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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의 소망을 담고 특별한 모양으로 피어나는 꽃 날짜 2021.03.06 16:15
글쓴이 고규홍 조회 187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사람의 소망을 담고 특별한 모양으로 피어나는 꽃

  해마다 봄의 기미를 가장 먼저 알리는 풍년화 소식입니다. 첫 개화는 훨씬 전이었습니다만, 조금 늦게 풍년화를 찾아보았습니다. 풍년화는 아직 그리 흔한 나무라 할 수는 없지만, 식물원 수목원을 비롯해 중부 이남의 정원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무이지요. 풍년화는 무엇보다 꽃이 독특해 눈길을 끄는 나무입니다. 넉 장의 가느다란 꽃잎이 삐뚤빼뚤 꼬인 리본처럼 조롱조롱 피어나는 꽃은 봄에 피어나는 여느 나무에서처럼 잎보다 먼저 피어납니다. 풍년화 꽃이 가장 예쁜 건 활짝 피었을 때보다 처음 꽃봉오리를 깨면서 가느다란 꽃잎이 종이 리본을 풀어나가듯 구불구불 꿈틀거릴 때입니다. 엊그제 우리 수목원의 풍년화들은 이미 활짝 피어난 상태였습니다. 제 발걸음이 조금 늦은 거지요.

○ 돌돌 말린 넉장의 가느다란 꽃잎이 살금살금 풀리는 신비 ○

  풍년화의 꽃 송이 하나하나는 작고 성깁니다. 새 봄에 피어나는 여느 꽃들에 비해 그 화려함이 탁월하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무들이 꽃봉오리조차 피워올리지 않은 무채색의 겨울 숲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는 노란색 꽃은 봄의 기미를 알리는 꽃으로 더 없이 반갑고 고마운 꽃입니다. 한 송이 한 송이는 조금 성기다 했지만, 이 가느다란 꽃잎 넉장으로 이루어진 꽃송이가 나뭇가지 전체에 한꺼번에 피워 올리기 때문에 활짝 피었을 때에는 무척 화려합니다. 이른 봄 숲의 주인공이라 해도 결코 모자람이 없지요.

  이 나무에 풍년화라는 특별한 이름이 붙은 건 살림살이를 더 풍요롭게 하고 싶었던 옛 사람들의 소망이 담긴 때문입니다. 풍년화 꽃이 피어날 때는 농부들은 한해 농사를 채비해야 할 때입니다. 겨우내 묵혀둔 농기구를 손질하고 새로 심을 씨앗을 보살피는 건 물론이고, 풍년을 기원하는 마을 잔치를 벌이기까지 하는 이른 봄입니다. 한해 농사를 준비하는 때이지요. 세상의 모든 노동이 그렇겠지만, 결과를 예측하기 쉽지 않은 노동에 들어서는 사람들의 마음은 불안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한해 농사의 결과를 미리 짐작하곤 합니다.

○ 평범하지 않은 모습으로 피어나는 꽃에 사람의 소망을 담아 ○

  더 평안한 마음으로 한해의 노동을 시작하기 위해 농부들은 농사의 미래, 즉 노동의 결과를 미리 알고 싶은 거죠. 기왕에 고된 노동을 쏟는 농사 일의 결과가 풍년이기를 바라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까닭에 농촌마다 풍년을 점치게 하는 나무와 관련한 민간의 믿음이 다양하게 전해옵니다. 봄에 느티나무 잎이 나뭇가지 전체에서 한꺼번에 잘 돋아나면 풍년이 든다거나 좀 지나서 모내기 철이 다가올 때에 이팝나무에서 꽃이 풍성하게 활짝 잘 피어나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습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풍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싶었던 거죠.

  풍년화에도 농부들의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겼습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모습으로 피어나는 풍년화 꽃을 사람들은 상서로운 조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야릇한 모양의 풍년화 꽃이 일찌감치 예쁘게 피어나면 올 농사에는 풍년이 들 것이라고 믿었지요. 그렇게 믿고 싶었을 것입니다. 나무를 바라보며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아예 이 나무를 ‘풍년화’라 부르게 됐어요. 그러니까 풍년화의 개화를 기다리는 건, 풍년을 기다리는 마음과 다르지 않게 됐습니다. 기다림 끝에 피어나는 꽃을 보고 농부들은 위안받았고, 들녘을 향하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울 수 있었습니다. 나무에는 그렇게 사람살이의 소망이 스며들었습니다.

○ 풍년을 기원하는 꽃 앞에서 올 한해의 풍요를 기원하며 ○

  풍년화라는 이름을 먼저 붙인 건 일본의 농부들이었다. 일본 농부들은 이 나무를 풍년을 뜻하는 그들의 언어인 '망사꾸(まんさく, 万作)'라고 불렀습니다. 풍년을 기원하는 농부의 소망이 담긴 이름입니다. 풍년화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건 1931년입니다. 그때 일본의 농부들이 오랫동안 불러오던 이름을 그대로 옮겨 쓰게 된 겁니다. 나무에 사람의 소망을 담는 건 일본이나 우리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농경문화 민족들에게는 똑같았던 겁니다. 우리가 풍년화라고 부르는 이 나무를 서양에서는 수맥 탐사에 요긴하게 쓴다고 해서 '마법의 개암나무 Witch Hazel' 라고도 부른다고 합니다.

  풍년화에도 종류가 여럿 있습니다. 빛깔도 노란 색을 기본으로, 자주색에서 연두색, 그리고 같은 노란 색이지만 조금 다른 노란색까지 다양합니다. 지난 주말 우리 수목원의 겨울정원에 자리잡고 서 있는 모든 풍년화는 여느 봄 못지않게 풍요로이 피었습니다. 옛 사람들의 믿음처럼 올 한해의 살림살이가 지난 해의 침잠을 거뜬히 이겨내고 한없이 풍요로워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풍년화의 개화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이 여느 봄에 비해 훨씬 더 고맙고 뿌듯한 봄의 들머리입니다.

  고맙습니다.

- 사람의 소망을 담고 특별한 생김새로 피어나는 풍년화 꽃을 바라보며
2021년 3월 8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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