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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람 차도 생명활동을 이어가는 나무들의 겨울나기 날짜 2020.01.11 12:05
글쓴이 고규홍 조회 484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바람 차도 생명활동을 이어가는 나무들의 겨울나기

  겨울은 씨앗과 열매의 계절인 게 분명합니다. 나무들이 지난 계절 동안의 노동의 수고를 다 한 잎을 내려놓고, 다음 세대를 위한 치열한 준비로 씨앗과 열매를 익혀가고 더러는 배고픈 짐승들의 먹이가 되어 어미 나무로부터 멀리 떨어질 채비에 한창입니다. 겨울 숲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아무래도 온갖가지 씨앗과 열매들입니다. 초록 잎이 무성한 가운데에 빨간 열매를 매다는 호랑가시나무가 있는가 하면 초록의 잎을 모두 떨군 뒤에 새빨간 열매만 남아 이 겨울을 가장 화려하게 보내는 낙상홍 종류의 나무도 있습니다.

○ 낙상홍 : 세대를 이어가려는 거룩한 생명의 씨앗 ○

  지난 계절까지 숲 한켠에 서있던 낙상홍은 사실 그리 존재감이 크지 않았습니다. 여러 종류의 낙상홍이 있긴 해도 대부분 낮은 키의 관목형 나무인데다 봄에 피어나는 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찬 바람 거센 이 겨울에는 여느 나무보다돋보이는, 겨울 숲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가을 지나며 무성했던 초록 잎을 서서히 내려놓은 낙상홍은 가지 위에 조롱조롱 맺어올린 새빨간 열매를 피워올렸습니다. 더 없이 아름다운 열매입니다. 여기에 온 세상을 밝히는 하얀 눈이라도 내린다면 그 풍경은 환상적이라고 이야기해도 될 법합니다. 다음 세대의 생명을 잉태한 씨앗을 품은 열매이니 거룩하기까지 합니다.

  낙상홍이 아니라 해도 겨울 숲에는 다양한 종류의 씨앗과 열매를 볼 수 있습니다. 잎 떨군 나무들이 알몸으로 보여주는 앙상한 줄기가 고스란히 드러난 이 계절에는 더불어 씨앗과 열매를 관찰할 수 있어 좋습니다. 줄기와 열매가 눈길을 빼앗는 와중에도 꽃을 피우는 나무들은 있습니다. 물론 다른 계절만큼 풍성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숲에서는 꽃이 피고 집니다. 돌아보면 삼백 예순 날 단 하루도 꽃 없는 날은 없습니다. 겨울 숲에서 가장 먼저 꽃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크게 알려온 나무는 팔손이였습니다.

○ 팔손이 : 여덟 개로 갈라진 잎사귀 위로 불쑥 올라온 꽃 ○

  늦가을이라고 해도 될 11월 쯤에 피어나는 꽃이지만, 겨울을 나면서도 계속 피어있으니, 겨울 꽃이라고 해도 괜찮을 겁니다. 남부 지방에서 잘 자라는 팔손이는 생명력이 왕성한 우리의 토종 나무입니다. 넓은 잎의 가장자리가 여뎗 개로 갈라져서 팔손이라는 이름을 가졌지요. 그러나 꼼꼼히 살펴보면 일곱 개나 아홉 개로 갈라진 잎이 더 많습니다. 파 꽃을 닮은 팔손이의 꽃 한 송이는 고작해야 5밀리미터밖에 안 되게 작습니다. 자잘한 꽃송이는 커다란 구슬 모양으로 모여 피어난 뒤에 몇 개의 구슬 모양의 꽃차례가 함께 모여서 원뿔형을 이루지요. 초록의 넓은 잎 위에서 피어나기 때문에 금세 눈에 띄는 꽃입니다.

  팔손이에 이어 십이월 중순 쯤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한 나무로 납매가 있습니다. 납매는 중국에서 들어온 나무이지만, 식물원 수목원을 시작으로 요즘은 곳곳에서 많이 키우는 겨울의 대표적인 관상수가 됐습니다. 중국이 원산이어서 당매(唐梅)라고도 부릅니다. 납매의 납은 섣달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그러니까 이름을 풀어보면 ‘섣달에 피어나는 매화’ 정도가 됩니다. 그러나 납매는 매화 꽃을 피우는 매실나무와 전혀 다른 나무입니다. 식물분류학이 체계화하기 전에 이 꽃을 즐긴 옛 사람들은 겨울에 피어나는 꽃의 상징으로 매화를 생각하며 붙인 이름이지 싶습니다.

○ 납매 : 누구보다 짙은 향기로 곤충을 불러들이는 꽃 ○

  모든 꽃이 그렇지만 납매의 꽃은 독특합니다. 여느 꽃들과 다르다고 이야기해야 할 특징이 여럿 있습니다. 우선 꽃잎이 남다릅니다. 해를 향해 곧추서서 피어나는 게 아니라 땅으로 고개 숙인 채 수줍은 듯 피어나는 납매의 꽃잎은 도톰합니다. 눈으로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납매 꽃이 독특한 건 향기입니다. 매우 짙은 향기가 나무 주변에 퍼집니다. 이 즈음에 활동이 적은 매개곤충을 불러들이기 위해 납매는 향기를 멀리 퍼뜨려 자신이 피어난 목적인 꽃가루받이를 이루려는 전략인 거죠. 한두 송이만 피어도 향기를 느낄 수 있지만, 지금 온 가지에 활짝 피어있는 납매 주변에는 자스민 향을 닮은 꽃내음이 가득합니다.

  겨울에 피어나는 꽃이라고 개화의 남다른 목적이 있는 건 아닙니다. 꽃가루받이를 이루어 씨앗을 맺고 자손을 번식시키려는 목적에서 모두 똑같습니다. 그러나 바람에게 중매를 부탁하는 풍매화를 빼면 대부분의 꽃들은 곤충들의 도움으로 혼사를 이루지요. 그런데 곤충들이 활동이 뜸한 이 계절에 피어난 꽃들이 살아가는 전략은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납매처럼 더 강한 향기를 풍기면서 이 계절을 보내는 겁니다. 그리고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곤충을 기다리기 위해 누구보다 강인한 체력을 가져야 하지요.

  팔손이에서 시작한 겨울에 피어나는 꽃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생각보다는 많은 편이라고 해도 됩니다. 빨갛게 피어나는 동백나무가 있고, 노란 색으로 피어나는 뿔남천이 있으며, 자디잘게 피어나는 에리카도 있습니다. 그밖에 또 다른 겨울 꽃들 이야기는 다음 《나무편지》에 이어가기로 하고, 새해 들어 띄우는 두 번째 《나무편지》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바람 찬 겨울에도 이어지는 나무의 생명활동을 생각하며 1월 13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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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신명기 (2020.01.29 15:54)
음력 설을 치른지 엊그제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집이나 회사에서 큰 화분에 키우는 팔손이도 야외에서 월동을 하나요?
팔손이를 서울에서 화단에 심으면 나무로 자라서 겨울을 나는 건가요?
고규홍 (2020.02.01 09:43)
네. 명기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팔손이가 서울 지역에서 월동하는 게 어려울 겁니다. 팔손이가 주로 남부지방에서 자란다고 하는 건, 중부지방에서 월동이 불가능한 때문입니다. 저도 아직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중부지방으로 분류하는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에서는 팔손이가 자랍니다. 남부지방에서만큼 왕성하게 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월동도 잘 하고, 큰 문제 없이 자라는 걸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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