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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나가는 것, 떠나가는 것, 사라지는 것들을 …… 날짜 2019.11.30 13:16
글쓴이 고규홍 조회 115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지나가는 것, 떠나가는 것, 사라지는 것들을 ……

  지나가는 것, 떠나가는 것, 사라지는 것들을 떠올리는 아침입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십이월입니다. 바람도 알맞춤하게 차갑습니다. 슬며시 찾아와서 잠시 머물다가 곁을 지나가서 멀리멀리 떠나버린 바람을 생각합니다. 짧아서 더 소중하게 생각했던 가을 바람의 내음이 가슴에 오래 남습니다. 유난히 분주하게 보낸 탓일 겁니다.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어느 때보다 더 많은 글을 썼던 가을이었습니다. 더 오래 머무르도록 담아두기 어려웠던 가을 바람이기에 더 아쉬운 느낌으로 남는 게지요.

  지난 가을, 지나는 길에 스쳐 지나지 못하고, 가던 길을 되돌려 머물러야 했던 나무가 있었습니다. 붉은 단풍 아름다웠던 〈영주 태장리 느티나무〉입니다. 이 나무를 바라보려고 떠난 길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지나는 길이었지요. 길 위에 머물렀던 시간이 적지 않다 보니, 이제는 지나는 길 어디 쯤에 어떤 나무가 있는지를 습관처럼 짚어보곤 하게 됩니다. 짬이 되기만 하면 그냥 지나지 못하고 나무 앞에 들렀다가 아예 행선지를 바꾸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영주 태장리 느티나무도 그랬습니다. “길 왼편 멀리로 나무가 보이겠구나” 하면서 창밖을 내다보며 자동차의 속도를 줄이는데, 아! 흐린 가을 하늘 위로 붉은 단풍이 아름답게 차오른 느티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 돌아갈까 말까를 망설여야 했던 아주 잠깐 사이에 자동차는 이미 느티나무를 스쳐 지났습니다. 꽤 멀리까지 지나왔지만, 도무지 그냥 지날 수는 없었습니다. 잠시 머릿속에 시간 계산이 들어찼습니다. 나무 곁에 머무르는 시간 만큼 원래의 행선지로 가는 길은 서둘러야 하겠지요.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은 단순 계산의 해답이 떠오르기 전에 나무 향한 그리움이 일었습니다. 길머리를 되돌릴 수밖에요. 나무 곁에 다가갔습니다. 붉게 물든 영주 태장리 느티나무 앞에 가만히 섰습니다. 순식간에 마음이 따스해졌습니다.

  언제나 아주 짧은 순간에 사람의 마을을 스쳐 지나가는 단풍입니다.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일지 모릅니다. 빠르게 다가오는 겨울을 채비하기 위해 나무들이 한껏 서두르는 겨울 채비이니 그럴 수밖에요. 다음 행선지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고, 길지 않은 시간이나마 느티나무 붉은 단풍을 그냥 편안하게 바라보았습니다. 흐린 가을 하늘 위로 가을 바람이 스쳐 지나갑니다. 이 바람 따라서 더 없이 아름답게 물든 붉은 느티나무 잎새들도 한햇동안 매달렸던 나무에서 하나 둘 떠나가겠지요. 그리고 다시 시간이 더 흐르면 낙엽되어 떨어진 느티나무 잎들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겠지요.

  그토록 아름다웠던 느티나무 단풍도 아마 지금 쯤은 이미 떠나갔겠지요. 그리고 다시 이 세상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겁니다. 떠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가 보여주었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을 가슴에 담을 수 있었던 가을 한낮의 짧았던 시간이 또렷이 기억됩니다. 한 그루의 커다란 느티나무가 건네준 마음의 환희와 평화입니다.

  사라진 것, 떠나간 것, 지나간 것들을 그리워 하고, 그를 대신해 다시 이 땅에 스며들어 나타날 새것, 아름다운 것들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다가오는 겨울을 벅차게 맞이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흔적도 없이 사라진 가을 바람을 떠올리며 12월 2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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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2019.12.03 14:53)
*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은 단순 계산의 해답이 떠오르기 전에 나무 향한 그리움이 일었습니다 *
연애하는 감정으로 느껴지는 문구였습니다.
그리움은 그렇게 계산으로 답이 나오기 전에 마음이 두드리는 곳으로 움직이는 거겠지요~
봄꽃보다 가을 단풍이 더 아름다운 건
가을까지 인생을 살아본 사람들이래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봄꽃이 열 여덟 청춘의 꽃이라면
가을 단풍은 지천명에 이른 연륜의 꽃이라고 해야겠지요
다가올 겨울꽃을 기다려봅니다~^^
고규홍 (2019.12.04 08:06)
늘 이리 꼼꼼히 봐 주시고 좋은 말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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