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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라를 지킨 탱자나무에 관해 고쳐 알게 된 몇 가지 사실 날짜 2019.07.13 21:48
글쓴이 고규홍 조회 167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나라를 지킨 탱자나무에 관해 고쳐 알게 된 몇 가지 사실

  아직 채 바람 차갑던 지난 삼월이었습니다. 강화도의 나무들을 찾아 나선 길이었지요. ‘살아있는 역사 박물관’이라고도 불리는 강화도에는 찾아볼 나무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 많은 나무들 가운데에 빼놓을 수 없는 나무가 두 그루 있습니다. 탱자나무입니다. 두 그루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특별한 나무입니다. 이 나무를 처음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1962년 즈음에는 강화도 지역이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 지역이었습니다. 물론 기후가 많이 변화한 지금은 강화도보다 북쪽 지역에서 자라는 탱자나무도 여럿 발견된 상황이어서, 문화재 지정 당시의 식물학적 의미는 사라진 셈이지요.

○ 1962년에 강화도는 탱자나무가 살 수 있는 가장 북쪽 ○

  식물학적 의미가 아니고도 강화도의 두 그루 탱자나무가 갖는 의미는 참 큽니다. 무엇보다 조선시대 때에 나라를 지키기 위한 임무를 가지고 따뜻한 영남 지방에서 공수되어 이 곳에 심어진 나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이 탱자나무는 따뜻한 기후를 좋아하는 제 특징을 버리고도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강화도의 차가운 바닷바람 맞으며 수백 년을 살아온 나무라는 이야기입니다. 강화도의 나무를 찾을라치면 빼놓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물론 강화도에는 찾아볼 나무가 적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전등사의 나무라든가, 강화 성공회의 나무 등도 그렇지요. 뿐만 아니라, 나무 외에도 찾아볼 문화재가 숱하게 많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박물관입니다.

  나무 답사를 이유로 강화도를 찾은 지난 삼월에도 그 두 그루의 탱자나무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인천도시역사관의 인천의 나무 답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한 답사였지요. 그때 역사학자인 배성수 관장님도 동행하셨습니다. 인천박물관장을 지내실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이지요.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탱자나무에 대한 몇 가지 고쳐야 할 이야기들을 알게 됐습니다. 강화도의 탱자나무는 인조 때 토성을 지으면서 그 주변에 심은 여러 그루의 탱자나무 가운데에 여전히 살아남은 탱자나무라고 알고 있었던 사실에 약간의 수정이 필요했던 겁니다.

○ 영조 연간에 강화외성의 보수 과정에 처음 등장 ○

  인조가 정묘호란 때에 강화도로 피신한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고, 병자호란 때에도 일단 남한산성에 피신했다가 강화도로 옮겨가려다가 눈 쌓인 산길이 얼어붙어 말이 제대로 달리지 못해 결국은 한양에 머물렀다는 것도 고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탱자나무를 언제 심었는가 하는 사실이었습니다. 정묘호란 때에 강화도로 피신한 왕을 보호하기 위해 성을 급조했다는 건 좀 고쳐야 할 내용이지 싶었습니다. 당시는 성을 쌓을 상황이 아니었고, 이후로도 청나라의 내정간섭에 의해 현종 때까지 성을 지을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탱자나무도 인조 때에 심은 걸로 보기 어려워집니다.

  배 관장님과 이야기를 더 나누고, 답사에서 돌아와 배 관장님이 전해 준 몇 가지 자료를 차근차근 살펴보면서도 배 관장님의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인천도시역사관의 책임자이신 배 관장님의 인천 지역 역사에 대한 지식의 폭은 넓고도 깊었습니다. 관장님의 안내에 따라 강화도 탱자나무에 대한 중요한 자료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조선시대에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설치한 기관인 비변사의 일지 형태 기록인 《비변사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영조 25년인 서기 1749년 음력 8월 20일의 기록에 남긴 ‘강화유수 원경하(元景夏)의 상서’에 강화도의 성벽 보수 과정과 탱자나무 이야기가 나옵니다.

○ 영남지방에서 더 많은 탱자나무를 가져오라는 지시도 ○

  강화유수는 상서에서 “장마비로 무너진 곳이 성의 절반이 넘어 가슴이 아프다”며 성의 보수에 많은 비용을 쓰지 않고도 장성(長城)을 만들 수 있는 계책으로 나무를 심을 것을 이야기합니다. 또 강화 지역민을 동원해 나무를 열심히 심으면 6〜7년 안에 2백리에 이르는 거리를 성처럼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는 거죠. 그렇게 할 경우, “밖에는 아득한 바다가 자연스럽게 호참(濠塹)을 이루고 있어 적을 방어하는 계책이 이것보다 좋은 곳은 없을 것이며, 연해의 토성(土性)도 탱자나무를 심기에 가장 적합하여 종종 진(鎭)·보(堡)가 밀림(密林)이 된 곳이 많습니다”라고 합니다. 덧붙여 그는 “고려(高麗)의 최영(崔瑩)이 탐라국(耽羅國)을 격파하지 못한 것은 그 가려진 지책(枳柵:탱자나무 목책) 때문”이다고 탱자나무 성곽의 효용성을 강조합니다.

  만일 그 동안 탱자나무가 많이 있었다면 특별히 탱자나무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달랐을 겁니다만, 기록에 남은 문장으로 보아 처음 탱자나무를 심자는 제안으로 보입니다. 바다의 소금기를 이기지 못해 쓰러지는 허술한 성벽을 보수하면서 비용을 낭비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인 방호책으로 떠오른 게 탱자나무였던 겁니다. 마흔 여덟 개의 돈대를 비롯해 강화외성은 숙종 때에 짓지만, 바닷가의 소금기와 장맛비로 무너앉은 성벽을 보수하기 위해 영조 연간에 탱자나무를 많이 심은 거죠. 탱자나무에 대한 자료는 그밖에도 더 있습니다. 이를테면 영남 지방에서 공수한 탱자나무의 양이 모자라니, 더 적극적으로 탱자나무를 가져오라는 왕실의 지시도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 가을에 출간할 새 책에 상세하게 정리하여 …… ○

  강화도의 탱자나무 이야기를 하면서 몇 가지 맞춰지지 않는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혼자서는 그 자료를 찾기 어려워 긴가민가했던 부분이 풀리는 듯합니다. 이 탱자나무 이야기는 올 가을에 출간할 새 책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처음 작성한 초고에는 긴가민가했던 부분을 그대로 담았다가 지난 주말에 최종 탈고를 하면서 고쳐 쓰게 됐습니다.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시고, 더불어 자신의 논문과 여러 자료까지 흔쾌히 내주신 배 관장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 드립니다. 오늘 《나무편지》의 사진들은 바로 그 탱자나무 사진입니다. 위로부터 넉 장의 사진이 천연기념물 제78호인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이고, 아래로 넉 장의 사진은 천연기념물 제79호인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입니다.

  지난 주, 삼복이 시작인 초복이 있었습니다. 삼복더위에 들어선 거죠. 한해 중 어느 때보다 건강에 조심하실 때입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 나라를 지키려 본성까지 바꾼 나무를 생각하며 7월 15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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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신명기 (2019.07.22 08:37)
제 살던 시골에도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었습니다
시골 탱자나무들은 크기가 제 허리정도로 작았습니다
모든 울타리가 살아있는 나무라면 정말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탱자나무처럼 가시 달려있지 않아도
나무 울타리는 제 역할을 다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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