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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땅에 천 번이 넘는 노란 가을을 불러온 은행나무 날짜 2019.10.11 21:08
글쓴이 고규홍 조회 273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이 땅에 천 번이 넘는 노란 가을을 불러온 은행나무

  ‘파락사(波樂使)’라는 이름의 사신이 있었습니다. 8세기 초 아들의 아내인 스물을 갓 넘긴 양귀비(楊貴妃, 719 ~ 756)와 희대의 염문을 뿌린 현종(玄宗, 재위 712∼756)이 주변국에 파견한 사신이에요. 현종은 새로 지은 악장(樂章)을 주변에 널리 알리기 위해 사신을 파견하며 그 직분을 ‘파락사(波樂使)’라 했지요. 물론 당나라와 일정한 관계를 맺었던 신라에도 파락사가 찾아왔습니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파락사의 신분으로 이 땅에 들어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애초의 이름보다는 나중의 이름 엄임의로 더 잘 알려진 사람입니다.

○ ‘파락사’라는 이름으로 찾아온 당나라 사신 엄임의 ○

  그는 타향 땅에 와서 임무를 마친 뒤 당나라에 돌아가려 했지만, 문제가 벌어졌습니다. 태평성대를 누리던 당나라를 뒤흔든 정변이 벌어진 것이었죠. 고국에 돌아가는 건 위험했습니다. 귀국 일정을 미룬 그는 지금의 강원도 영월 지역인 내성군(奈城郡)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반란이 평정되지 않아 끝내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당나라 파락사는 영월 땅에 눌러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는 아예 새 성씨(姓氏)를 일으켜 세우며 삶의 터를 닦고, 엄임의라는 이름으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성씨가 지금의 영월엄씨입니다. 새 보금자리에서 안정을 찾은 엄임의는 뒤에 조정의 벼슬까지 지냈고, 죽은 뒤에는 내성군(奈城君)에 추봉되기까지 했습니다.

  그가 터잡은 보금자리는 위쪽에 소나무가 우거진 솔숲이 있는 마을이어서, 소나무 아랫 마을, 하송리(下松里)라고 불리는 자리입니다. 최근 들어 급격한 변화가 있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송리는 옛 살림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영월엄씨의 집성촌이었지요. 그러나 몇 해 사이에 이 마을은 상전벽해를 이루었습니다. 와중에 여전히 변함없는 건 한 그루의 큰 나무입니다. 하송리 마을 한가운데에서 천 년 넘게 살아온 영월엄씨의 시조 엄임의가 손수 심은 한 그루의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76호인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입니다. 나무 앞에는 후손들이 영월엄씨의 시조인 내성군 엄임의가 손수 심은 나무임을 증거하기 위해 돌 비석까지 세워두었지요.

○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눌러 살며 심은 한 그루 나무 ○

  엄임의에 관한 기록이 많지 않고, 생몰연대 또한 정확히 알려지지 않아, 나무의 나이를 정확히 헤아리기는 어렵습니다. 이를테면 엄임의가 당 현종이 파견한 파락사였다면 정변은 서기 755년부터 763년까지 무려 9년 동안 지속된 안록산(安祿山)의 난이었을 겁니다. 그 즈음에 영월 하송리에 자리잡고 심었다면 이 은행나무는 무려 1천2백 년이 넘은 나무로 보아야 합니다. 이 나무에 얽힌 가장 일반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어떤 기록에는 엄임의가 고려 때에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郎) 벼슬을 지냈다고 합니다. 고려는 918년에 일으킨 나라이니, 당 현종의 연대와 맞지 않습니다. 또 고려 건국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정변이라면 당나라 희종 말기인 875년부터 884년까지 중국 땅을 뒤흔든 황소(黃巢)의 난이 됩니다. 엄임의가 고려조에서 벼슬을 지냈다면 그렇게 짐작하는 게 더 맞지 싶습니다.

  그렇다면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의 나이는 달라집니다. 1천 1백 년을 조금 넘는 걸로 봐야 하겠지요. 그러나 어느 쪽이든 기록이 없어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시대를 건너뛰면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에 대한 뚜렷한 기록이 나오기는 합니다. 150 년쯤 전인 조선후기에 활동한 문인 신범(辛汎, 1823∼1879)이 이 나무를 찾아보고 남긴 시(詩)가 한 수 있습니다. 그 시에서 시인은 이 은행나무를 “중유천년행(中有千年杏)”, 즉 ‘마을 한가운데에 서 있는 천년 된 은행나무’라고 묘사했어요. 그때에도 이 은행나무가 이미 천년을 넘은 나무라는 걸 모두가 알았다는 증거입니다.

○ 마을 사람의 평화와 안녕을 지켜주는 나무 안의 늙은 뱀 ○

  나무는 키 29m에 가슴높이 줄기 둘레 14.8m라는 거대한 규모로 자랐습니다. 규모만으로도 우리나라에서는 몇 안 되는 거목에 속합니다. 그러나 중심 줄기는 오래 전에 부러져 나가고 주변의 맹아가 큰 키로 자란 탓에 실제로는 그 크기에 조금 못미처 보입니다. 이 은행나무에는 신통력을 가진 늙은 뱀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뱀은 근처에 다른 동물이나 해충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면서 스스로를 지켜왔다고 합니다. 그 무서운 뱀은 주변 마을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더 평화롭게 지켜주는 고마운 뱀이기도 했답니다. 일테면 아이들이 나무에 기어오르다 떨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보호할 뿐 아니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낙들이 나무를 향해 기도를 올리면, 아들을 낳게 해 준다는 전설까지 전해옵니다.

  얼마 전의 사정을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의 빠르고 큰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 그루의 나무는 변함없이 제 자리를 잘 지키고 서 있습니다. 지난 주에 찾아갔을 때에는 그나마 나무 곁에 하나 남아있던 작은 슈퍼마켓까지 사라졌습니다. 이제 나무는 실용적 의미보다 ‘천연기념물’이라는 전시용 혹은 보존용의 의미로 더 오래 지켜지겠지요. 실제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영월 지역의 관광 코스에는 으레 이 은행나무를 들어간다고 합니다. 특히 영월 하송리는 영월의 대표적 관광지 가운데 하나인 청령포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까닭에 스쳐 지나는 관광코스가 됐지요.

  사람도 풍경도 모두 바뀌었지만 나무 만큼은 끄떡없이 제 자리를 지키며 천년 전 옛 일을 기억하며 두런두런 옛 이야기를 건네옵니다. 앞으로도 오래 건강하게 지켜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 제이드가든 가을맞이 프로그램은 마감했습니다. ○

  지난 주 중에 띄운 《나무편지》에서 알려드린 제이드가든의 가을맞이 프로그램의 참가 신청은 지난 주말에 마감했습니다. 프로그램을 진행할 장소가 여유롭지 않아, 그리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에 함께 하지 못하신 다른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다음 프로그램도 잘 준비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천 년 전에 나무를 심은 당나라 사신 파락사를 기억하며 10월 14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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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신명기 (2019.10.15 12:22)
여행을 다니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가 '건물'과 '자연'이 주는 다름입니다.
순간으로는 유럽에서 보는 중세 건축물, 미국에서 보는 현대 건축물을 보며
감탄사를 보내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건 결국 '자연'이 주는 신비함이었습니다.
여행지 목록에 소중한 나무가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고규홍 (2019.10.18 18:44)
네. 좋은 나무들과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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