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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살림에 너무 가까웠기에 살아남기 어려웠던 상수리나무 날짜 2021.09.26 11:18
글쓴이 고규홍 조회 523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우리 살림에 너무 가까웠기에 살아남기 어려웠던 상수리나무

  추석 명절 잘 쇠셨는지요. 어머니 아버지 계신 고향에는 잘 다녀오셨겠지요. 명절 연휴 지나고 곧바로 코로나 감염 확진자 숫자가 심각한 수준으로 늘어났다는 뉴스로 걱정이 깊어지는 가을 들머리입니다. 연휴 지나고 다시 답사에 나섰습니다. 아직 고향 마을 곳곳에는 ‘고향 방문을 반긴다’거나 ‘고향에 오지 않아도 건강하게만 지내라’는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오늘 《나무편지》는 고향 마을 가운데 하나인 마을 이야기부터 시작하렵니다. 엊그제 다녀온 〈청주 흥덕구 강내면 저산리〉라는 풍요로운 농촌 마을입니다. 마을 이름이 저산리(猪山里)리인데요. 여기의 ‘저’는 돼지 혹은 멧돼지를 뜻하는 한자입니다.

○ 스님께 은혜를 갚은 멧돼지 가족이 모여 사는 마을 뒷산의 전설 ○

  저산리는 마을 동쪽에 있는 은적산을 예전에 부르던 이름이 ‘저산(猪山)’ 혹은 ‘계산(鷄山)’이어서 붙은 이름입니다. 이 은적산에는 멧돼지와 관련한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옵니다. 오래 전에 한 스님이 마을에서 하룻밤 묵으며 밤에 목욕을 하는 중에 은적산에서는 온화한 빛이 내리쬐고, 들녘에서는 살기 등등한 사나운 빛이 맞서는 광경을 봤다고 합니다. 멀리서 비쳐오는 빛의 낌새로는 두 빛이 맹렬히 싸움을 치르는 듯해 보였습니다. 스님은 두 빛이 평화롭게 화해하기를 부처님께 빌며 밤을 새웠습니다. 아무래도 온화한 빛이 사나운 빛을 이기고 마을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한 것이겠지요.

  이튿날 스님은 마을 뒷산을 넘어가는데, 멧돼지 한 마리가 달려오더니 스님을 덮치고는 곧바로 스님을 안고 언덕 아래로 굴렀습니다. 그 순간 스님이 지나던 자리에 서 있는 소나무 위에서 커다란 독사 한 마리가 뚝 떨어졌습니다. 독사가 스님을 공격하려던 위기의 순간을 멧돼지가 모면하게 한 것이었지요. 멧돼지는 독사를 죽이고는 총총 사라졌습니다. 스님은 생명을 구해준 멧돼지를 찾아나섰는데, 개울 근처에서 멧돼지가 새끼들과 함께 누워 있다가 스님께 경의를 표했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전날 밤 은적산에서 내리쬐던 온화한 빛이 멧돼지 가족이 내는 빛이었고, 들녘의 사나운 빛은 독사가 낸 빛이었던 것이라는 걸 스님이 알게 됐지요. 멧돼지는 스님의 기도로 위기를 넘긴 걸 감사하는 마음으로 스님을 보호했던 것이었습니다. 사실을 알게 된 뒤로 사람들은 이 산을 멧돼지가 사는 산이라 해서 ‘저산(猪山)’, 또 멧돼지가 은혜를 갚은 산이라고 해서 ‘은적산(恩積山)’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 높이가 이십오 미터를 넘고 수려한 수형을 갖춘 보기드문 상수리나무 ○

  은적산은 해발 이백 미터를 살짝 넘는 낮은 산이지만,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사방의 풍경이 수려한 산입니다. 또 산 정상에는 2015년 4월 17일 청주시의 향토유적 제84호로 지정한 ‘청주 단군성전’도 있습니다. 이 단군성전은 일제 침략자들이 물러간 뒤에 청주 지역의 애국지사들이 중심이 되어 나라의 기운을 되살리기 위해 국조인 단군의 제단을 봉축하고, 그 뒤로 꾸준히 보완하여 1974년에 완공한 것입니다. 정상에 오르는 길목에서 만나게 되는 무너진 성터는 ‘저산성’의 흔적으로, 고려시대 때 지은 성으로 짐작되지만, 지금은 성터가 무너앉아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습니다.

  아하! 아직 나무 이야기를 시작도 하지 않았네요. 오늘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는 나무는 상수리나무입니다. 2009년 10월 15일에 보호수 청주135호로 지정한 〈청주 저산리 상수리나무〉입니다. 나무는 무엇보다 전체적인 생김새가 무척 근사합니다. 나무 높이는 이십오 미터에 이를 만큼 큽니다. 아마도 상수리나무로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몇 그루의 나무 가운데 하나일 겁니다.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사 미터에 조금 못 미치는 규모여서 줄기는 그리 굵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무의 나이가 보호수로 지정한 2009년에 측정한 바에 따르면 이백오십 년에 불과합니다. 문화재로 지정한 여느 나무들에 비하면 아직 청춘인 나무이지요.

○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상수리나무 가운데 하나 ○

  젊은 나무라 해도 그 위용은 만만치 않습니다. 곧게 솟아오른 줄기의 칠 미터 부근에서 굵은 가지가 뻗어나오면서 사방으로 고르게 수관을 펼쳤는데, 그 폭이 대략 이십오 미터 가까이 됩니다. 상수리나무로서는 드물다고 할 정도로 수려한 수형을 가진 나무입니다. 젊은 나무인 까닭에 아직 그가 치른 생로병사의 흔적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아주 건강하다고 해도 됩니다. 심지어 노거수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외과수술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나무가 겪은 상처라고 굳이 짚어보자면 사 미터쯤 높이에서 뻗어나왔던 세 개의 가지가 부러진 흔적 뿐입니다. 그것도 오래 전에 자연적으로 부러진 가지여서 수형의 균형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나무 바로 앞에는 작물을 키우는 비닐하우스가 여러 채 들어서 있지만, 공간이 넉넉해서 나무에 미치는 영향은 없습니다. 나무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들녘의 길가에 서 있는데,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이 아니어서 나무의 생육 상태 보존에 매우 양호한 환경을 가졌으며,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이 나무를 잘 보호한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나무 곁으로 길을 내면서도 나무의 생육 공간을 배려해 넉넉한 공간을 남겨두고 도로를 냈다는 점도 돋보입니다. 나무 앞의 농로는 콘크리트 포장을 했지만,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나무 주변의 공간을 넉넉히 배려한 것이 눈에 띕니다. 또 나무와 농로 사이에는 물길이 흐르는데, 사람들이 나무 곁에 다가가기 쉽도록 물길 위로 콘크리트로 간단한 구조물을 설치했다는 것도 마을 사람들의 나무를 향한 애정을 살필 수 있는 대목입니다.

○ 땔감으로, 먹을거리로 쓰이는 바람에 오래 살아남기 힘들었던 나무 ○

  상수리나무는 옛 사람들이 ‘도토리나무’라고 부르던 참나무과의 나무 가운데 한 종류로, 우리 민족 문화와 매우 친근한 나무입니다. 우리나라의 전국 어디에서나 잘 자랄 뿐 아니라, 이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인 도토리는 특별히 상수리라는 이름으로 부르지요. 참나무과의 나무들에서 맺히는 여느 도토리 가운데에는 상수리나무의 도토리가 가장 맛이 좋다고 합니다. 특히 참나무과 나무들이 전반적으로 크게 잘 자란 우수자원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청주 저산리 상수리나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상수리나무로 보존할 가치가 높은 나무입니다.

  조선시대의 송목금벌지법 제정 이후,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땔감의 소재로는 상수리나무를 비롯한 참나무과의 나무를 적극 이용하도록 국가적으로 권장한 까닭에 살림살이에 이용하기만 했던 게 사실입니다. 결국 우리와 친근한 나무임에도 크고 아름다운 상수리나무가 매우 드물다는 게 〈청주 저산리 상수리나무〉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이유입니다. 더구나 수려한 수형을 갖춘 〈청주 저산리 상수리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극진한 보호에 의해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는 점도 나무 곁을 오래 떠나지 못하게 합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추석 지나면 나무에는 단풍이 들고 낙엽도 시작하며 가을이 깊어갑니다. 지난 여름이 유난스레 무덥고 힘들었던 만큼 이 가을은 더 풍요롭고 아름답게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9월 27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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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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