 큰 나무입니다. 곁의 다른 소나무들에 비해서 월등히 큰 나무입니다. 물론 솔숲의 다른 아홉 그루의 소나무들도 그리 작은 나무는 아닙니다만, 가운데에서 숲의 중심을 잡고 서 있는 소나무가 워낙 커서 비교적 작아 보일 뿐입니다. 아홉 그루의 소나무 가운데에 특히 눈에 들어오는 나무는 보호수로 지정한 소나무 곁, 언덕 마루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나무입니다. 이 소나무는 처음에 줄기를 거의 수평으로 뻗어냈다가 직각으로 방향을 틀어 수직으로 올랐는데요, 수직으로 오른 줄기와 가지는 이미 고사했고, 여전히 수평으로 뻗은 가지만 생생히 살아있습니다. 이 소나무의 뿌리 부분의 꿈틀거림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로 아래의 사진이 그 나무입니다.

○ 오랫동안 살던 집을 떠나온 마을 사람들의 치유 공간으로 남아 ○

  사실 이 마을, 상천리에 지금 살고 계신 많은 분들은 오랫동안 살던 집을 떠나온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1985년에 충주댐을 건설할 때에 산 아래 마을인 상천리 거주지역의 상당 부분은 수몰되게 되었지요. 그래서 수몰을 피할 수 있는 높은 급경사 지역으로 옮겨온 수몰민들인 겁니다. 까닭에 마을 어른들도 제천 상천리 소나무와 솔숲의 유래와 배경에-대해 속시원히 이야기해주실 분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무와 숲에 대한 자부심은 여느 마을 못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제천 상천리 소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된 뒤에 나무 앞에 세워둔 “마을의 자랑이자 쉼터”라는 빨간색 입간판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제천 상천리 소나무〉는 마을의 자랑인 솔숲의 터주대감입니다. 가장 오래 됐고, 가장 큰 나무입니다. 높이가 십오 미터에 이른다고 했습니다만, 처음에는 그보다 훨씬 컸을 겁니다. 지금의 나무 상태를 보면 중심 줄기의 꼭대기 부분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오래 전에 부러져나갔습니다. 그 바람에 나무의 높이가 줄어든 겁니다. 게다가 남서쪽으로 뻗은 굵은 가지가 큰 바람에 찢겨나간 흔적도 뚜렷이 나타납니다. 지금은 충전재로 메운 외과수술 흔적이 유난스럽게 드러나있는데, 그 흔적만으로도 이 자리에서 뻗어나왔던 가지의 규모와 위용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줄기 꼭대기와 이 나무에서 가장 굵었을 가지가 부러진 바람에 나무는 원래의 위용을 놓친 셈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규모와 자태만으로도 충분히 융융한 나무입니다.

○ 단풍 아름다운 금수산 단풍 풍경과 함께 다시 찾아야 할 숲 ○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마을숲은 오랫동안 쉼터로 이용되어왔습니다. 지금도 보호수인 소나무 바로 앞에 다섯 개의 긴의자를 놓았습니다. 재미있는 건 다섯 개의 긴의자를 모두 나무를 바라보는 쪽으로 놓았다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긴의자를 놓는 경우가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만, 이 자리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조망이 워낙 훌륭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나무를 바라보는 쪽으로 배치했다는 건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솔숲 언덕 아래 쪽으로는 앞에서 이야기한 상천천이라는 큰 개울이 흐릅니다. 솔숲 언덕 아래 쪽의 풍광이 좋을 수밖에요. 그래서 언덕 아래쪽에는 산책로를 내고, 그 자리에 나무 데크를 깔아 편안하고 상큼한 산책이 가능하도록 배려했습니다.

  큰 나무 답사가 죄다 그렇지만, 〈제천 상천리 소나무〉와 그 솔숲에서는 발길을 떼어놓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열 그루의 소나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지만, 그밖에도 나무 곁에 서서 언덕 앞으로 펼쳐지는 풍광을 내다보는 일도 더 없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상천 마을을 품고 있는 금수산은 특히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곳으로 널리 알려진 명산 가운데 하나입니다. 상천리 솔숲에 주저앉아 금수산 단풍을 바라보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이 될지 가만히 상상해 봅니다. 오래 기억해두고 다시 또 찾아오게 될 소나무와 솔숲이었습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연휴 끝자락입니다. 이 비 그치면 나무들은 더 서둘러 울긋불긋 단풍을 올리겠지요. 그 아름다운 단풍 길에서 만나게 될 나무를 생각하며 다시 한 주를 시작합니다. 비 피해 다녀올 이번 주의 아름다운 나무 이야기, 다음 주에도 연휴 뒤에 띄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십시오!

- 10월 5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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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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