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를 찾아서 W > 나무를 찾아서 W
나무를 찾아서w
제목 희미한 옛 추억의 그림자를 안고 살아 남은 절집의 나무 날짜 2021.08.08 18:39
글쓴이 고규홍 조회 424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희미한 옛 추억의 그림자를 안고 살아 남은 절집의 나무

  그늘 없는 자리에는 잠시도 서 있기 어려웠던 엊그제 세종시에서 오래 된 느티나무 한 그루를 만났습니다. 무려 팔백년이 훨씬 넘게 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세종시에서는 가장 오래 된 나무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나무를 할퀴고 지나간 상처는 적지 않았습니다. 사진으로 보시는 것처럼 나무의 상태가 안타까울 정도로 많이 상했습니다. 줄기의 상당 부분은 이미 썩어 문드러져 외과수술로 메웠으며, 사방으로 넒게 펼쳤을 나뭇가지도 가뭇없이 사라져 느티나무 특유의 기품을 느끼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 세종특별자치시에서 가장 오래 된 팔백 년 넘은 느티나무 ○

  나무가 서 있는 곳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 ‘비암사(碑巖寺)’라는 오래 된 절집의 법당 앞마당 가장자리입니다. 앞에서 나무가 팔백년을 넘게 살았다고 했는데, 그건 이 느티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한 1972년의 측정치로, 당시 810년으로 기록했습니다. 그 측정치를 그대로 이어간다면, 그로부터 50년이 더 지난 지금 기준으로 하면 860년이 넘은 나무입니다. 나이로만 친다면 우리나라의 모든 느티나무 가운데에 가장 오래 된 느티나무 몇 그루에 속할 겁니다.

  찢기고 부러지면서 자란 〈세종 비암사 느티나무〉의 규모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나무 높이는 15미터,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7.5미터이며 나뭇가지 펼침폭은 동서로 15미터, 남북으로 12미터에 이릅니다. 물론 나뭇가지의 상당 부분이 떨어져 나간 탓에 여느 느티나무가 가지는 풍요로움은 전혀 없습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이토록 긴 세월 동안 이어온 끈질긴 생명력이 놀랍다 할 뿐입니다. 하기야 나무도 살아있는 생명인 이상 생로병사의 굴레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겠지요.

○ 삼국시대에 창건하고, 도선국사가 거쳐간 천년 고찰 ○

  세종시 다방리의 비암사는 운주산(雲住山) 자락에 자리잡은 고찰로 조계종 마곡사의 말사입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삼국시대에 창건한 절집으로 신라 말기에 도선(道詵) 국사가 중창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별다른 기록이 남지 않아 확실한 창건 연대와 절집 사세와 관련된 이야기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조선 후기에 펴낸 《전역지(全域誌)》라는 문헌에 비암사의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 시절까지 절집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지요. 하지만 그 뒤로 비암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하나 둘 사라져갔지요.

  비암사가 다시 알려진 건 극락전 앞뜰에 세워진 3미터 높이의 삼층석탑 위쪽에서 〈사면군상(四面群像)〉이 발견되면서 차츰 널리 알려지게 된 겁니다. 사면군상이 발견된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삼국시대에서부터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꾸준한 활동을 이어온 절집이었던 증거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1991년에 무너앉은 절집 마당에 큰법당을 새로 짓는 것을 시작으로, 1995년에는 극락보전을 중수하고 산신각과 요사 2동, 1996년에는 범종각을 지으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 희미한 옛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 애면글면 살아남은 나무 ○

  중수를 거치며 사세를 키우고는 있지만 여전히 작은 절집인 비암사에는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이 국보로, ‘기축명아미타불비상(己丑銘阿彌陀佛碑像)’과 ‘미륵보살반가사유비상(彌勒菩薩半跏思惟碑像)’은 보물로 지정될 정도로 가치가 높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였던 ‘극락보전’이 보물로 지정되는 등 문화유산이 풍부한 곳입니다. 이 정도의 자원을 가진 절집이라면 필경 더 많은 사람살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게 뻔한 사실인데, 기록이 남지 않아 아쉽습니다.

  유서깊은 천년 고찰 비암사에서 사람살이의 옛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살아남은 건 〈세종 비암사 느티나무〉 뿐입니다. 사람의 언어로 지금의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지만, 나무는 구백 년 가까운 긴 세월 동안 절집 비암사의 부침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차츰 희미해져가는 옛 추억의 그림자를 안고, 나무는 애면글면 살아남았습니다. 그 사이에 나무의 숱하게 많았던 가지들은 찢기고 부러졌으며, 줄기의 상당 부분도 썩어 문드러졌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이 자리에 절집을 중수하고 사세를 키울 때까지 말 없이 절집을 지켜온 한 그루의 나무가 하냥 고마울 따름입니다.

  사람 사는 곳 어디라도 나무는 있습니다. 더불어 사람 떠난 자리에서도 나무는 홀로 남아 사람살이를 가장 오래 기억하는 생명입니다. 한 그루의 늙고 지친 〈세종 비암사 느티나무〉 앞에서 우리 곁의 나무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살아남았는지를 다시 생각해 본 뜨거운 여름 날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사람들이 잊어가는 기억을 홀로 기억하는 나무를 생각하며 8월 9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드림.

솔숲닷컴(http://solsup.com)의 '추천하기'게시판에 '나무 편지'를 추천하실 분을 알려 주세요.
접속이 어려우시면 추천하실 분의 성함과 이메일 주소를 이 편지의 답장으로 보내주십시오.

○●○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신명기 (2021.08.11 18:56)
안타까운 절집 느티나무를 보면서
원정리 느티나무가 죽어 빈터로 된 사진이 떠올랐습니다.
500년, 800년을 살았으니
수명을 다한 것이겠지만
우람하고 우하했던 모습을 상상하니~~
고규홍 (2021.08.12 16:31)
오래 된 노거수를 보면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요.
글쓴이 비밀번호
보이는 순서대로 문자를 모두 입력해 주세요
등록
목록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