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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래된 마을, 아름다운 연못과 정자를 지킨 왕버들 날짜 2019.09.28 10:36
글쓴이 고규홍 조회 108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오래된 마을, 아름다운 연못과 정자를 지킨 왕버들

  〈탁류〉의 작가 채만식 선생의 생가가 있는 전라북도 군산의 임피면에는 아늑하고 단정한 느낌의 작은 연못 공원이 있습니다. 읍내리 연지공원입니다. 마을 한켠에 아담한 크기의 연못이 조성돼 있고, 연못 가운데에는 팔성정(八成亭)이라는 정자가 자리잡은 곳입니다. 이 연못은 조선 중기에 임피노성당과 함께 임피현청이 있던 시절에 그 부속 시설로 조성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월 흐르면서 당시의 연못이 상당 부분 무너앉아 나중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입니다. 그리 큰 연못은 아닙니다. 아담한 크기여서, 오히려 마을 사람들이 그냥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아름다운 연못입니다. 연못 가운데의 팔성정도 그때에 새로 지은 정자입니다.

○ 세월의 풍진을 기억하는 나무가 있는 연못 풍경 ○

  어디에서라도 그렇지만 연못을 비롯한 건축물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건 무엇보다 건축물 주변에 살아있는 오래 된 나무입니다. 제아무리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지은 근사한 건물이라 해도 건축물만으로는 그의 역사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우리 옛 일을 기억하게 하는 영화 배경으로 지은 촬영장 건물이 그렇지요. 아무리 옛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해도 시간의 깊이를 느낄 수 없어 어딘가 허전한 게 영화촬영장의 옛 건물들입니다. 옛 건축물을 재현할 수는 있지만, 살아있는 나무만큼은 하루아침에 흉내낼 수 없으니까요. 가끔 나무조차도 인공을 지어내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영화 속에서만 옛 모습으로 위장할 수 있을 뿐 실제 촬영장에 찾아가보면 인공물이라는 걸 금세 알아채게 됩니다.

  그래서 ‘건축물을 완성하는 건 사람이 아니라, 시간’이라고 한 건축가 고 정기용 선생님의 말씀이 더 새롭게 느껴집니다. 군산 임피면의 연지공원에는 연못과 정자를 복원한 것이지만, 세월의 깊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크고 오래 된 나무가 있습니다. 바로 왕버들입니다. 세 그루의 오래 된 왕버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한 그루는 연못 바깥 쪽에 서 있고, 다른 두 그루는 연못 가운데의 팔성정 양 옆에 서 있습니다. 세 그루 모두 훌륭한 나무입니다만, 그 가운데 연못 바깥쪽의 왕버들은 산림청의 보호수로 지정된 노거수입니다.

○ 오백 년 전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왕버들 ○

  높이가 13미터 쯤 되는 연못 바깥의 〈군산 읍내리 연지공원 왕버들〉이 이 자리에 뿌리내린 건 무려 5백 년 전이라고 합니다. 나무가 지나온 세월은 그의 줄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얼핏 보아도 나무에 담긴 세월의 풍진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하나의 생명이 겪어온 생로병사의 굴곡이 살아 있습니다. 5백 년 전이라면 이 곳에 연못을 처음 조성했다고 전하는 조선 중기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한 그루의 왕버들은 임피현청을 세우고, 그 부속시설로 연못을 지은 뒤에 곧바로 심은 나무로 봐야 하겠습니다. 연못이 부분적으로 무너앉았어도 나무가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던 덕에 연못을 새로 복원하고 팔성정이라는 정자까지 지을 수 있었던 겁니다.

  연못 가운데의 팔성정 곁에 찰싹 붙어 서 있는 다른 두 그루의 왕버들도 참 장한 나무입니다. 높이만으로 보자면 5백 년을 살아온 연못 바깥의 왕버들보다 훨씬 큽니다. 그러나 나무에 담긴 세월은 그보다 적어 보입니다. 줄기의 굵기도 바깥의 큰 왕버들에 못 미치는 규모입니다. 팔성정 곁의 두 그루 왕버들은 대략 2백50년 쯤 된 나무입니다. 연못 바깥에서 연못을 지키며 살아온 나무의 연륜의 절반 정도 되는 나무입니다. 두 그루의 왕버들 가운데에 한 그루는 줄기가 뿌리에서 솟아올라온 부분부터 셋으로 나뉘어 솟구쳤습니다. 곧게 솟아오른 나무는 대략 20미터 쯤 높이까지 자랐습니다. 연못 한가운데에서 풍경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나무입니다.

○ 마을을 잘 일궈온 옛 사람들의 흔적과 함께 한 풍경 ○

  정자를 가운데로 두고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다른 한 그루의 왕버들은 얄궂게도 정자 마루 아래 쪽에서 옆으로 줄기를 뻗었습니다. 연지공원 주변을 복원하고 정화작업을 벌인 것이 최근인 것을 감안하면, 나무는 오래 전부터 줄기가 수평으로 뻗었던 것이고, 그 나무의 상태를 바탕으로 정자를 앉힌 것이지 싶습니다. 길게 뻗어낸 줄기는 굵기도 굵기지만 그 울퉁불퉁한 줄기 껍질 부분에서 피어난 푸른 이끼가 세월의 연륜을 증거합니다. 한참 뻗어나간 나무 줄기는 마치 다리쉼이라도 해야 한다는 듯, 일단 바닥에 줄기의 한쪽 끝을 내려놓고, 잠시 쉰 뒤에 수직으로 솟구쳐 올랐습니다. 비교적 자람이 빠른 왕버들에서 흔치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이기는 하지만, 볼 때마다 그의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연지공원 주변에는 옛날 이 고을의 사또를 비롯한 훌륭한 인물들의 공덕을 기리는 공덕비를 잇대어 세워두었습니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것은 아니고, 연지공원을 복원하던 때에 임피면 곳곳에 흩어져 있던 공덕비를 한 자리에 모은 것입니다. 주말이기도 하고, 비도 추적추적 흩어지던 궂은 날씨이기도 해서인지, 연지공원 나무 곁에는 찾아오는 사람 없이 한적합니다만, 언제라도 연지공원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있는 자연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풍경과 분위기가 모두 그렇습니다. 우리 사는 평화로운 마을의 한가운데에서 흐린 가을 오후를 나른하게 지키고 서 있는 세 그루의 왕버들과 함께 긴 숨을 나누는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 느낌은 오래 남을 겁니다.

○ 〈솔숲의 가을 나무답사 – 강화 지역〉은 취소합니다 ○

  알려드립니다. 가을맞이 솔숲의 나무답사를 취소해야 하겠습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소식으로 번거로워진 강화도 답사 이야기입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소식도 그렇지만, 지난 며칠 동안 참가를 신청하신 분이 너무 적었기에 그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답사 시기가 한창 관광 시즌이어서, 하루빨리 버스 예약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현재의 신청 인원으로는 그게 여의치 않았습니다. 이미 취소한 〈일본 히로시마 나무답사〉에 이어 〈강화 나무 답사〉까지 모두 취소하게 됐습니다. 더 흥겨울 내년 봄 답사를 위해 한 차례 숨을 고르는 때로 여겨야 하겠습니다. 성원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직 낮에는 덥다는 느낌이 들긴 합니다만, 오가는 길가에 서 있는 나무들에는 또렷하게 가을 빛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차분하고 풍요로운 가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사람과 나무가 더불어 아름다운 연못 풍경을 그리며 9월 30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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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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