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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령신씨 선조의 살림살이와 마을의 역사를 간직한 나무 날짜 2021.08.28 18:31
글쓴이 고규홍 조회 622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고령신씨 선조의 살림살이와 마을의 역사를 간직한 나무

  “큰 길에서 해 지는 쪽으로 쭉 걸어오면 금줄을 친 당산나무가 서 있는 길목이 나오는데, 그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오세요. 골목 안에 맨드라미 줄지어 피어 있는 낮은 돌담을 따라 오다가 갈림길에서 울타리 너머로 무화과나무 가지가 뻗어나온 집이 있는 쪽으로 돌아 오세요. 왼편으로 멀리 내다뵈는 마을 뒷산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다보면 쪽문 곁에 감나무가 삐죽 솟아오른 집이 있어요. 그게 제가 사는 집이에요.” 어디가 됐든 이렇게 안내할 수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버릴 수 없는 꿈입니다.

○ 은행나무를 표지로 찾아오는 길을 이끌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을 ○

  오래 된, 그러나 언제 이룰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희망을 떠올린 건, 청주시 낭성면의 은행나무 두 그루 때문이었습니다. 〈청주 관정리 은행나무〉입니다. 관정리를 지나는 지방도로 삼십이호선의 지선인 마을 도로 변에 두 그루가 한 그루처럼 바투 붙어서 자라는 큰 나무입니다. 나무가 서 있는 자리가 바로 마을 어귀여서 이 마을 안쪽의 어딘가에서 살 수 있다면 그 꿈도 이룰 수 있지 싶은 생각이 들었던 거죠. 묵정마을이라고 불리는 이 마을 사람들이라면 자기 집 찾아오는 법을 이야기할 때에 분명히 이 은행나무를 빼놓고 이야기하지 않을 겁니다. 주변에서 이 은행나무 두 그루만큼 분명한 표지는 없으니까요.

  청주 관정리 은행나무는 오백삼십 년 전에 이 마을 출신인 하은(霞隱) 신용(申涌, 1560 ~ 1631)이 심은 나무라고 합니다. 조선 중기에 문신을 지낸 신용은 선조 24년인 1591년에 서른이 넘은 나이로 식년문과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검열(檢閱)이 되었는데,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활약한 인물로, 이 마을의 자랑스러운 선조입니다. 신용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 승지와 대사간을 지냈고, 나중에 관찰사에 이르렀으며, 《의례고람》 《상례통재》 《오복통고》의 저술을 남겼다고 하는데, 사실 제게는 그리 익숙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 마을 어귀에 바투 서서 사람살이의 지킴이이자 상징이 된 나무 ○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마을 어귀에서 마을의 지킴이이자 상징으로 여기는 나무입니다. 두 그루의 나무 사이에 넉넉한 평상을 놓았고, 각각의 나무 주변으로는 둥글게 콘크리트로 지은 긴 의자를 놓았습니다. 이 긴 의자는 마을 사람들이 나무 그늘에 들어 편안히 쉴 자리가 되기도 하지만, 더불어 나무 가까이 접근하지 않도록 하는 보호 울타리 역할까지 겸할 수 있도록 설치했습니다. 나무 주변에는 여러 개의 기념비가 보입니다. 우선 나무 바로 앞 도로 쪽에는 마을자랑비가 있고, 나무의 북쪽에는 마을 선조인 신백우선생사적비가 있습니다. 또 역시 마을 선조인 신각(申灚)의 가비(歌碑)도 있습니다. 마을의 자랑거리를 모두 모아놓은 자리인 셈입니다.

  십미터쯤의 거리를 두고 서 있는 두 그루의 〈청주 관정리 은행나무〉 가운데 남쪽의 나무는 곧게 올라간 하나의 줄기의 사미터쯤의 높이에서 가지 하나가 남쪽으로 뻗어나오며 수관을 펼쳤지만, 나뭇가지를 멀리 펼치기보다는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쪽으로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북쪽의 나무가 펼친 나뭇가지 펼침이 무성한 까닭에 북쪽의 나무의 생장을 피하려 했던 거죠. 그리고 십오미터쯤의 높이까지는 북쪽으로 가지를 내지 않았고 그 위쪽에서 가지를 펼치며 전체적으로 매우 단정한 느낌의 수형을 갖췄습니다. 두 그루의 크기가 비슷하기는 하지만, 남쪽의 나무가 작은 편으로 보입니다.

○ 사람의 정성에 힘입어 오백년 세월의 무게를 거뜬히 이겨내 ○

  북쪽의 나무는 남쪽의 나무가 양보한 자리를 찾아 가지를 사방으로 넓게 펼쳤지요. 이미터 높이에서부터 네개의 굵은 가지를 사방으로 뻗어내며 전체적으로 펼침폭이 웅장합니다. 특히 서북쪽으로 뻗은 가지는 십미터 정도 가지를 거의 수평으로 펼쳤는데, 그 위쪽으로 이어지는 부분에 다른 가지가 없어서, 전체 수형에서는 약간 튀어나온 듯한 모습입니다. 기록에는 두 그루 모두 높이 이십오미터로 돼 있지만, 보호수로 지정한 때로부터 사십년이 흐르는 동안 북쪽의 나무보다는 남쪽의 나무가 더 높이 올라서, 지금은 두 나무 사이에 대략 이미터 정도의 높이 차이가 보입니다. 북쪽의 나무가 나뭇가지 펼침폭을 넓히는 쪽으로 성장했다면 남쪽의 나무는 북쪽 나무의 가지펼침을 피해 수고를 높이 키운 걸로 보입니다.

  오백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나무이지만, 마을 사람들의 지극한 정성에 힘입은 탓인지, 두 그루 모두 무척 건강합니다. 물론 자잘한 나뭇가지가 부러진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되지만, 그 정도는 자연스러운 세월의 흔적이라고 봐야 하겠지요. 아무래도 나뭇가지를 더 많이 뻗어낸 북쪽의 나무에서 부러진 가지가 좀더 발견됩니다만, 그 부분도 외과수술을 거쳐 잘 메워준 상태여서 생육 상태로는 최상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듯합니다.

  두 그루의 은행나무 사이에 놓인 평상에 한참을 걸터앉아 나뭇가지를 스쳐 흐르는 바람에 땀을 식혔습니다. 그리고 은행나무를 마을의 랜드마크로 삼을 수 있는 이 마을 사람들과 그들이 아름다운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보금자리를 아름답게 일군 옛 선조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되새겼습니다.

  사람 사는 곳에 나무 없는 곳은 없습니다. 나무가 우리 사는 모든 곳에서 우리 삶을 지켜주는 참 지킴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 《나무편지》의 마지막 행을 여미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더 즐겁고 알찬 《나무편지》를 그리며 8월 30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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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신명기 (2021.09.02 15:47)
아, 은행나무 두 그루보다
앞에 집에 오는 길을 알려주는 글이 자꾸 마음을 헤집고 있습니다~~
그래야지 싶습니다. 그런 곳에 살아야지 싶습니다.
교수님 깊은 속이 그런 집이지 싶습니다~^^
신윤숙 (2021.09.04 20:53)
교수님의 길잡이를 따라 가다 보니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정겨운 마을에 이미 들어선 듯 합니다. 두 그루의 은행나무도 오랜 세월 이웃하여 서로의 자리와 높이를 배려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합니다. 청주 관정리 은행나무, 아름답네요.^^
고규홍 (2021.09.05 09:30)
네. 그런 마을에 함께 살 수 있는 날이 있기를 바랍니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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