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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벚꽃보다 늦은 식목일 … 곁의 나무를 소중히 바라보며 날짜 2021.04.03 11:32
글쓴이 고규홍 조회 135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벚꽃보다 늦은 식목일 … 곁의 나무를 소중히 바라보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봄이라고 해야 할까요. 필경 우리가 봄이라고 이야기하려면 무엇보다 꽃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봄날 아니어도 이 땅에 꽃 없는 날은 없는 게 사실이지만, 봄은 아무래도 꽃이 불러오는 계절입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우리는 개나리 진달래 벚나무 목련…… 봄꽃이 피어나는 때를 봄이라고 불러왔습니다. 봄꽃 없으면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봄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봄 기다리는 마음은 그래서 꽃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윤동주의 시 ’나무‘의 어법을 빌리면, “봄이 꽃을 불러오는지, 꽃이 봄을 불러오는지” 알쏭달쏭한 게 우리의 봄입니다. 지금은 그래서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 꽃 없는 봄날을 맞이해야 하는 때가 올 수도 있어 ○

  기후 변화가 급속히 빨라지면서, 봄에 대한 생각을 따라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끄집어낸 생각입니다. 기상청에서는 하루 평균기온의 9일 이동 평균값이 5도 이상에서 떨어지지 않는 첫 날을 봄의 시작으로 하고 여름의 시작은 20도 이상으로 합니다. 가을은 20도 미만, 겨울은 5도 미만을 기준으로 하지요. 기후 관련 전문기관들이 내놓는 보고에 따르면 앞으로 갈수록 ’봄 여름은 길어지고, 가을 겨울이 짧아진다‘고 합니다. 예측 그대로라면 앞으로 우리에게는 꽃 지고나서도 봄이라고 불러야 할 날들이 적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꽃 없는 날‘을 봄이라고 부르기에는 마음에 내키지 않습니다.

  오늘은 식목일입니다. 벌써 얼마 전부터 식목일 즈음이면, 기후 온난화 덕에 나무 심기에 4월 5일은 늦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했습니다. 식목일과 함께 만끽했던 우리의 봄은 언제나 아쉬울 정도로 짧았습니다. 나무를 심는 계절인가 싶었는데, 이내 이마에 땀방울이 돋아나는 여름이 다가오곤 했으니까요. 식목일은 조선의 임금 성종이 서울의 선농단에서 선농(先農)제를 지낸 날을 기념하여 정한 겁니다. 한해 농사를 채비하는 이 즈음이 더불어 나무를 심기에도 알맞춤한 때여서 아예 ’나무 심는 날‘ 식목일로 정한 것이지요. 국가 기념일로 정한 뒤 일흔여섯 번의 식목일을 지냈습니다. 한때는 모두가 나무를 심으러 들로 산으로 나가야 하기에 공휴일로 정했지만, 2006년부터는 공휴일에서도 뺐습니다. 그 사이에 식목일의 평균 온도는 크게 4도쯤 높아졌다고 합니다. 식목일을 앞당기자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 열흘쯤 빨라진 개나리 진달래 벚나무 목련의 개화 ○

  우리 곁의 봄나무들은 모두 꽃을 피웠습니다.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는 물론이고, 목련 벚나무까지 모두 활짝 피었습니다. 기상전문기관들이 내놓은 개화예상시기가 올에는 모두 틀렸습니다. 관측표준목을 기준으로 한다지만, 평균적으로 예년에 비해 8일 정도가 빨라졌다고 합니다. 천리포수목원의 김용식 원장 선생님은 목련 개화가 2주일 정도 빨라졌다고 하시네요. 집 근처의 햇살 바른 곳에 자리잡은 백목련도 벌써 낙화를 마치며 초록 잎을 피워올렸고, 자목련은 초록 잎 사이로 붉은 꽃송이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빠르게 흘러가는 봄입니다. 오늘 《나무편지》의 사진은 엊그제 다녀온 대구 지역의 벚나무 사진입니다. 줄지어 늘어선 벚나무 꽃은 절정이었습니다.

  이제 이팝나무 오동나무가 꽃봉오리를 열 차례입니다. 이팝나무 오동나무도 올에는 더 빠르게 피어나겠지요. 낡은 지도책을 펴놓고, 전남 지역 답사 일정을 정리해놓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벚나무 꽃잎이 자르르 깔린 길을 걸으며, 이팝나무와 오동나무 개화 시기를 다시 짚어보았습니다. 계획했던 답사 일정을 바꾸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무를 찾아 길 위에 오른 지 이십 여 년이 됐지만, 나무의 시간을 맞추는 건 어렵기만 합니다. 해마다 5월 초가 되어야 피어나던 남부 지방의 이팝나무가 이 봄에는 얼마나 빨리 피어날지 궁금합니다. 무심히 스쳐 지나는 시간의 속도가 조금은 무겁게 느껴지는 봄날입니다.

  식목일 아침입니다. 나무를 심는 날이라고 돼 있지만, 나무를 심는 것보다는 내 곁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를 더 소중하게 바라볼 수 있는 날이 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럴 수만, 그럴 수만 된다면 굳이 날짜를 옮기지 않아도 우리 사는 이 땅이 한결 더 아름답고 평화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더 크게 말씀드리고 싶은 식목일 아침입니다.

  고맙습니다.

- 내 곁의 나무를 더 오래 바라보며 식목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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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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