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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찾아서w
제목 이 땅의 사람살이를 고스란히 품어안은 느티나무 날짜 2019.08.22 19:25
글쓴이 고규홍 조회 156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학자수’라는 이름으로 오백년을 이어온 소나무 숲

  소나무 우거진 연미정에 올라
  - 성현

  검푸른 바닷물 제비 꼬리마냥 나뉘고
  거센 물결은 돌아가는 배 밀쳐낸다
  높이 솟은 돌담은 넓은 하늘에 다다르고
  늘어선 늙은 소나무 울울창창 푸르다
  숱한 선지식들 즐겨 찾은 정자였건만
  세월 지나자 바람 이슬만 서늘하다
  술병 다 비울 때까지 한껏 취하리라
  아득히 사라질 잠깐 세월 지나기 전에

  與點馬差使兩員遊燕尾亭
   - 成俔

  碧水中分燕尾長
  驚濤接海送歸航
  石臺百尺臨空闊
  松樹千株化老蒼
  當日衣冠幾登眺
  今來風露暗凄涼
  憑君須盡樽中酒
  回首玆遊亦渺茫

  검푸른 바닷물이 제비꼬리처럼 나뉘었다 해서, 연미(燕尾)라는 이름을 가진 강화도 바닷가의 아늑한 정자 연미정에 올라서, 조선시대 초기의 문인 성현(成俔 1439 ~ 1504) 이 남긴 한시(漢詩)를 떠올렸습니다. 오백 년이 훨씬 넘은 그 시절, 이 자리에는 소나무가 우거졌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지금, 소나무는 한 그루도 없습니다. 월곶돈대 안에 자리잡은 연미정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았지만, 주변 풍광은 오백 년 전의 그것과 전혀 다릅니다. 오백 년 세월이라니 그럴 만도 하지요. 그래도 성현이 이야기한 거센 바닷물결, 넓은 하늘은 여전합니다. 호젓한 풍광으로는 참 좋은 곳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철조망을 등지고 서 있는 오래 된 회화나무 ○

  십 년 쯤 전만 해도 연미정을 찾아가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적잖이 번거로웠지요. 바닷가로 난 강화도 해안도로를 따라 연미정 가까이로 다가서려면 반드시 무장한 군인들의 검문을 받아야 했고, 그들에게 신분증을 맡기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연미정 주변 도로의 왕래가 자유롭고 편안합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지 않은 한적한 도로여서 그냥 드라이브를 즐기기에도 아주 좋습니다. 그래도 연미정을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최근에 자주 찾아갔지만, 갈 때마다 한적한 들녘과 바다 풍경을 유유히 즐길 수 있어 좋았습니다. 아쉬운 건, 아직 연미정 앞 바다쪽으로 촘촘히 메워놓은 철조망의 살풍경한 모습입니다.

  연미정에 오르기 전에 먼저 바라볼 나무가 하나 있습니다. 바닷가 철조망 바로 옆에 서 있는 회화나무입니다. 보호수로 지정 보호하는 3백 년 쯤 된 이 회화나무는 여느 회화나무 못지 않게 늠름하게 자랐습니다. 곁의 철조망 때문에 바라보는 마음이 그리 편안한 건 아니지만, 멀리서도 눈에 들어오는 나무의 생김새만큼은 근사합니다. 나무는 철조망의 가시를 피해 듬직한 줄기를 철조망 안쪽으로 비스듬하게 굽어 자랐습니다. 뒤쪽의 철조망과 앞쪽의 전봇대만 아니라면 나무가 지어낸 풍광이 더 없이 훌륭할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위의 두 장 사진이 그 회화나무입니다.

○ 제비 꼬리 형상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바닷가 풍경 ○

  연미정은 언덕 마루에 자리잡고 있어서 도로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도로에서는 월곶돈대만 보입니다. 언덕을 올라 월곶돈대 안으로 들어서면 텅빈 터 한 켠에 자리한 아름다운 정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정자 양편에 버티고 서 있는 한 쌍의 느티나무 풍광은 절경입니다. 게다가 정자에서 내다보는 바다 풍광은 이 땅의 어느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 못지 않습니다. 이 풍광을 더 잘 즐기려면 우선 연미정 지붕 아래로 편안하게 들어서는 게 좋습니다. 한쪽으로는 너른 벌판이 한적하게 내다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비 꼬리 형상으로 나눠진 바닷가 풍경이 시원스레 펼쳐집니다. 한참 바라보아도 진력나지 않는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연미정에서는 멀리로 휴전선 이북이 맨눈으로 보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떠올리게 하는 자리인 거죠. 저로서는 특히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풍경입니다. 아버지의 고향이 바로 저곳이거든요. 아버지는 잠시 난을 피한다는 생각으로 아무 채비도 없이 조각배를 타고 강화도로 내려오셨다가 그리도 가고싶은 고향에 다시 돌아가지 못한 채 이 땅에서의 남루한 삶을 삼년 전에 마감하셨지요. 그러고 보면, 연미정은 이 땅의 한 많은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지 싶습니다. 소나무 우거졌던 조선시대를 거쳐 한 민족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싸우던 때, 그리고 출입이 제한되던 살벌한 때를 거쳐 편안하게 들고날 수 있게 된 지금까지, 이 민족이 겪은 모든 살림살이를 간직한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조선 시대부터 분단 시대를 거쳐 민족의 한을 품어 ○

  연미정 옆에 서 있는 한 쌍의 느티나무는 오백 년 쯤 된 나무입니다. 이 두 그루의 느티나무는 그러니까, 소나무 우거지던 성현의 조선시대 때부터 이 자리에서 사람들의 한많은 사람살이를 모두 지켜본 나무이네요. 두 그루의 나무가 살아온 역사는 곧 이 땅의 역사와 다를 게 없습니다. 여느 느티나무처럼 넉넉하게 잘 자란 느티나무는 정자 곁에서 정자의 풍치를 더 돋워줍니다. 연미정에 들어서서 성현의 시를 읽어도, 이북에서 내려와 이남에서 살았던 실향민 아버지를 떠올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이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는 까닭입니다. 언제나처럼 나무가 고맙고 고마운 이유입니다.

○ 서강대 평생교육원 ‘숲과 나무의 문화’ 강좌 개설 ○

  서강대 평생교육원 '숲과 나무의 문화' 강좌 소식, 한번 더 알립니다. 이태 전부터 시작한 〈나무인문학〉 강좌입니다. 그 동안 많지 않은 분들과 흥미롭게 진행해 온 강좌였지요. 지난 봄 학기에는 수강 신청 인원이 너무 적어서, 한 학기 건너뛰었습니다. 모두 편안하게 하루의 노고를 풀어야 할 저녁 시간을 뺀다는 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만, 그래도 다시 강좌를 엽니다. 처음 시작한다는 마음 가짐으로 이번 강좌는 강좌 이름도 《숲과 나무의 문화》로 바꾸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수강신청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http://j.mp/2Z77cNp <==서강대 평생교육원 《숲과 나무의 문화》 수강신청 페이지

  이제 팔월의 인사는 오늘로 마무리하겠네요. 다음 《나무편지》는 구월 첫 주에 띄우게 될테니까요. 가을이 옵니다. 모두 평안하게 가을맞이 채비 하시기 바랍니다.

- 민족의 모든 살림살이를 품어안고 서 있는 느티나무 곁에서 8월 26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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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신명기 (2019.08.29 13:42)
검푸른 바닷물이 제비꼬리처럼 나뉘었다
-한자 '연미'는 어떤 감흥도 주지 못하고, 꼭 조금은 촌스럽게 느껴지는 여자이름으로 다가오는데
'제비꼬리'라고 우리말로 풀어놓고 보니 참 이쁩니다.
더구나 바닷물이 갈라진 모양을 제비꼬리에 빗댄 멋스러움에 깜짝 놀라게 되네요~~
요즘은 뉴스 접하다보면 제 마음이 제비꼬리처럼 갈라지는 걸 봅니다~~
교수님도 힘내십시오~^^
고규홍 (2019.08.30 20:10)
그렇네요. '제비꼬리'라는 말이 한자말 '연미'보다 훨씬 예쁘고 좋으네요. 사실 그러고보면, 우리말이 한자말보다는 대개의 경우 훨씬 더 예쁘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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