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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에 의해 지켜진… 공룡과 더불어 살아온 나무 날짜 2019.12.08 11:41
글쓴이 고규홍 조회 393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사람에 의해 지켜진… 사람보다 오래 살아온 나무

  붉게 물들었던 단풍 잎을 거의 바닥에 내려놓은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을 걸었습니다. 언제나 사람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 나무의 시간을 맞추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조금만 일찍 찾았더라면, 이 아름다운 길의 커다란 나무들이 보여주었을 굉장한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었을텐데……. 조금 아니, 많이 늦었습니다. 손이 시렵고 살을 파고드는 바람 따라 나무는 붉게 물들었던 가는 잎을 거의 내려놓았습니다. 조붓한 길 위로는 그래서 환한 붉은 빛의 단풍 잎이 양탄자를 덮은 듯 화려합니다. 나뭇가지 위에서가 아닌 나무의 뿌리 위 흙은 덮은 단풍을 자박자박 밟으며 걷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황홀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메타세쿼이아라는 다소 생경한 이름의 나무를 처음 심은 건 1956년입니다. 식물육종가 현신규 선생님이 미국에서 처음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지요. 처음에는 빠르게 자라는 이 나무를 방음이나 방열 효과를 위한 건축 내장재로 이용하기도 했지만, 가로수와 조경수로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몇몇 지역에서 심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20년 쯤 지난 1972년에 전라남도 담양군에서는 본격적으로 메타세쿼이아를 가로수로 심어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담양에서 순창을 잇는 국도 24호선의 담양군청에서 금성면 원율삼거리 사이 길의 양 가장자리에 5년 된 메타세쿼이아 1,300그루를 심어 키운 게 시작입니다.

○ 공룡 시대에 번성했던 나무가 이룬 메타세쿼이아 숲길 ○

  그때만 해도 이 길을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도로는 좁습니다. 오가는 길이 1차로씩인 좁다란 길 양편으로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우뚝 솟아오른 메타세쿼이아는 극적인 장엄함을 보여줍니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이 길의 풍경을 뛰어넘기는 어렵습니다. 길이 조금만 더 넓었더라도 이처럼 극적인 장엄함은 줄어들었을 겁니다.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는 학동마을부터 순창과의 경계지점인 달맞이공원까지 총 8.5㎞나 이어집니다. 그 가운데 학동마을에서 시작하는 1.8㎞ 구간은 아예 보행자 전용도로로 지정했어요. 원래 자동차가 다니던 길의 일부 구간을 차 없는 거리로 만든 것이지요.

  자동차 길을 바깥 쪽으로 돌려내고, 아예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공룡 시대에 번성했던 나무와 숲의 신비로움을 넉넉하게 즐길 수 있는 가로공원으로 보존하게 된 겁니다. 더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기 위한 담양군의 노력도 계속됐습니다. 30미터라는 놀라운 높이로 줄지어 선 메타세쿼이아가 양쪽으로 거대한 병풍을 둘러친 안쪽으로는 눈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띄엄띄엄 편히 앉아 쉴 수 있는 긴의자를 놓기도 했고, 거대한 병풍 바깥으로는 멀리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한 주차공간도 마련했습니다. 또 메타세쿼이아 뿌리 근처로 맥문동을 줄지어 심은 건 아주 절묘합니다. 곧게 솟아오른 메타세쿼이아 그늘 아래에서 보랏빛으로 화려하게 피어나는 맥문동 꽃의 풍경 또한 이 길의 장관입니다.

○ 베어낼 뻔 했던 나무를 마을 사람들의 힘으로 지켜 ○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의 가치가 처음부터 인정된 건 아니었습니다. 물론 담양읍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이야 놀랍도록 빠르게 자라는 메타세쿼이아가 보여주는 신비로운 자태에 감탄하기야 했겠지요. 그렇다고 그 가로수 길이 지금처럼 전국적으로 알려진 건 아니었습니다.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의 아름다움과 가치가 널리 알려진 건 이 아름다운 나무들이 한꺼번에 베어질 위기에 처하면서부터였습니다. 2000년의 일이었습니다. 담양 순창간 국도를 4차로로 확장하는 공사가 계획되고, 2차로 양편의 나무들은 어쩔 수 없이 베어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그때 담양 지역 사람들은 나무 지키기에 발벗고 나섰습니다. 담양가로수사랑군민연대라는 모임이 결성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나무 살리기에 나섰지요. 가로수를 살리려고 나선 주민들의 자발적인 운동에 전국적인 관심이 집중됐고, 그 동안 채 알지 못했던 메타세쿼이아의 장엄한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마침내 도로 건설 계획은 수정될 수밖에 없었고, 나무는 주민들의 노력으로 지켜졌습니다. 이어 산림청과 생명의 숲에서는 이 길을 ‘아름다운 거리숲’으로 지정했고, 또 도로 건설을 주관하는 건설교통부에서는 ‘전국의 아름다운 도로 100선’에 선정했으며, 한국도로교통협회에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꼽았습니다.

○ 경북 포항에서도 화석으로 발견된 화석 나무 ○

  전국적으로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의 장관을 직접 본 사람들이라면 그 아름다움을 잊지 못했고, 마침내 전국의 지자체들이 앞다퉈 메타세쿼이아를 가로수로 심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는 결과가 됐습니다. 지금 전국 어디서라도 볼 수 있는 메타세쿼이아는 그러니까 담양 메타세쿼이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야기해도 전혀 어긋남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담양은 메타세쿼이아길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품 숲이 되었고, 우리나라의 모든 메타세쿼이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메타세쿼이아는 6천5백만년 전부터 2백만년 전까지를 가리키는 신생대 제3기인 마이오세 때에 이 땅에 살았던 나무로 처음에는 화석으로만 발견됐던 나무입니다. 우리나라의 경북 포항에서도 이 시기의 화석에서 메타세쿼이아의 흔적이 발견된 적이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지요. 그러나 4천만 년 전에 지구에 찾아온 빙하기에 메타세쿼이아는 지구 상에서 사라진 나무로 알려졌습니다. 메타세쿼이아의 존재가 다시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41년, 일본의 식물학자인 미키 시게루 박사가 식물 화석을 연구하다가 세쿼이아를 닮은 나무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화석으로만 존재하는 그 나무를 세쿼이아 이상의 나무라는 뜻에서 ‘메타세쿼이아‘라고 학계에 발표했습니다.

○ 인간과 생명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이 땅의 나무 ○

  비슷한 시기에 중국의 산림공무원 중 한 사람이 사천성 동쪽 양쯔강 상류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우연히 낯선 나무를 찾아보고 이를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연구한 결과 마침내 1946년에는 이 식물이 이미 일본의 미키 박사가 식물학계에 멸종식물로 보고한 메타세쿼이아와 같은 종류의 나무임을 확인했지요. 화석으로만 확인할 수 있던 멸종식물로 알려진 메타세쿼이아가 여전히 건강하게 생존하고 있음을 알게 된 쾌거였습니다. 그때부터 메타세쿼이아는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전 세계에서 널리 키우고 있는 모든 메타세쿼이아는 바로 중국의 양쯔강 상류가 고향인 나무로 보아야 합니다.

  나무를 바라보며 인류와 생명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다는 건 언제나 가슴 뛰는 일입니다. 사람의 수명으로는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긴 세월을 살아온 메타세쿼이아가 수억 년 전의 그때와 다름없이 신비로운 자태를 띠고 줄지어 서 있는 아름다운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 그 길에서의 보낸 겨울 한낮이 하냥 따뜻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공룡과 더불어 이 땅에 살아온 메타세쿼이아 숲에서 12월 9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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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신명기 (2019.12.09 17:04)
그리 크지 않은 나라인데도 담양 메타세콰이아 길을 겨우 세 번인가 걸었습니다.
마지막 걸었던 게 벌써 까마득한 구석기 시대로 느껴집니다.
그때 함께 걸었던 사람 얼굴도 구석기 유물처럼 아득하구요.
교수님 덕분에 제 옛날 발자국을 따라 뒷걸음 해보았습니다.
메타세콰이아 밑에서 행복하게 던졌던 웃음이 교수님 사진 속에서 다시 살아 났습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 (2019.12.10 05:40)
오. 그러실 수 있었다니, 저로서 영광입니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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