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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 떠난 자리에서 사람살이의 자취를 홀로 지켜온 나무 날짜 2021.09.11 15:36
글쓴이 고규홍 조회 501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사람 떠난 자리에서 사람살이의 자취를 홀로 지켜온 나무

  오래 된 절집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살이의 자취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세월의 이치입니다. 절집뿐 아니라, 오래 된 건축물들은 그렇게 세월의 풍진에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별난 일이라 할 수 없는 항다반사입니다. 세월 지나고 옛 사람의 자취를 기억하기 위해 그때 그 자리에 옛 모습 그대로를 다시 일으키려 하는 일이 생깁니다. 충청북도 진천 연곡리의 절집 보탑사(寶塔寺)도 그런 절집입니다. 오랫동안 절터만 남아 그냥 ‘연곡리 절터’라고 불리던 폐사지에 새로 세운 절집이지요.

○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옛 절터에서 옛 흔적을 움켜쥐고 선 나무 ○

  대개의 경우 사람 떠난 자리를 홀로 남아 지키는 건 큰 나무이기 십상입니다. 터만 남은 절집 자리를 지킨 것도 한 그루의 느티나무입니다. 바로 〈진천 연곡리 보탑사 느티나무〉입니다. 나무는 사백 년 쯤 살아온 나무입니다. 나무 높이는 십팔 미터나 되고,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오 미터를 넘는 정도로 크고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줄기가 삼 미터쯤 오른 자리에서부터 나무는 여러 개의 굵은 가지로 나눠지며 사방으로 고르게 펼쳤습니다. 그 폭은 동서로 이십육 미터, 남북으로 이십일 미터에 이를 만큼 넓습니다. 나무 그늘은 절집을 찾는 불자나 절집 뒷산인 만뢰산을 등산하는 등산객들의 천연의 쉼터입니다.

  일단 규모는 둘째 치고라도 새로 지은 절집 보탑사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끕니다. 사람들은 절집을 새로 지으면서 예전의 전각들의 자리를 이런 저런 기준으로 짐작했겠지요. 필경 나무는 그 모든 짐작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을 겁니다. 지금 절집 보탑사에 들어서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자리가 바로 이 나무 그늘입니다. 그건 아마도 옛 절집 보탑사가 흔적없이 사라지기 전에도 그랬을 겁니다. 이만큼 크고 오래 된 나무가 절집 주변에 서 있을 자리는 바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들고, 또 쉼터, 혹은 정자로서의 그늘이 필요한 자리였을 게 분명합니다. 그게 새로 절집을 복원하면서 전각들의 위치를 지정하게 된 근거였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 곳곳에 드러나는 부러진 흔적은 세월의 버텨온 연륜의 증거 ○

  나무 줄기 곳곳에 드러난 부러진 나뭇가지의 흔적은 아픈 상처라기보다는 긴 세월을 꿋꿋이 살아오는 동안 하늘이 새겨놓은 명예로운 연륜의 증거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대개의 부러진 흔적은 노화 과정에서 저절로 드러난 현상입니다. 게다가 그 자리는 나무 스스로 수피를 키워 감싸며 자연 치유 과정으로 회복하고 있습니다. 사백 년의 세월을 살아온 나무로서는 비슷한 나이의 여느 느티나무에 비해 전체적으로 매우 건강한 편입니다. 줄기 위쪽에서 뻗어나온 굵은 가지 일부에 조금 큼지막하게 찢긴 자국이 있기는 하지만, 나무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닙니다.

  〈진천 연곡리 보탑사 느티나무〉는 일단 절집 입구에 널찍하게 마련한 주차장에 이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규모가 크기도 하지만, 나무가 서 있는 자리가 주차장 자리보다 높은 언덕 위인데다 곁에 다른 나무를 비롯한 조형물이 없어서 한눈에 들어옵니다. 원래는 비탈이었을 자리를 평지로 정돈하는 과정에서 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큰 둔덕을 이루었는데,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나무 주변에는 널찍하게 석축을 쌓고 그 옆으로 절집 오르는 돌계단을 쌓았습니다. 계단 위쪽의 나무 그늘에는 자연석과 잘 깎은 대리석으로 두루 놓아서, 자연스러운 쉼터가 됐습니다.

○ 황룡사 구층목탑을 모델로 새로 지은 오십 미터 규모의 삼층목탑 ○

  보탑사는 1996년에 비구니 스님인 지광 묘순 능현 스님이 창건한 절집으로, 고려 시대에 큰 절이 있던 자리를 터전으로 삼은 절집입니다. 처음 보탑사 건립을 계획한 건 1992년인데, 이때 대목수 신영훈을 비롯한 한옥 건축 장인이 참여해, 1996년 8월 삼층목탑을 완공했고, 지장전 영산전 산신각 등의 전각을 건립하면서 2003년에 완공한 절집입니다. 특히 황룡사 구층목탑을 모델로 만든 삼층목탑은 높이가 무려 오십 미터를 넘습니다. 아파트로 치면 십사층 높이와 맞먹는 높이입니다. 한옥의 장인들이 건축에 참여한 보탑사는 우리 소나무를 목재로 사용했으며 단 하나의 못도 사용하지 않는 전통방식으로 지었다는 것도 특별한 점입니다.

  〈진천 연곡리 보탑사 느티나무〉와 보탑사 주변에서는 ‘연곡리 절터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연곡리 삼층석탑’ 등의 문화재가 발굴되었으며 여전히 정밀한 발굴 조사가 더 필요한 지역이라고 합니다. 또 여기에서 동쪽으로 직선으로 삼 킬로미터 쯤 떨어진 곳에는 사적으로 지정한 ‘진천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도 있습니다. 신라의 장수 김유신(金庾信, 595~673)이 태어난 곳과 그의 탯줄을 보관한 태실을 가리키는 거죠. 앞으로 더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될 가능성도 남아있는 마을로 기억해 두어야 하겠습니다.

○ 뒤늦게 올라오는 가을 태풍 ‘찬투’에 꼼꼼히 대비하시기를 ○

  보탑사 이웃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진천 연곡리 보탑사 느티나무〉가 예전에 이 절집에 주석하던 스님이 손수 심어 키운 나무라고 하지만, 근거를 찾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사실 나무는커녕 고려시대 때의 절집에 대한 기록이나 발굴 자료도 없는 상황에서 나무를 스님이 심었다는 이야기는 받아들이는 데에 무리가 있을 수밖에요. 다만 ‘연곡리 절터’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옛 사람살이의 터전으로 알려진 자리를 홀로 지켜온 나무가 있기에 지금 다시 아름다운 절집을 짓고, 그 안에서 옛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게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하늘은 이미 가을 빛을 담았는데, 주초에는 찬투라는 이름의 초강력 태풍이 올라온답니다. 탈 없이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아, 참! 다음 주는 추석 명절입니다. 다음 주에는 《나무편지》도 한 주 쉬어가겠습니다. 모두 즐겁고 복된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9월 13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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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신윤숙 (2021.09.14 23:43)
느티나무가 정말 아름답습니다. 문을 열면 눈 앞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사계절 다른 모습으로 팔 벌려 맞아주는 것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수피의 무늬 또한 범상치 않네요. 창덕궁에도 아름다운 무늬의 느티나무가 있답니다. 몇 년 전 해설사분께서 궁궐의 나무에 어울리는 이런 무늬(위 사진과 비슷합니다.)는 500년 이상 된 느티나무에서 볼 수 있다고 하신게 생각나는데, 정말 그런지요?
신명기 (2021.09.15 12:31)
제 집 앞에 작으마한 한옥 한채가 있습니다.
한옥이 주는 느낌은 조선에 살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가 지니고 있는 비슷한 감정인가 봅니다.
오가는 사람들 중 젊은 사람들도 사진을 찍습니다.
나무와 기와 곡선 담장 문~이 조화롭게 어울려 풍기는 매력이~
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우리 소나무로 지은 절이라니 가보고 싶습니다.
한가위 명절 교수님도 쉼과 함께 행복한 연휴 보내시기 바랍니다^^
고규홍 (2021.09.15 19:05)
[신윤숙님] 느티나무 줄기 껍질의 무늬는 어린 시절과 나이 든 뒤가 서로 다릅니다. 특히 줄기가 너덜거릴 정도로 벗겨지는 건 대략 50년 쯤 지나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500년이 아니라, 50년 쯤을 보는데요. 그것도 나무의 상황에 따라 달라서, 조금 이를 수도 늦을 수도 있습니다.
고규홍 (2021.09.15 19:07)
[신명기님] 네, 가 보실 만한 절이기는 한데요. 집 앞에 작은 한옥에 익숙하시다면, 이 절집은 규모가 너무 커서 우리 한옥의 아담한 느낌은 덜한 편이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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