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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찾아서w
제목 살아있음을 더 또렷하고 평안하게 느낄 수 있기 바라며 날짜 2020.02.08 10:30
글쓴이 고규홍 조회 309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살아있음을 더 또렷하고 평안하게 느낄 수 있기 바라며

  《나무 강연》 중에 “살아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에 관해 자주 말씀 드리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그래서 “최소한 제게는”이라는 전제를 놓고, 말씀 올리곤 합니다. “다른 생명의 체온을 느끼는 순간”은 저로서는 살아있다는 걸 가장 뚜렷하게 느끼는 순간이라고 말씀드립니다. 내가 다른 생명, 특히 낯선 생명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 더불어 그의 몸을 손수 만지고, 그의 체온을 느끼며 그 역시 살아있다는 걸 내 몸으로 확인한다는 것, 달리 말하면 그가 살아있다는 생명의 느낌을 내가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가장 뚜렷한 증거 아닌가 싶은 겁니다. 이른바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생명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 아닐까 싶습니다.

○ 끊임없이 외부 세계를 내부의 성소로 들어놓아야 하는 생명 ○

  “우리 몸은 역동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왜냐하면 몸은 생물학적 과정에 따라 만들어졌다가 분해되기를 거듭하기 때문이다. 숨을 쉬고 음식을 먹을 때마다 우리는 외부 세계를 스스로의 ‘내부 성소聖所’로 들여놓는다.” 법의생태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학문의 선구자로 알려진 영국의 퍼트리샤 월트셔가 최근에 내놓은 화제작 《꽃은 알고 있다 The nature of Life and Death》의 한 대목입니다. 살아있다는 건 내 몸 안과 밖의 끊임없는 교환으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바깥 세계와의 철저한 차단만이 내 삶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강고한 수단이 되어버린 이 즈음의 세상살이 사정에 안타까움이 클 수밖에 없는 건, 생명으로서 살아가는 방식을 온전하게 이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무를 다시 바라봅니다. 한 곳에 뿌리박고 살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많은 생명체를 자기 품 안으로 불러들이고, 끊임없이 다른 생명과의 교호 과정을 통해 살아가며, 마침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로 살아남는 나무를 바라보며 ‘더불어 산다는 것’의 참 뜻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무는 때를 가리지 않고, 다른 생명과 가진 것을 나눕니다. 나무는 애써 양분을 만들어 꿀과 꽃밥을 가득 담은 꽃을 피워 다른 생명에게 나눠줍니다. 나무 스스로도 번식의 목적을 이루며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나무가 살아가는 생존전략이기도 합니다.

○ 다른 생명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양식을 지어놓고 ○

  거개의 생명이 추위에 움츠러든 한겨울에도 나무는 다른 생명을 기다립니다. 활동이 뜸한 곤충들의 눈에 잘 띄기 위해 더 화려하게 단장하고 엄동 추위 속에서도 오지 않는 다른 생명을 기다리며 겨울을 납니다. 중뿔남천의 꽃이 그렇습니다. 다른 계절의 꽃에 비해 유난스레 밝은 형광빛 노란 색으로 피어난 꽃은 북풍한설 이겨내며 오래오래 피어 있습니다. 아무리 춥고 떨려도 기다려야 합니다. 스스로 양식을 짓지 못하는 다른 생명이 이 겨울을 지낼 수 있는 양식을 지어놓고, 하냥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다가 기력이 다 떨어질 만큼 오래 기다렸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마지막 순간에는 자디잔 꽃 송이 안쪽에 들어있는 수술이 작은 자극만으로도 움찔거리며 제 꽃가루를 암술머리에 묻히며 번식의 절차를 치르고 시들어 떨어집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다른 생명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마침내 최악의 경우를 맞이한 중뿔남천은 그토록 피하고 싶던 ‘자가수정’을 통해 삶의 목적 일부를 서럽게 달성합니다. 중뿔남천 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잘게 피어나는 에리카의 꽃도 이 차디찬 겨울을 장엄하게 버티는 장한 꽃입니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은 꽃이지만, 그의 생명력은 위대하다고 할 만합니다. 중뿔남천 꽃과 마찬가지로 겨울 바람 처음 불어오던 지난 12월 쯤에 피어나기 시작한 꽃은 조금도 시들 기색 없이 이 겨울을 버텨냈습니다. 누구를 기다리는지, 어떤 모양으로 혼사를 이뤄 번식을 이어가는지 저는 아직 모릅니다.

○ 슬프도록 아름다운 자디잔 꽃 송이로 겨울을 버텨내 ○

  그러나 그가 세상의 어떤 커다란 생명체 못지 않게 강인한 체력을 가진 생명이라는 것만큼은 압니다. 에리카는 키도 작은 나무입니다. 평범한 어른의 무릎 높이까지도 올라오지 못하는 앙증맞은 키의 나무입니다. 잘 자라봐야 우리가 흔히 울타리에 줄지어 심어 키우는 회양목에도 훨씬 못 미치는 작은 나무이지요. 그가 피워내는 꽃 역시 정말 작습니다. 통 모양으로 피어나는 에리카의 꽃은 폭이 2밀리미터도 채 안 되고, 길이는 6밀리미터 쯤밖에 안 됩니다. 상당히 작지요. 그 자디잔 꽃 앞에 무릎을 꿇고 신께 경배하는 자세로 머리를 조아리면 그제서야 비로소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 꽃인지 보게 됩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슬퍼질 지경입니다. 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작은 몸으로 이 겨울을 나는 에리카 꽃에 경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새 책에 보내주신 격려에 다시한번 고마움의 인사 올립니다 ○

  다시 또 새 책 《나무를 심은 사람들》 이야기 보탭니다. 지난 주에는 주중에 새 책에 대한 언론의 기사들을 소개하는 《나무편지》를 띄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경제지인 《아시아경제》에서는 거의 한 면을 털어서 《나무를 심은 사람들》을 소개했습니다. 기자의 독후감 형식으로 쓰인 그 칼럼에서 기자는 제가 책에 소개한 여러 이야기 가운데에 특히 마라톤의 영웅 손기정과 그가 독일에서 가져와 심은 대왕참나무 이야기를 상세히 소개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성원하시는 모든 분들께 의미있는 책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시아경제》 책 소개 기사 보기
  《나무를 심은 사람들》 상세 보기, 구입하기

  오늘 《나무편지》에 담은 사진 가운데 처음 두 장의 사진은 ‘창원 북부리 팽나무’이고, 그 다음 두 장은 천리포수목원의 ‘중뿔남천’ 꽃이며 그 다음 두 장은 역시 천리포수목원의 ‘에리카’ 꽃입니다.

- 세상의 다른 생명과 더 평안하게 생명됨을 나눌 수 있기 바라며
2월 10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솔숲닷컴(http://solsup.com)의 '추천하기'게시판에 '나무 편지'를 추천하실 분을 알려 주세요.
접속이 어려우시면 추천하실 분의 성함과 이메일 주소를 이 편지의 답장으로 보내주십시오.

○●○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신명기 (2020.02.13 15:38)
적어도 저에게는
교수님 나무이야기는 '나무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 나무에게 배우며 살아가는 이야기'로 읽힙니다.
학문으로 나무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누가 그리 '감동'을 받겠습니까.
학문으로 나무에 접근한다면 누가 그리 '재미'를 느끼겠습니까.
교수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인생의 지혜'를 깨닫게 됩니다.
그게 나무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자연철학'이겠지요.
옛날에 '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백성'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던 사람들처럼
교수님은 '나무에게 이야기를 듣고'
저희들 같이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무지렁이들에게 들려주시는~~
고맙습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규홍 (2020.02.14 09:06)
아. 명기님. 그렇게 봐 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성원하시는 마음 늘 잊지 않고 새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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