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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위 틈에서 마을의 평안을 예언하며 서 있는 팔백 년 나무 날짜 2021.03.27 18:28
글쓴이 고규홍 조회 169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바위 틈에서 마을의 평안을 예언하며 서 있는 팔백 년 나무

  진천 지역 답사 중에 만난 나무 한 그루가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진천 백곡면 석현리 마을 어귀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느티나무입니다. 큰 나무를 찾아 다니는 답사에서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나무는 어김없이 느티나무입니다. 나무 종류가 같은 느티나무들은 전체적인 수형이나 주변 분위기에 어우러지는 느낌까지 얼핏 봐서는 크게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단순한 생각입니다. 같은 느티나무라 해도 나무가 서 있는 자리와 그 주변 풍경에 따라서 서로 다릅니다. 뿐만 아니라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분위기에 따라서 나무의 표정은 여엿이 다르게 마련입니다.

○ 가까이 다가서면서 나무 뿌리에서부터 드러나는 생명의 신비 ○

  진천 석현리 느티나무도 얼핏 봐서는 마을 어귀의 작은 동산 가장자리의 마을로 들어서는 길 쪽에 우뚝 서서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라는 데에서 대개의 마을 당산나무라든가 정자나무와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입니다. 멀리서 바라보며 느끼게 되는 첫 인상은 그저 그런 느티나무입니다. 그러나 나무에 다가서면서 이 나무의 특별한 모습에서 피어나는 큰 울림이 마음에서 솟구치게 됩니다. 나무를 만나게 되는 언제라도 허투루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가 이런 겁니다. 가까이 다가가 꼼꼼히 살피면 살필수록 나무마다 가지는 특별한 느낌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기야 살아있는 생명체인 이상, 사람이나 짐승이 모두 그렇듯 나무 또한 저마다의 독특한 생명의 숨결이 살아있지요.

  동산 가장자리 언덕 위에 겉으로 훤히 드러낸 뿌리 부분이 진천 석현리 느티나무를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특징이고, 그것이 나무를 오래 기억하게 합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나무의 특별함을 사진으로 모두 표현하기에는 제 깜냥이 턱없이 모자랍니다. 사진 촬영기술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키운다 하더라도 사람 가슴높이의 줄기둘레가 6미터에 이르고, 높이는 16미터가 넘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를 어찌 한두 컷의 사진으로 죄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보지 않고서는 그 깊은 생명의 아우성을 온전히 알아챌 수 없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 미래를 예언하는 신통한 능력의 예언자 김사혁이 일으킨 마을 ○

  나무가 서 있는 마을은 석현리 지곡(知谷)마을입니다. 지새울이라고도 부르는 지곡마을은 칠백 년 쯤 전에 처음 일으켰습니다. 고려 말기의 무신으로, 홍건적을 격퇴하고 충청과 전라 지역에 침입한 왜구와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던 강릉김씨 김사혁(金斯革, ?~1385)이 예순 셋의 나이에 지문하부사상서(知門下府事尙書)를 지낼 때 임시로 머무를 자리를 찾아 이곳에 들어오면서 마을을 이루게 됐다고 합니다. 마을 입향조가 된 김사혁은 특별히 미래를 예언하며 마을 살림살이를 이끌었는데, 그의 예언 가운데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을 비롯한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도 모든 일을 아는 사람이 사는 마을이라고 해서 알 지(知), 일 사(事)를 서서 지사울이라고 부르다가 지새울로 변했고, 나중에 지곡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지곡마을 어귀에 서 있는 진천 석현리 느티나무는 마을을 처음 일으키던 때보다 백년 쯤 전인 팔백 년 전부터 이 자리에 서 있던 나무입니다. 산림청에서 지정번호 ‘진천42호의 2000년 2월이었는데, 이때에 이미 나무의 나이를 800년 넘는 것으로 측정해 기록했습니다. 다른 곳에 서 있는 비슷한 나이의 느티나무에 비하면 높이나 줄기 굵기가 조금 작은 편이라 할 수 있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나무의 뿌리 부분이 그러합니다. 사진으로 모두 보여드리기 어렵습니다만, 뿌리 부분은 온통 큰 바위와 그 바위에서 쪼개진 것으로 보이는 돌 투성이입니다. 나무에 온전히 양분을 제공할 수 있는 흙은 고작해야 바위와 돌들이 이룬 틈바구니뿐입니다.

○ 바위를 쪼개고… 쪼개진 바위조각을 품어안으며 살아온 팔백 년 ○

  그러니까 나무는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리고 팔백 년 동안 안으로는 바위를 서서히 쪼개면서 스스로의 몸피를 키웠습니다. 자연히 부서져 나가는 바위 조각들을 끌어안기 위해 나무는 뿌리를 바위 위쪽으로 드러내고 하나 둘 쪼개지는 바위 조각들을 품었습니다. 돌아보면 나무는 ’자라나는 일‘보다 ’살아남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자해야 했을 겁니다. 나무의 몸피가 여느 팔백 년 쯤 된 느티나무에 비해 작다 할 수 있는 이유가 된 거지요. 그렇다고 해서 작은 나무는 분명히 아닙니다. 팔백 년이라는 긴 세월을 품은 여느 느티나무에 비해 작을 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애면글면 살아온 시간의 켜를 품고 서 있는 나무의 생명력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필경 고난 투성이였을 세월을 품었지만 나무는 여전히 늠연한 자태를 잃지 않고 마을 어귀를 지키고 서 있습니다. 예전에 마을 입향조가 그랬던 것처럼 옛 사람 떠난 자리에서 다가올 미래의 평안을 예언하듯 늠름하고 평안한 자태로 서 있는, 혹은 살아남은 한 그루의 느티나무가 그지없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따라서 나뭇가지 사이로 스미는 봄바람이 하냥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고맙습니다.

- 언제나처럼 사람살이를 지켜주는 나무의 신비로운 생명을 그리며
3월 29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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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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