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를 찾아서 W > 나무를 찾아서 W
나무를 찾아서w
제목 ‘학자수’라는 이름으로 오백년을 이어온 소나무 숲 날짜 2019.08.17 09:49
글쓴이 고규홍 조회 301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학자수’라는 이름으로 오백년을 이어온 소나무 숲

  큰 탈 없이 태풍 지나고 기온이 좀 떨어진 건가요? 아직 생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매미의 애절한 소리는 그악스럽지만, 밤 바람은 이 정도면 충분히 견딜 만하다 싶어졌습니다. 힘 겨운 일이 닥칠 때마다 솔로몬의 지혜가 담긴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말을 떠올리기는 하지만, 몸으로는 당장의 순간을 견디지 못해 안달하며 지내곤 했던 한여름 또한 지나가려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다시 단풍 빛깔 아름답고, 온갖 열매 무르익는 가을이 오겠지요. 따라서 사람의 마을도 다시 바빠지겠지요. 다시 한햇동안 쏟았던 우리의 땀과 눈물을 담은 모든 일을 풍성하게 열매 맺어야 할 시간,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가을 맞이 채비에 나서야 할 참입니다.

○ 서강대 평생교육원 ‘숲과 나무의 문화’ 강좌 개설 ○

  먼저 서강대 평생교육원 소식부터 알립니다. 이태 전부터 시작한 〈나무인문학〉 강좌입니다. 그 동안 많지 않은 분들과 흥미롭게 진행해 온 강좌였지요. 지난 봄 학기에는 수강 신청 인원이 너무 적어서, 한 학기 건너뛰었습니다. 모두 편안하게 하루의 노고를 풀어야 할 저녁 시간을 뺀다는 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만, 그래도 다시 강좌를 엽니다. 처음 시작한다는 마음 가짐으로 이번 강좌는 강좌 이름도 《숲과 나무의 문화》로 바꾸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수강신청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http://j.mp/2Z77cNp <==서강대 평생교육원 《숲과 나무의 문화》 수강신청 페이지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제게도 특별히 좋아하는 숲, 좋아하는 나무가 있습니다. 굳이 특별한 이유를 찾으려면, 학생 시절 때의 답사라든가, 나무를 찾아다니기 훨씬 전인, 젊은 시절에 찾아보았던 혼자만의 소회가 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닌 듯합니다. 그러니까 특별한 이유를 떠올리지 않고서라도 그냥 좋아하는 숲이라는 말씀입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데에 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제게 그렇게 좋아하는 숲, 바로 오늘의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는 영주 소수서원 솔숲입니다.

○ 옛 절 무너앉은 자리에 새 학문의 터전을 닦아 ○

  근처를 지날 때면 언제라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곳이 바로 이 소수서원 솔숲입니다. 때문에 지금 일일이 살피지 않았습니다만, 《나무편지》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했을 겁니다. 그 숲에 또 다녀왔습니다. 도무지 한낮의 햇살 아래 얼굴을 드러내기 어려울 만큼 뜨겁던 지난 주였습니다. 찌는 듯한 무더위는 소나무 울창한 이 솔숲에서도 피할 수 없을 만큼 뜨거운 날이었지요. 발걸음을 뗄 때마다 땀이 온몸에서 흐르는 듯한 무더위였지만, 솔숲을 바라보는 마음은 신기할 정도로 상큼했습니다. 좋아하는 숲인 까닭에 몸으로 느끼는 더위를 마음으로 충분히 넘어선 모양이었습니다.

  이 숲의 소나무들에는 특별히 ‘학자수’라는 별명이 붙어있습니다. 처음 이 자리에 소나무를 심었던 때부터 따라온 별명입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이 자리에 서원을 처음 지은 주세붕입니다. 4백80년 전 쯤 전의 일입니다. 원래 이 곳은 숙수사(宿水寺)라는 옛 절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서원 입구의 당간지주를 비롯해 서원 주변의 곳곳에 남은 불교식 유물은 오래 전에 이곳이 절터였음을 보여주는 뚜렷한 표지입니다. 주세붕이 이 곳을 지나다가 풍광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안향을 봉향하기 좋은 자리임을 알아보고 서원을 건립한 겁니다.

○ 주세붕이 세운 조선시대 최초의 사액서원 ○

  한 해 쯤 걸려, 1538년에 서원은 완성됐고, 주세붕은 처음 뜻 그대로 안향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했습니다. 그는 맞은 편 연화봉 기슭에 늘 흰 구름이 머물고 있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라고 이름지었지요. 이어서 더 많은 유생들이 학문을 도야할 터전을 닦기 위해 관련 서적을 구입하고 서원전(書院田)을 마련하면서 서원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이 즈음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한 안향의 11대 손인 안현(安玹)의 적극 지원으로 백운동서원은 주세붕이 애초에 생각했던 규모 이상으로 넉넉한 기반을 갖추게 되지요. 그리고 또 얼마 뒤인 1550년에는 주세붕에 이어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李滉)의 청원으로 소수(紹修)라는 사액을 받아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이 된 겁니다.

  서원을 근사하게 세웠지만, 남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주세붕의 눈에는 평지에 자리잡은 서원 터의 기운이 약해 보였던 겁니다. 어떻게든 땅 기운을 북독워야 했지요. 주세붕은 결국 서원 입구에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기로 했어요. 이른바 비보림(裨補林)입니다. 주세붕은 기왕에 심을 나무라면 배움의 길을 닦을 유생들의 표상이 될 나무를 심는 게 좋겠다는 데에 생각이 이르렀고, 결국 어떠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학문의 뜻을 굽히지 않는 선비의 절개를 상징할 만한 나무로, 소나무를 골라 심었습니다. 특히 서원으로 들어서는 유생들의 마음을 정화할 요량으로 서원 입구에 여러 그루의 소나무를 심게 된 겁니다.

○ 숲 안의 오래 된 은행나무와 고사목 한 그루도 ○

  그러나 이 숲에 살아남은 소나무를 가만히 살펴보면 5백 년 쯤 되어 보이는 나무는 없습니다. 십 여 년 전에만 하더라도 한 그루의 오래 된 소나무가 있기는 했는데, 그 소나무조차 쓰러진 뒤, 지금 남은 소나무들 가운데 오래 돼 보이는 나무는 2백 년 쯤 돼 보이는 게 고작입니다. 그러니까, 5백 년 전에 주세붕이 손수 심어 키우던 나무는 모두 사라지고, 쓰러진 나무가 있던 자리에 또다시 새로운 소나무를 심어 키우며 오늘에 이른 거죠. 이 솔숲에서 소나무 외에 또 눈에 띄는 나무가 몇 그루 있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의 사진에 나오는 것처럼 경렴정 앞의 은행나무 2그루와 그 앞의 고사목 한 그루입니다.

  소나무 은행나무 고사목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이 땅의 한 시대를 풍미하던 학자들을 양성한 최고의 교육기관 안에서 학자수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은 아름다운 숲과 나무입니다. 《나무편지》로 채 전해드리지 못한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올 가을에 낼 〈새 책〉 《나무를 심은 사람들(가제)》에서 넉넉히 전해드리겠습니다.

  이제 팔월 하순이고, 곧 구월이 다가옵니다. 구월 햇살도 여전히 뜨겁겠지만, 그래도 계절로 치면 구월은 가을입니다. 다가오는 가을, 더 풍요로이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 언제나 삽상한 아름다움을 지닌 솔숲에서 가을을 기다리며 8월 19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솔숲닷컴(http://solsup.com)의 '추천하기'게시판에 '나무 편지'를 추천하실 분을 알려 주세요.
접속이 어려우시면 추천하실 분의 성함과 이메일 주소를 이 편지의 답장으로 보내주십시오.

○●○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신명기 (2019.08.21 11:12)
솔숲닷컴에 맞게
소수서원 솔숲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정말 여름이 가는군요
제 일터에는 나무수국, 배롱나무, 봉숭아 꽃이
여름 열정에 대해 속삭이고 있습니다.
까맣게 익은 포도송이와 점점 둘레를 키우는 호박
감나무 가지 끝에 몸통을 늘어뜨린 조롱박이
가을 사부작 거리며 걸어오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서강대 강좌가 꼭 개설되기를 빌어봅니다~^^
고규홍 (2019.08.21 12:12)
여름 다 간 줄 알았는데, 오늘 아침에는 후텁지근해서 땀이 나더군요. 그래도 곧 가을 오겠지요. 말씀하신 대로 서강대 강좌를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쓴이 비밀번호
보이는 순서대로 문자를 모두 입력해 주세요
등록
목록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