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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계절이 거푸 지나도 잊히지 않는 나무와 그 곁의 사람들 날짜 2021.01.10 14:26
글쓴이 고규홍 조회 145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계절이 거푸 지나도 잊히지 않는 나무와 그 곁의 사람들

  나무를 찾아다니면서 때로는 마을에 있는 오래 된 큰 나무를 마을 사람들이 채 알지 못하는 경우를 만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물론이고, 나무 주변의 사람살이 이야기가 매우 인상적인 경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영남의 북부 지역을 집중적으로 답사한 지난 해 가을에 의성 용연리가 그 마을이고, 마을 뒷동산 재실 앞에 서 있는 느릅나무와 향나무가 그 나무입니다. 오늘 《나무편지》의 위에 보여드리는 넉 장의 사진이 〈의성 용연리 느릅나무〉이고, 그 아래로 이어지는 사진 넉 장은 느릅나무 맞은편에 서있는 향나무입니다. 두 그루 가운데에 산림청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는 향나무입니다. 보호수는 아니지만, 느릅나무 역시 오래되고 큰 나무입니다.

○ 모레 수요일에 2021년 첫 《나무강좌》를 엽니다. 꼭 오셔야 해요 ○

  2021년을 여는 상동도서관의 첫 번째 《나무강좌》 가 내일 모레인 수요일에 엽니다. 그 동안 많은 분들이 참가를 신청해 주셨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습니다만 상반기 《나무강좌》는 비대면으로 진행합니다. 낯선 방식이지만, 생각보다 편하고 또 별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비대면 강좌는 참가를 신청하신 분들 가운데에 결석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은 편입니다만, 우리 《나무강좌》만큼은 빠짐없이 참석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번 일월 강좌는 상큼한 향기를 가진 모과나무 이야기부터 시작할 건데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유서깊은 향나무 이야기를 함께 들려드리겠습니다.

  https://bit.ly/2WD0IXz <== 상동도서관 《고규홍의 나무강좌》 페이지

  다시 의성 용연리 나무 이야기입니다. 처음엔 느릅나무의 존재는 몰랐고, 향나무가 있다는 사실만 알고 찾아갔지만, 나무의 정확한 위치를 알기 위해서 마을회관 앞 공터에서 뵙게 된 노인들에게 향나무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지만, 다섯 분의 노인들 모두가 “우리 마을엔 그런 나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 큰 마을도 아닙니다. 고작해야 서른 가구 정도의 살림집이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는 작은 마을인데, 마을에서 오래 살아온 노인들이 나무의 존재를 모른다면 기록된 정보가 틀렸을 수 있겠다 생각하고, 그저 마을 구경이나 하려고 골목길을 돌아다니다가 길모퉁이에서 한 노인을 뵙게 되어, 다시 여쭈었지요. 얼마 전에 마을 이장을 지낸 일흔 셋의 신성종 노인이었습니다.

○ 마을 뒷동산 재실 곁 동산 전체를 품어 안은 향나무 ○

  신 노인은 들일 나가려고 막 시동을 걸어놓은 경운기를 길 옆에 내팽개치고는 나무 바로 앞까지 길을 안내해 주셨습니다. 보호수 08-22-03호인 〈의성 용연리 향나무〉는 마을 뒷동산의 재실 곁에 서 있었고, 재실을 가운데로 한 맞은편에는 느릅나무 거목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기록에는 350년 된 나무라고 돼 있지만, 신 노인은 자신이 이장을 지낼 때에 보호수 지정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잘못 적어 올린 것이고, 실제로는 500년 쯤 된 나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오래 된 나무의 나이를 정확히 알아내기는 쉽지 않지만, 향나무는 물론이고, 느릅나무 역시 오래 된 나무인 건 분명했습니다.

  나무 곁의 재실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오래 전에 이 재실을 관리하던 후손들이 모두 떠났기 때문에 지금은 그 내력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 마을에서 살아온 신 노인도 재실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해주지 못했습니다. 정체가 궁금한 재실 담벼락에 바짝 붙어 자란 〈의성 용연리 향나무〉는 재실 반대편으로 가지를 멀리 펼친 아주 근사한 나무입니다. 향나무가 수평으로 제 삶의 자리를 넓히는 동안 맞은 편의 느릅나무는 수직으로 솟아올라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서 있습니다.

○ 나뭇가지 하나가 휘묻이하듯 땅 속에 뿌리내리고 새 줄기를 틔워 ○

  〈의성 용연리 향나무〉는 일단 넓게 퍼진 나뭇가지의 품이 엄청납니다. 나무 높이는 10미터밖에 안 되지만, 나뭇가지 펼침 폭은 대략 25미터 정도 됩니다. 높이의 두배가 훨씬 넘는 만큼 가지를 뻗은 겁니다. 사실 이 향나무는 가파른 비탈 아래 쪽으로 나뭇가지를 펼쳤기 때문에 나무 줄기가 처음 나온 자리에서부터 가지 끝까지의 높이가 10미터이지만, 사실 가파른 비탈 아래로 내려뜨린 나뭇가지 부분에서부터 맨 꼭대기까지 수직의 거리를 잰다면 20미터 쯤 됩니다. 전체적으로 엄청난 부피를 가진 나무라고 이야기할 만합니다.

  게다가 나무는 가지를 멀리 뻗어나가다가 자기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땅에 내려앉았는데, 그때 땅에 닿은 나뭇가지는 땅으로 파고 들어가서 3미터쯤 거리를 두고 새로운 가지를 틔워올렸습니다. 마치 한 그루의 다른 향나무처럼 보일 정도의 간격을 두고 자라난 겁니다. 휘묻이 방식과 같이 땅에 닿은 가지가 다시 새 줄기를 키운 겁니다. 이같은 현상은 오래 된 향나무에서 가끔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물론 나무가 휘묻이 방식으로 땅에 새 뿌리를 내린 게 언제인지는 나무의 내력을 설명하는 신 노인도 모르는 옛날 일입니다. 꼼꼼히 살펴보면 새로 솟아오른 향나무 줄기도 수십년은 돼 보입니다.

○ 스스로 ‘못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정말 큰 사람 ○

  향나무 맞은편으로는 높지거니 솟아오른 한 그루의 느릅나무가 있습니다. 한눈에 오래 된 나무임을 알 수 있지만, 이 느릅나무는 특히 뿌리에서 땅으로 올라와 처음 줄기를 내민 부분이 적잖이 신비롭습니다. 한 차례 꺾이면서 중심을 잡고 솟아오른 줄기는 가파른 비탈 자리에서 줄기의 일부가 공중에 살짝 들렸습니다. 나무의 거대한 몸통을 지지하기 위해 줄기가 들려 이룬 허공에는 큼지막한 돌멩이 몇 개가 지탱해 주고 있습니다. 나무의 안위를 걱정하던 신 노인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향나무 못지 않게 아름다운 느릅나무입니다.

  두 그루의 노거수를 편안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손수 길을 인도해준 신노인은 많은 사람이 떠난 고향 마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 두 그루의 노거수를 지키는 일이라고 몇 차례 강조했습니다. 호들갑이나 지나치지 싶은 자만심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눌변의 신 노인은 스스로를 ‘못난 사람’이라면서 고향에 남아 있는 자신이 꼭 해야 하는 일이 곧 마을 선조들의 삶의 자취가 남아있는 재실과 재실 주변의 노거수를 지키는 일이라는 겁니다.

  당장 먹고 사는 일에 바빠 마을 뒷동산에 어떤 나무가 있는지, 무슨 재실이 있는지 관심 갖기 어려운 시절에 나무 한 그루를 지키는 일에 여생을 걸고 살아가는 신 노인은 더없이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하던 일을 젖혀놓고, 나무를 찾아온 낯선 사람을 나무 앞으로 이끌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나무 이야기를 들려준 신 노인이야말로 우리 땅, 우리 마을을 지키는 작지만, 가장 큰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잘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 아름다운 나무 한 그루와 아름다운 사람 하나를 떠올리며 2021년 1월 11일 아침에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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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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