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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름다운 사람의 손길을 타고 자란 아름다운 나무 하나 날짜 2020.08.08 17:20
글쓴이 고규홍 조회 213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아름다운 사람의 손길을 타고 자란 아름다운 나무 하나

  쏟아붓는 장맛비에 모두 안녕하신지요. 심한 상처를 남기며 장맛비가 대책없이 이어지는 날들입니다. 모두가 처음 경험하는 길고도 험한 장마에 여전히 발길이 묶인 채 지난 번 《나무편지》에 이어 오늘도 배롱나무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장마 핑계로 작업실에서 나가지 않고, 허수로이 띄운 지난 주의 《나무편지》에서는 여름의 대표적인 꽃인 배롱나무의 꽃을 보여드렸습니다. 오늘은 배롱나무를 이야기할 때면 떠오르는 특별한 배롱나무를 소개하겠습니다. 지금쯤 한창 붉은 꽃이 만발했을 크고 아름다운 〈강릉 오죽헌 배롱나무〉입니다.

○ 1400년대 초반에 처음 지은 오래된 살림집 ○

  강릉 오죽헌은 잘 아시는 것처럼 신사임당의 살림집입니다. 오죽헌은 지금부터 600년 쯤 전인 1400년대 초반에 당시 이조참판을 지낸 최치운이 처음 지은 살림집이지요. 그 뒤 몇 차례에 걸쳐 주인이 바뀌었는데, 사임당이 태어나기 얼마 전에 사임당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 집의 주인이 됐습니다. 사임당의 어머니인 ‘용인 이씨’는 시댁이 서울이었지만,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여기에 오래 머물렀고, 사임당도 이 집에서 낳았습니다. 사임당은 혼례를 치를 때까지 이 집에서 자랐고, 혼례 후에도 이곳에서 주로 살았습니다.

  혼례를 치른 여자가 친정에서 사는 게 조금은 특별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임당이 살던 조선전기의 가족문화에서는 그게 남다른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의 가족문화는 어머니, 즉 외가와 친정 중심으로 이루어졌지요. 사임당뿐 아니라 그의 어머니인 용인 이씨가 이 집에서 오래 살았던 것도 그래서입니다. 아버지 중심의 가족문화가 이뤄진 건 그때부터 백 년 쯤 뒤인 17세기의 조선 중기 때부터라고 합니다.

○ 정갈한 살림채 앞마당 가장자리를 지키고 서서 ○

  정갈한 살림채 앞마당 가장자리에 서 있는 〈강릉 오죽헌 배롱나무〉는 배롱나무는 오죽헌의 여러 상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임당이 손길을 타고 자란 나무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나무의 나이가 육백 년 쯤으로 보이는 것을 바탕으로 하면 나무를 심은 사람은 사임당이 아니라, 이 집을 처음 지은 최치운일 겁니다. 사임당이 태어날 때에는 이미 백 년은 된 큰 나무였을 겁니다. 그러나 그때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잘 자라던 줄기가 죽어 스러졌다고 합니다. 그 뒤에 죽지 않은 상태의 뿌리 곁에서 세 갈래의 새 줄기가 솟아나 지금에 이르른 겁니다.

  율곡이 이 집에 머무를 때에는 이미 새로 솟아난 줄기가 뚜렷했다고 하니, 새로 자란 줄기도 이미 사백 년은 넘었다고 봐야 할 겁니다. 죽음을 이겨내고 다시 이처럼 아름다운 자태로 살아난 게 자못 신기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집 주인의 따뜻한 배려가 있는 탓이었을 겁니다. 따뜻한 날씨를 좋아하는 배롱나무에게 강릉의 기후가 좋은 조건일 리 없으니 나무가 몸살을 겪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겠지요. 높이가 4미터 쯤 되는 〈강릉 오죽헌 배롱나무〉는 산림청 보호수로 지정된 중부 지방에서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배롱나무라 할 수 있습니다.

○ 중부 지방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볋한 배롱나무 ○

  나무를 찾아 다니는 길 위에서 배롱나무는 참 많이 만났습니다. 절집에서도 옛집에서도, 혹은 어느 산길의 길가에서도 만났지요.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무더위를 안고 길 위에 나서야 하는 한여름에 나그네의 몸과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는 나무로 배롱나무는 여느 나무 못지않게 고맙고 반가운 나무입니다. 크고 아릅답게 자란 배롱나무들도 많이 만났습니다만, 뜻밖에도 중부지방에서 만나게 되는 〈강릉 오죽헌 배롱나무〉는 이 땅의 여느 배롱나무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 나무입니다.

  이번 주 중반쯤이면 남부지방에서부터 비는 그칠 듯하다는 예보입니다. 그리고 장마 물러간 뒤의 이번 주말은 ‘말복’입니다. 더위 풀리고 선선한 바람 불어오려면 아직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하겠지만, 이제는 조금이나마 평안한 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봄조차 통째로 빼앗긴 채, 맞이해야 한 여름이었는데, 이제는 모든 분들이 더는 힘들지 않은 날들이 다가오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길고 험한 장마에 모두가 나무처럼 건강하시기를 바라며 8월 10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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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신명기 (2020.08.19 15:36)
제 일터에서도
가장 뜨거운 이 계절에
대표 얼굴로 피는 꽃이
나무수국과 배롱나무입니다.
하얀 나무수구과 붉은 배롱나무 꽃이 대비되면서 더운 여름을 조금이나마 식혀줍니다.
오죽헌 배롱나무도 이제 강릉 여행에서 인사를 나눠야 할 목록에 들어갔습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 (2020.08.19 18:14)
네. 강릉에 가시게 된다면, 이 배롱나무도 유심히 보셔요. 참 좋은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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