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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원 비는 한 그루의 회화나무에게 이 땅의 평안을 빌며 날짜 2020.08.23 14:47
글쓴이 고규홍 조회 234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소원 비는 한 그루의 회화나무에게 이 땅의 평안을 빌며

  지난 번 《나무편지》도 숫자로 시작했는데 ……, 오늘 또 다시 숫자를 헤아리게 됩니다. 지난 번에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숫자들 103 …, 166 …. 279 …, 197 …은 고작 시작에 불과했나봅니다. 곧바로 3백을 넘어서 급기야 어제는 397로……, 무려 4백에 가까운 숫자에 이르렀습니다. 애써 이어온 우리의 안간힘을 창졸간에 무너뜨리는 한없이 ‘무지몽매’한 망동들에 말문이 막힙니다. 바이러스는 생명체도 아닙니다. 그저 숙주의 몸을 찾아 헤매고, 숙주의 몸에 들어가 복제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미세한 물질입니다. 이 미세한 물질에 턱없이 몸과 마음을 붙잡혀야 하는 참담하고 황당한 날들입니다.

○ 모두의 안간힘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한없는 무지몽매 ○

  정말 그래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느라 얼굴에 마스크 자국을 새기며 지쳐 쓰러질 때까지 혼신의 힘을 기울이던 의료진들, ‘멈춤’의 시절이어도 사람살이를 이어가느라 밤을 새워가며 온갖 물품을 실어 나르던 택배 기사님들, 사람들 찾지 않는 시장 모퉁이에서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허리띠를 부여잡던 우리네 어머니들, 겨우겨우 ‘재난지원금’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던 이 땅의 민초들, 바로 이 땅의 우리들을 조금이라도 돌아보았다면 이렇게 무책임하고 무지몽매한 짓들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해할 수도, 이해해서도 안 되는 악마의 모습을 우리 안에서 보게 된다는 사실이 정말 어처구니 없다 할 밖에요.

  긴 장마로, 오래전부터 미루고 미뤘던 일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충북 괴산에 다녀왔습니다. 괴산은 개인적으로 ‘나무답사 1번지’라고 부르는 고장입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식물이 8건이나 있으며, 소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처럼 우리가 예부터 가장 좋아한 나무의 노거수가 늠름히 버티고 서 있는 아름다운 나무의 마을이지요. 엊그제 이른 아침에 가장 먼저 만난 나무는 괴산 청안면 읍내리의 회화나무였습니다. 천년을 살아온 ‘괴산 읍내리 은행나무’가 서 있는 청안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는 나무입니다.

○ 백성을 편안하게 보살피는 마음의 고을 동헌 곁에서 ○

  ‘괴산 68’라는 지정번호로 산림청 보호수에 지정된 이 회화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조선시대에 이 지역을 이르는 ‘청안’(지금의 괴산군 청안면)의 동헌이 있던 곳입니다. 태종 때인 1405년에 처음 지은 청안현 동헌은 ‘안민헌 安民軒’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백성을 편안하게 돌아보는 동헌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겠지요.  일제 침략자들이 이 동헌 건물로 주재소로 쓰기 전까지는 그래도 동헌으로 운영되던 곳이라고 합니다.‘괴산 68’호인 보호수 회화나무는 동헌 건물을 둘러싼 기와돌담 바깥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고을 사또가 주재하던 때에는 동헌의 앞마당이 지금보다 더 넓었으리라 짐작됩니다. 물론 그때에는 이 회화나무가 아직 생명을 얻기 전이었겠지요.

  괴산 읍내리 회화나무는 300년 쯤 된 나무입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처음에 동헌을 지은 1405년 즈음에는 아직 이 자리에 뿌리 내리지 않았겠지요. 물론 그 뒤로 일본의 침략자들이 이 건물을 빼앗기 전, 고을의 동헌으로 이용되던 어느 때에 이 자리에 뿌리를 내린 것이겠지요. 3백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나무는 16미터까지 높지거니 키를 키웠고, 둘레 4미터 가까이 줄기도 살을 찌웠습니다. 게다가 사방으로 고르게 뻗어낸 나뭇가지의 품은 높이보다 더 넓어 보입니다. 어느 쪽에서 바라보아도 풍요로운 나무입니다.

○ 오래 전부터 사람살이의 소원을 들어주며 살아온 나무 ○

  가지퍼짐이 거침없이 변화무쌍하게 뻗어나가되, 어느 한 군데 도드라지지 않고 미끈한 나무껍질을 가진 회화나무는 엣 선비들이 ‘선비나무’ 혹은 ‘학자수’라고 부르며 무척 좋아했던 나무입니다. 중국에서도 회화나무는 학자, 혹은 벼슬을 상징하는 나무로 여기면서, ‘출세목(出世木)’ ‘행복수(幸福樹)’라는 별명으로 부릅니다. 우리나라의 옛 학동들은 회화나무의 꽃이 피어나면, 곧 과거 시험이 다가왔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회화나무의 꽃이 피어나는 계절은 바로 여름입니다. 읍내리 회화나무에도 꽃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한창 때는 좀 지났습니다. 이미 입추도 지났고, 어제는 가을에 들어섰다는 처서이기도 했으니까요.

  괴산 읍내리 회화나무는 ‘소원을 비는 나무’라고 합니다.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건 아니고요. 출세를 상징하고 과거 급제를 기원하는 나무였다는 옛 풍습을 이어받은 겁니다. ‘수능 시험’이 있거나 중요한 승진시험이 있는 사람들이 나무를 찾아와 옛 선비들이 나무 앞에서 과거급제의 소원을 빌었던 것처럼 소원을 빌면 잘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소원성취 여부와 무관하게 이만큼 크고 아름다운 나무 곁에 다가와 잠시라도 고요 속에 들게 한다면, 충분히 과거 시험과 같은 온갖 시험을 더 잘 준비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을 채비할 수 있지 싶습니다.

○ 다가오는 태풍에 큰 탈없이 평안히 지내시기를 기원합니다 ○

  주중에 태풍이 올라온답니다. 많은 비를 품은 강한 태풍이라고 합니다. 결실의 계절 가을을 본격적으로 맞이할 채비에 나서야 할 처서까지 지나는 즈음에 맑은 하늘 바라보고 상큼한 바람 맞으며 이 땅의 큰 나무 곁에 들어서는 일, 조금 더 미루어야 할 모양입니다. 태풍이야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사람의 힘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을 이토록 허망하게 망쳐버리는 일만큼은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소원 비는 괴산 읍내리 회화나무’에게라도 제발 사람과 나무가 평안하게 더불어 살 수 있는 날을 지켜달라고 간절히 빌어야 할 모양입니다.

  고맙습니다.

- 다가오는 가을을 평안하게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며 8월 24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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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신명기 (2020.08.27 10:16)
엊그제가 칠월칠석이었지요
소원을 비는 나무라고 하니 칠월칠석이 생각났습니다.
어린시절 제 동네 어르신들은 칠월칠석이 되면 마을에 있는 공동 우물에 들어가
물을 다 퍼내셨지요. 1년에 한 번 우물 대청소 날이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건 마을 사람들 모두 무병하게 무탈하게 지내게 해달라는 소원을 비는 행사였습니다
학자수, 행복수 나무에 비는 마음이나 우물을 청소하며 비는 마음이나 한 마음이었겠지요.
제 자식 두 번 수능을 치게 하면서 조용한 절에 가서 무릎 꿇으며
어머님께서 제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뒷곁에 정화수 떠놓고 빌었던 장면,
집 한켠 작은 방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셨던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허망하게도 괴상망측한 소원을 빌며 광화문에 모이고
종교행사에 모이고, 유흥을 즐기느라 모이는 사람들로 인하여
맑고 깨끗한 소원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안타까울 뿐입니다
힘내세요~^^
고규홍 (2020.08.28 10:11)
성원의 말씀, 고맙습니다. 엊그제가 칠석이었군요. 그것도 모르고 지나갔네요. 세상 일들이 그리 복잡했던 모양입니다. 우물 대청소..... 정화수.... ㅎㅎㅎ. 참 정겨운 옛날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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