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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신을 낳아준 조상의 삶을 기억하는 한 그루의 훌륭한 나무 날짜 2021.02.06 13:12
글쓴이 고규홍 조회 189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자신을 낳아준 조상의 삶을 기억하는 한 그루의 훌륭한 나무

  밤 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지난 주에 어머니 기제사를 지내면서 밤을 쳐야 했는데, 언제나처럼 밤 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밤은 남자가 쳐야 하는 일이라 해왔으니, 누구에게 미루지 못하고 고스란히 한 뭉치의 생밤을 쳐내야 했습니다. 박라연 시인이 시에서처럼 “산 채로 껍질을 벗겨내고 속살을 한번 더 벗겨내고 그리고 새하얀 알몸”을 만들어 제사상에 올리려면 어느새 칼날에 여러 차례 가볍게 스친 손가락 끝이 얼얼해집니다. 밤 치는 기술이 모자라서이기도 할 겁니다. 좀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이리저리 생각해 보지만, 다른 방법이 따로 없겠지요. 게다가 제수 음식에 성의를 다 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해서, 그냥 밤을 치고 또 칩니다.

○ 설 전에 올린 어머니 기제사에 올릴 생밤을 치며 ○

  내일 모레 설이 오면 많은 분들이 밤을 쳐야 하겠지요. 고향에 가기 어려운 이 즈음의 사정 때문에 어쩌면 밤 치는 일까지 뒤로 미루는 일도 적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설에는 생밤 서너 알은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밤은 제사상에 반드시 올려야 하는 제수 가운데 하나입니다. 밤나무의 씨앗인 밤을 심어 키우면, 새싹이 나와 자라는 동안에도 씨앗의 껍질이 썩어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더러는 3년까지 남아있다고 하지요. 그래서 밤나무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기특한 나무라는 게 밤을 제사상에 올리는 까닭입니다. 밤을 정성껏 치는 건 부모님을 기억하는 과정이라고 한 이유입니다.

  밤나무는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의 삶과 함께 한 나무이지만, 오래 된 나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열매를 많이 맺는 거개의 나무들이 그렇듯이 평균적으로 수명이 짧은 탓이겠지요. 지난 가을, 안동 온혜리에서 만난 오래 된 밤나무는 그래서 마음에 오래 남는 나무입니다. 350년이 넘게 마을 중심을 지키며 살아온 안동 온혜리 밤나무는 높이가 12미터 쯤 되고,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2미터 가까이 되는 나무입니다. 나이나 규모에서 모두 여느 노거수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건 아니지만, 밤나무 가운데에서는 오래 된 큰 나무입니다.

○ 지네 모양을 한 마을 앞산의 삿된 기운을 막기 위해 ○

  사실 밤나무는 밤송이의 가시가 성가신 탓에 사람의 발길이 뜸한 마을 뒷동산에 심어 키우는 게 일반적이지요. 까닭에 마을 안쪽의 넓은 마당이나 살림집 근처에서는 크게 자란 밤나무를 찾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안동 온혜리 밤나무〉는 온계리 마을의 중심이 되는 온계종택(溫溪宗宅) 앞 마당 가장자리의 길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영지산 자락에 자리잡은 이 마을의 앞산은 지네 모양이어서, 이 땅의 삿된 기운을 막으려면 밤나무를 심어 키우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퇴계 이황의 조부의 살림집인 노송정종택, 이황의 친형인 온계 이해(李瀣, 1496~1550)의 살림집인 삼백당종택 등을 온전히 보호하기 위해서는 마을 안 곳곳에 밤나무를 많이 심어 키워야 한다는 게 풍수지리설의 해석이었지요. 그에 따라 오래 전부터 마을 사람들은 곳곳에 여러 그루의 밤나무를 심어 키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월 지나면서 정성들여 키우던 밤나무들은 모두 스러졌고, 한 그루의 밤나무만 세월의 풍진을 줄기에 고스란히 담은 채 살아남은 겁니다. 온계종택의 집주인인 이해가 이 집에 사는 동안 손수 심어 키운 이 밤나무가 바로 그 나무입니다.

○ 퇴계 이황의 친형인 이해가 심고 정성껏 키운 나무 ○

  퇴계의 친형인 이해는 고향을 떠나 벼슬살이를 하는 동안 고향을 떠올리며 남긴 글에서 “떠나오기 전에 심은 나무가 꽤 많이 컸을텐데, 아직 나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네”라고 쓴 구절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만큼 자신이 스스로 심어 키운 나무에 대한 애정이 극진했다는 이야기지요. 나무 앞의 ‘온계종택’은 1520년 께에 이해가 노송정종택에서 분가해 살던 집입니다. 1526년 이해가 성균관에 유학하는 동안 이해의 친동생인 이황이 집 떠난 형을 대신하여 어머니를 모시며 5년 동안 지냈던 집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때의 온계종택은 100여 년 전에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사당을 뺀 나머지 모든 건물이 완전히 무너진 건 일제가 이 땅을 넘보고 밀려들어오던 즈음입니다. 그때 이 집에 살던 사람은 이해의 12대 손인 이인화(李仁和, 1859~1929)였지요. 그는 1895년에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벌어지자, 일제 침략에 항거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키고 의병대장 김도현(金道鉉)의 부대에 참가해 유격장, 선봉장 등으로 활약한 인물입니다. 특히 그는 격문(檄文)과 포고문을 집필하여 여러 관청에 보내는 등의 항일운동에 전력을 기울이며 많은 전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 일제 침략자들의 만행을 기억하며 긴 세월을 살아 ○

  이인화가 온계종택을 의병 활동의 거점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일본 관군은 나중에 이 집을 급습하여 불을 질러 파괴했습니다. 결국 1896년 7월 29일, 온계종택은 사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스러지고 말았습니다. 무너앉은 저택 앞에는 오래 된 늙은 밤나무만 남았습니다. 마을에 그토록 무성하던 모든 밤나무가 다 썩어 문드러진 와중에도 옛 사람의 깊은 한을 안고 나무는 끝끝내 자리를 지키고 살아남은 거지요. 온계종택이 다시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게 된 건, 지난 2005년의 일입니다. 국가보훈처와 경상북도 안동시가 ‘온계종택 복원추진위원회’를 결성해 2011년 5월 5일에 비로소 옛 모습을 복원한 겁니다.

  언제나 자신을 살게 한 조상을 기억하는 나무로 우리 마음에 싶이 새겨진 밤나무는 이곳 안동 온혜리에서도 지역의 역사, 한 가문의 역사를 기억하며, 다시 옛 모습을 되찾는 순간까지 홀로 살아남았습니다.

  신축년(辛丑年) 설 즈음입니다. 설보다 꼭 한 주일 앞서서 어머니 기제사를 올리다가 떠올린 한 그루의 고맙고 고마운 밤나무 이야기를 《나무편지》에 담아 띄웁니다. 그리고 다시 새해 인사 올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설 즈음에 조상을 기억하는 나무를 떠올리며 2021년 2월 8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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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신명기 (2021.02.08 11:01)
지난 주 인천 남동구 만의골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전에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멋진 사진과 비슷한 사진도 함께 실렸습니다.
실물로 보지는 못했지만 역시나 아름다웠습니다.
올해는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밤 치는 일은 어느 집이나 비슷하게 남자 몫인가 봅니다.
다섯 이상 모이지 못한다지만 부모님 뵙는 일이니 저 세상에서도
사랑으로 막아주지 않으실까 생각합니다.
밤 칠 준비하면서 명절 기다려야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규홍 (2021.02.08 16:34)
장수동 은행나무는 일부러 찾아가 보실 만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나무 많이 만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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