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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 그루가 한 몸을 이루고 건강하게 자란 느티나무 날짜 2020.09.05 18:47
글쓴이 고규홍 조회 233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세 그루가 한 몸을 이루고 건강하게 자란 느티나무

  나무들 사이에는 거리가 필요합니다. 나무뿐이 아니겠지요. 사람을 비롯해, 서로 어울려 살아야 하는 뭇 생명들 사이에는 필경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겠지요. 늘 서로 기대며 살아야 하는 사람살이지만, 때로는 홀로 침묵할 수 있는 자리는 필요할 겁니다. 나무에게는 이 일정한 거리가 생명과 맞바꿀 수 있을 만큼 절박합니다. 스스로 자리를 옮길 수 없는 붙박이 생명이니까요. 일정한 거리를 가지지 못한 나무들은 그래서 최소한의 수명조차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스러지게 마련입니다. 들녘에 홀로 선 은행나무나 느티나무가 천 년을 넘게 장수하는 것과 달리 거개의 오래 된 숲에서 자라는 나무들의 수명이 대략 200년에서 300년에 불과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 조붓한 시골 도로 곁 마을 숲 안의 연리목 느티나무 ○

  상주시 화서면에서 화동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넘다보면, 특별한 느티나무를 만나게 됩니다. 작은 숲을 이룬 고갯마루 도로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느티나무이지만, 마음 먹고 찾으려 하지 않으면 일쑤 그냥 지나치게 됩니다. 여러 그루의 나무가 어울어진 숲의 일부여서 나무의 존재감이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평탄한 도로보다는 앞뒤는 물론이고 맞은편 도로의 상황을 더 유심히 살펴야 할 고개를 넘으면서 도로 가장자리에 서 있는 나무를 살핀다는 건 그리 좋은 운전 방법이 아니니까요. 그나마 둔덕 위쪽의 나무 앞에 세워둔 보호수 표지석이 있기는 합니다만, 주변에 마땅히 쉴 자리는 마련돼 있지 않아서 나무를 보려면 고개를 넘어간 뒤에 되돌아와야 안전합니다.

  2백50년 쯤 된 〈상주 판곡리 느티나무〉를 특별하다고 이야기한 건, 나무들 사이의 거리를 무시한 채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한몸이 되어 살아가는 나무여서입니다. 세 그루 가운데 가운데의 커다란 느티나무는 산림청 보호수 11-24-12-2 로 지정된 나무입니다. 그 큰 나무의 뿌리에 기대어 두 그루의 어린 느티나무가 자라났습니다. 마치 어미가 두 그루의 새끼 나무를 거느리고 서 있는 듯합니다. 동물이야 자신들의 새끼를 일정 기간 동안 곁에 두고 양육한다지만, 식물은 자신의 자손을 곁에 두는 법이 없지요. 어린 생명이 어미 나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 영역을 확대하려는 기본 생육 원리에서도 벗어납니다.

○ 나무들 사이에는 거리가 있어야 하건만, 그래도 나무는 ○

  〈상주 판곡리 느티나무〉는 그러나 생김새만으로 보아서 그의 자식을 곁에 두고 애지중지 키우는 듯한 모습입니다. 마치 쌍둥이처럼 보이는 한 쌍의 느티나무를 좌우에 한 그루씩 거느리고 서 있는 겁니다. 한 쌍의 어린 느티나무도 그리 어린 나무는 아닙니다. 눈대중으로 보아 대략 80년에서 1백 년 쯤은 살아온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나무입니다. 이 어린 느티나무 두 그루가 〈상주 판곡리 느티나무〉에서 떨어진 씨앗이 저절로 뿌리를 내리고 자란 것인지, 혹은 다른 느티나무의 씨앗이 멀리 날아와 뿌리를 내린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세 그루가 한 데 모여 있는 남다른 느티나무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분명히 아닙니다. 앞으로 이 세 그루가 지금 이 상태 그대로 얼마나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아갈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상태는 세 그루 모두 건강합니다. 큰 나무 곁에 뿌리를 내리고 백 년 가까이 어린 나무들이 지금처럼 건강하게 살아온 걸 보면, 더 오랜 세월을 살아갈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나무들 사이에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생육 원리를 떠올리면, 그게 그저 한갓 바람에 불과한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맴돕니다.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지만, 그 마음이 얼마나 식물의 기본 생육 원리를 이겨낼지 모르겠습니다.

○ 연리목 앞에서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살림집 ○

  시골 길 고갯마루여서, 교통 소통이 그리 많지 않으리라는 생각과 달리 나무 터널 아래로 지나다니는 자동차는 적지 않았습니다. 나무의 다양한 표정을 샆피느라 도로 이편 저편을 오가면서, 잇달아 고개를 넘는 자동차를 살펴야 했지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오가는 자동차들을 피하며 나무를 바라보는 중에 한 대의 작은 승용차가 나무 곁을 지나 나무 앞의 살림집 마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자동차에서 내리는 여자는 꽤 높은 볼륨으로 낯선 언어로 통화에 열중하는 중이었습니다. 조용한 길이어서 선명하게 들리는 그 여자의 통화 언어는 낯설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다른 나라에서 이곳 상주로 귀화해 다문화가정을 이룬 젊은 여자였습니다.

  그 여인이 구태여 세 그루가 한 몸을 이루어 자라는 연리목 느티나무 앞에 살림집의 터를 잡은 건 아니겠지요. 어쩌면 자신의 집 앞에 세 그루가 한 몸을 이루고 자라는 느티나무의 존재를 아직 채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이 우리 안에 들어와 하나의 가정을 이루며 살아간다는 것이 마치 이 자리에서 건강하게 살아있는 느티나무 연리목을 닮은 처지이지 싶었습니다. 전화기에 몰두한 채 집 마당을 거니는 여자를 바라보며 미소 지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과 나무가 더불어 살아가면서 보여주는 일치, 혹은 조화가 이렇게 우연처럼 일어날 수도 있지 싶어 흥미로웠습니다.

  연달아 태풍이 올라옵니다. 세력이 조금 약해지기는 할 거라고 합니다만, 그래도 큰 비와 센 바람이 다가오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모두 큰 탈 없이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서로 다른 생명이 만나 하나의 아름다움을 이뤄낸 나무를 바라보며 9월 7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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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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