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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지러운 세상이어서 떠올리게 되는 큰 정치가의 큰 나무 날짜 2020.04.11 15:35
글쓴이 고규홍 조회 253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어지러운 세상이어서 떠올리게 되는 큰 정치가의 큰 나무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좀 나아지려나” 하는 기대가 없었던 건 아니었지요. 그래도 고통의 계절이기도 해서, 약간의 기대를 품었던 게 사실이었지만 달라진 건 많지 않았습니다. 언제나처럼 누군가의 고통을 자신들의 이익으로 삼으려고 온갖 말들을 지어내는 파렴치는 물론이고, 며칠만 지나면 필경 언제 그랬냐는 듯 군림하려 들 게 뻔한데도 당장은 길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올리는 몰염치까지……. 지난 며칠 동안에도 뉴스의 대문에 나왔던 구역질나는 이야기들이 아마도 오늘 내일은 극에 이르겠지요. 참 모자라고 못된 인간들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날들입니다.

○ 벼슬 전이나 후가 전혀 다르지 않았던 조선 최고의 청백리 ○

  관심을 내려놓으면 되겠지만, 결코 관심을 내려놓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기에 화가 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옛 사람들이 생각나는 건 하릴없습니다. 몸뚱아리 하나 누일 공간밖에 없는 작은 집 하나에 의지해 평생을 살다 간 당대 최고의 권력가였던 조선의 명재상 고불 맹사성이 떠오른 것도 그래서입니다. 다산 정약용이 시에서 “소를 타고 다닌 맹정승(騎牛孟政丞)”으로 표현했던 맹사성은 벼슬 자리에 오르기 전이나 뒤가 결코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최고의 권력가임을 눈치 챌 수 없을 평범한 차림은 물론이었고, 사리사욕보다는 하늘의 소리를 닮은 피리 소리를 좋아했던 정치가입니다.

  조선 역사 전공자도 아니면서 조선의 정치가 맹사성을 이야기하게 되는 건 그가 손수 심어 키운 나무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작은 집, 충남 아산 배방면 중리의 〈맹사성고택〉에 남아있는 한 쌍의 은행나무가 그 나무입니다. 올 초에 펴낸 제 책 《나무를 심은 사람들》에서도 이야기했던 그 나무입니다. 맹사성은 벼슬자리에 올라서도 백성들 앞에서 겸손한 생활 태도를 흐트러뜨리지 않았습니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찾아오는 손님은 언제나 문 앞에 나가서 맞이하고, 돌아갈 때는 대문까지 배웅했다고 합니다. 부정이니 부패가 끼어들 여지가 조금도 없었던 청백리로서의 삶을 평생 이어가기도 했고요.

○ 몸뚱아리 하나 누일 공간이 전부인 작은 살림집 ○

  직무에 태만했던 것도 아닙니다.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긍익(李肯翊 1736~1806)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전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태종실록(太宗實錄)》이 완성되었을 때입니다. 그때 세종이 선대 임금에 대한 기록을 미리 보자고 했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맹사성은 “실록에 기재된 것은 모두 후세에 보이려는 지금 실제의 일입니다. 전하께서 보신다 하더라도 또한 태종을 위하여 고치지는 못할 것이며, 이제 한 번 보시게 되면 후세의 임금이 본받을 것이므로 사관이 의심하고 두려워하여 사실대로 기록하는 직분을 다하지 못할 것이니, 무엇으로 장래에 신실(信實)함을 전하겠습니까.”라며, 간언했다고 합니다. 물론 성군(聖君) 세종은 맹사성의 이야기를 따랐지요. 생활 태도 뿐 아니라, 그는 직분에도 성실하고 철저했던 현명한 정치가였습니다.

  맹사성이 어린 시절부터 같은 마을에 살던 고려의 맹장 최영은 유난히 그를 아꼈다고 합니다. 손녀와 혼사를 이루게 한 것도 최영 장군의 뜻이었다고 하지요. 최영 장군은 손녀 사위가 된 맹사성에게 자신이 지은 집을 물려주었습니다. 그 집이 바로 지금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살림집 가운데 가장 오래 된 집인 ‘아산 맹사성 고택’입니다. 그 집에 살며 맹사성은 마당 가장자리에 나무를 심었습니다.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칠 때에 은행나무 그늘에서 가르쳤다는 이야기에 따라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이 많이 심었던 은행나무를 골라 심었습니다. 나무를 잘 보호하기 위해 그는 나무 둘레에 단을 쌓아올렸는데, 이를 마을 사람들은 ‘맹씨행단’이라고 부르지요.

○ 마침내 〈이 땅의 큰 나무〉로 살아남은 거목(巨木)의 기품 ○

  마주보고 서있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모두 맹사성이 함께 심은 나무라고 하는데, 규모에서는 서로 적잖은 차이를 보입니다. 나무 앞에 세워둔 보호수 안내판에는 나무의 키가 35m, 줄기 둘레가 9m라고 돼 있지만, 이는 한창 때의 규모이고, 지금은 키나 줄기 둘레 모두 그보다 작아 보입니다. 특히 중심이 되는 줄기가 썩어 부러져 나간 나무는 줄기 둘레를 측정하기도 어렵게 됐습니다. 하나의 줄기보다는 줄기 바깥에 무성하게 돋아나 자란 맹아지(萌芽枝)의 규모가 커서 측정할 기준조차 적당치 않기 때문이지요. 중심 줄기가 없어 허전한 느낌을 자아내지만, 무성한 맹아지 탓에 여전히 거목(巨木)의 기품을 잃지 않고 긴 세월 동안 〈이 땅의 큰 나무〉로 남았습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 고불 맹사성과 그의 나무 〈아산 맹씨행단 은행나무〉이 어느 때보다 특별한 느낌으로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이번 한 주 동안 우리 마음 속을 시끄럽게 만들 다양한 파렴치한 일들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물론 생각하는 만큼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놓아서는 안 되는 관심인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몇 가지 수치들이 바이러스 사태를 조금은 안정적으로 바라보고 싶게 합니다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고 합니다. 의료 전문가가 아닌 마음 속의 안정감은 아직 뒤로 미루어야 할 때이지 싶습니다. 마음의 고삐를 풀지 마시고, 더 건강하게 보내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모두에게 응원의 큰 박수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 야단법석의 진창에서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떠올리며 4월 13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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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신명기 (2020.04.16 18:34)
하, 꼴불견 보시느라 고생하셨을 것 같습니다
봄꽃이 있어 그래도 다행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결과를 보니 그나마 쭉정이를 골라낼 힘이 아직은 우리 국민에게 있구나 하는 생각에
작은 위안을 가져봅니다
맹사성처럼 살지는 못해도
벚꽃잎처럼 많은 '욕심'을 창자 가득 채운 사람들을 하나씩 골라내는 일에
표 하나 던졌다는 것으로
오늘은 순백색으로 핀 모란에게 가서 인사하렵니다~^^
슈베르트의 '김예지 피아니스트'가 국회의원이 되었더군요
미래한국당에~~
고규홍 (2020.04.18 07:08)
모란이 벌써 피었군요. 비온 뒤에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아침입니다. 세상도 이처럼 말끔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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