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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 자세히, 더 오래 바라보아야 알 수 있는 두 꽃의 결정적 차이 날짜 2021.09.05 18:19
글쓴이 고규홍 조회 675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더 자세히, 더 오래 바라보아야 알 수 있는 두 꽃의 결정적 차이

  상사화 꽃 진 자리에 꽃무릇 꽃이 피어나는 즈음입니다. 얼핏 본다고 해서 그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할 건 아니라 할 만큼 특별한 꽃이지만, 그래도 오래 바라보아야 그의 특징을 온전히 알 수 있는 풀꽃입니다. 꽃무릇은 잎 없는 채로 오십센티미터까지 솟아오르는 꽃대 위에 꽃을 피웁니다. 꽃무릇이라고 했지만, 식물분류학에서는 꽃무릇이 아니라, ‘석산’ Lycoris radiata (L'Her.) Herb. 이라고 부르게 돼 있습니다. 학술적으로는 석산이라 불러야 하겠지만, 석산은 ‘꽃무릇’이라는 우리 말 이름이 주는 살갑고 화려한 이미지를 드러내지 못합니다.

○ 꽃송이 바깥으로 삐죽이 내민 꽃술이 더 없이 아름다워 ○

  꽃무릇은 대개의 경우 무리지어 심어 키우기 때문에 한 송이 한 송이 꽃을 들여다보는 일보다는 바닥에 낮게 깔린 분위기를 즐기는 게 대부분이지요. 꽃무릇은 가까이 다가서서 바라보면 멀리서 스쳐 지나며 볼 때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붉은 꽃송이 바깥으로 툭 불거져 나온 꽃술들 때문입니다. 꽃무릇의 꽃송이 하나에는 여섯 개의 수술이 돋아나는데 여러 송이의 꽃이 모여 피어나기 때문에 꽃술은 실제보다 훨씬 많아 보이기도 합니다. 각각의 꽃술은 길이가 8센티미터 쯤 될 정도로 길어서 꽃송이 바깥으로 삐죽이 고개를 내밉니다.

  꽃무릇을 이야기할라치면 상사화를 더불어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김새가 닮았을 뿐 아니라, 때로는 꽃무릇을 그냥 상사화로 부르기도 하니까요. 예닐곱 포기 정도씩 무리를 지어 피어나는 상사화 Lycoris squamigera Maxim.는 꽃무릇과 함께 잎 없이 꼿꼿이 서서 피어나는 모습이 꽤 슬퍼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잎 하나 없이 훌쩍 올라온 꽃대 끝에서 분홍 빛으로 피어난 모습을 보면 슬퍼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누구를 그리워하다 죽어가는 상사(相思)를 연상할 수밖에 없는 꽃 이름을 떠올리면 더 그렇습니다. 꽃은 잎을 그리워하고, 잎은 꽃을 그리워하면서도 끝내 만나지는 못한다 해서 상사화란 이름이 붙었지요.

○ 생김새는 달라도 분위기를 닮은 상사화와 꽃무릇 ○

  상사화는 꽃대 올라오기 훨씬 전인 봄에 먼저 잎사귀부터 돋아납니다. 그러면 상사화 꽃 피어있는 자리에는 얼마 전까지 상사화의 잎이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그 잎사귀를 되짚어 떠올리는 건 쉽지 않습니다. 꽃 피기 전에 눈길을 주지 못한 탓이지요. 대개의 상사화는 한 포기가 육십 센티미터 그러니까 어른 무릎 정도 되는 높이입니다. 하나의 꽃대 위에 대략 네 송이에서 여덟 송이의 큼지막한 꽃 송이가 달리는 탓에 상사화의 꽃대는 다른 식물들에 비해 굵고 단단한 편이지만, 그래도 꽃송이를 지탱하기에는 연약해 보이지요. 그럼에도 햇살과 이산화탄소를 모아 식물의 자양분을 만들어내는 잎사귀가 하나도 없다는 건 놀랍습니다.

  상사화와 꽃무릇을 헷갈리기 쉬울 만큼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했는데, 두 식물을 구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상사화의 꽃은 분홍색이고, 꽃무릇은 자홍색이라는 것도 뚜렷한 차이이고, 꽃술의 길이가 다른 것도 그렇습니다. 꽃 피는 시기도 다릅니다. 늦여름에 상사화가 피어나고 상사화 꽃 지는 초가을 되어야 꽃무릇 꽃이 피어나거든요. 결정적인 차이는 잎 나는 순서에 있습니다. 상사화는 봄에 잎이 돋아나고, 여름에 꽃대를 올려 꽃을 피웁니다. 그러나 꽃무릇은 반대로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납니다. 잎부터 내고 꽃을 피운 뒤에 가뭇없이 사라지는 상사화와 달리 꽃무릇은 적막할 정도로 흔적도 없다가 갑자기 꽃대를 올려 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꽃 떨군 뒤에 비로소 잎을 피워냅니다. 초록 잎을 돋운 상태로 겨울을 날 태세인 겁니다.

○ 한번 보고 두변 보고 그리고 또 다시 찾아가 한번 더 보아야 ○

  초록의 잎을 돋운 꽃무릇은 눈 내리는 한 겨울에도 초록 빛을 잃지 않고 겨울을 납니다. 특별히 꽃무릇을 많이 심어 키우는 전라남도 영광의 불갑사라든가, 전북 고창의 선운사에서 그런 장관을 본 적이 있지요. 눈이 소복히 쌓인 한겨울이어서, 세상은 온통 흑백의 차분한 풍경을 이룬 상황이었어요. 눈길을 조심조심 운전해서 선운사에 이르자, 입구부터 땅 바닥에는 하얀 눈 사이로 초록의 카펫을 깔아놓은 듯했어요. 바로 가을에 꽃 진 뒤에 새로 돋아나 추운 겨울을 나고 있는 꽃무릇의 잎사귀들이었습니다. 그게 한 두 촉이 아니고, 길 전체에 무성하게 돋아나 있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장관이었습니다.

  상사화와 꽃무릇도 눈에 잘 담아두었다가 꽃 피었던 자리를 나중에 다시 한번 찾아보면 금세 알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꽃 진 자리에서 초록 잎이 돋아나면 그건 꽃무릇이고, 꽃 진 자리에 아무 흔적도 없다면 그건 상사화입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이 그렇겠지만 풀꽃 역시 한 순간에 그의 모든 것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습니다. 더구나 느리게 느리게 살아가는 식물에 다가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다시 보는 것밖에 없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 위의 넉장은 꽃무릇이고, 아래 석장은 상사화입니다.

  고맙습니다.

- 9월 6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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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신명기 (2021.09.07 08:23)
9월 6일 아침 새벽 5시 30분
아침 산책을 나가려는 참이었습니다.
화단에 핀 꽃무릇에 눈길 빼앗기고
바람에 흔들리는 꽃무릇을 한참 바라보다 영상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작은 글하나 끄적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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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려야
더 아름답다
흔들려보지 않고는
눈물을 알 수 없다
바람에 흔들려야
더 애절하다
바람에 흔들려 보지 않고는
사랑을 말할 수 없다
오늘도
흔들린다
바람에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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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께서 같은 날 아침에 꽃무릇 글을 올리셨네요~
가슴이 붉어집니다~~
고규홍 (2021.09.07 16:02)
핫! 마음이 통했나봐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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