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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화를 잃은 도시에서 전설을 안고 서 있는 천년의 나무 날짜 2019.01.27 14:20
글쓴이 고규홍 조회 195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신화를 잃은 도시에서 전설을 안고 서 있는 천년의 나무

  주말 도시의 이른 아침은 한적합니다. 평일이었다면, 일터로 들고나는 사람들의 재우치는 발길로 분주한 거리입니다. 한 은행나무가 그 길에 음전하게 서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나무가 살아온 세월은 천년이 넘는 오래 된 나무입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이처럼 오래 된 나무를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나무 안에 든 천년의 세월은 한꺼번에 느껴지지 않습니다. 나무와 더불어 살아남은 사람이 없으니 나무의 나이를 옳다 그르다 말할 수는 없지만, 나무 줄기에서 드러나는 세월의 풍진은 무척 긴 세월을 떠올릴 만합니다.

○ 부천의 나무 가운데 으뜸인 천년 은행나무 ○

  부천시 보호수 제1호인 부천 소사본동 은행나무입니다. 경인선 철도를 중심으로 부천시의 북쪽은 예전에 복숭아를 비롯한 과수원 단지였습니다. 지금의 상동 중동이 있는 곳이지요. 삼십여 년 쯤 전에 과수원을 모두 갈아엎고 이제는 번듯한 신도시가 됐습니다. 그 반대편인 경인선 철도의 남쪽 지역은 오래 된 마을이 있었던 곳입니다. 구도심이라고 이야기하는 곳입니다. 천년의 은행나무가 서 있는 소사본동은 구도심의 중심입니다. 나무 앞에는 세종병원이라는 종합병원이 있고, 언덕을 몇 걸음 더 올라가면 서울신학대학교 교정이 나옵니다. 언제나 도시인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번잡한 곳입니다.

  기록에는 나무의 높이가 30미터로 돼 있습니다만 그건 한창 때의 높이였을 겁니다. 지금은 10미터 남짓으로 짐작되는 낮은 키의 나무입니다. 심각한 병이 든 걸로 보이지는 않지만, 심하게 늙은 나무여서, 살아있는 순간순간이 힘겨워 보입니다. 나무를 조금 더 오래 살아남게 하려고 사람들은 나뭇가지의 상당 부분을 잘라냈습니다. 그 바람에 한때 풍성했으리라 생각되는 나뭇가지는 거의 없습니다. 나뭇가지가 하나 둘 잘려나가는 과정에서 높이가 작달막해진 겁니다. 오래 된 나무이지만, 뜸직하기보다는 옹색해보일 수밖에요.

○ 겉으로 드러난 뿌리가 흙에 덮이지 않아야 하는데…… ○

  우리나라의 오래 된 거개의 나무가 그렇듯이 이 은행나무도 언제 누가 심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저 마을에서 오랫동안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라서 천 년쯤 전부터 이 자리에서 자란 나무로 짐작할 뿐입니다. 특별히 전해오는 남다른 이야기도 없습니다. 아니, 있었겠지요. 하지만 숱한 이야기를 마음에 담고 살던 사람들은 모두 나무 곁을 떠나고, 이제는 나무만이 그 많은 이야기를 홀로 간직했을 뿐입니다. 한 가지 이야기가 그나마 남아있습니다. 뿌리 부분에 복토를 해서 땅 위로 드러난 뿌리를 감추어지면, 마을에 역병이 돈다든가 다른 화가 생긴다든가 하는 좋지 않은 일이 줄지어 벌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무에 전해오는 이야기대로 부천 소사본동 은행나무를 처음 찾았을 때에는 흙 위로 뿌리가 무척 많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오래 된 수첩을 뒤져보니, 이 은행나무를 처음 만난 건 2002년입니다. 그때와 지금 유난히 달라진 게 바로 뿌리 부분입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달라진 게 없습니다만, 땅 위로 드러나있던 은행나무의 뿌리 상당 부분이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겨울 바람 찼지만, 나무 앞에 서서 한참을 보았습니다. 위의 사진은 지금의 나무 뿌리 부분을 담은 사진이고, 아래 사진은 제가 이 나무를 처음 만난 17년 전의 사진입니다. 좋은 디지털카메라가 없던 시절에 담은 사진이어서, 사진 상태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만, 줄기 둘레로 헤아릴 수 없이 무성한 뿌리를 볼 수 있습니다.

○ 신화와 전설을 잃은 시대를 살아가는 도시의 나무 ○

  아무리 전설을 믿지 않는 과학의 시대라 해도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일을 일부러 했을 리는 없습니다. 아마도 세월 흐르면서 뿌리 부분에 흙먼지가 쌓이고, 그 흙먼지에 깃들어 살게 된 또다른 작은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면서 이렇게 달라진 걸로 보입니다. 자연스레 이뤄진 현상이라고 생각해야 하겠습니다만, 그래도 아쉽습니다. 신화와 전설을 잃어가는 사회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합리와 실용을 우선 챙겨야 하는 세상이다보니, 신화와 전설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 겁니다. 옛 이야기를 따져보기에 요즘 사람들, 더구나 도시인들은 너무 바쁩니다. 결국 비유와 상징으로 지어낸 ‘인류의 가장 오래된 철학’, 신화는 사라집니다. 도시에서부터 그렇습니다.

  다시 오늘처럼 월요일 아침이면, 나무 곁으로는 숱하게 많은 도시인들이 지나가겠지요.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더구나 나무 앞에 멈춰서기에는 바람도 아직은 찹니다. 천년의 전설을 담고 천년을 살아온 부천 소사본동 은행나무는 이제 바라보는 사람 많지 않아도 예전과 다를 바 없이 그저 묵묵히 제 삶을 살아갑니다. 앞으로 그가 얼마나 더 우리 곁에 머무를지는 알 수 없을 만큼 늙은 나무이지만, 나무는 지금 사람보다 더 먼저, 더 정성을 다해 새 생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무 곁으로 흐르는 바람은 그래서 차지만 싱그럽습니다.

  오래 된 은행나무 곁으로 스치는 바람결에서 생명의 기미를 찾으려 잠시 더 머무를 수 있는 찬란한 봄이 어서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 천년 은행나무 앞에서 천년의 신화를 생각하며 1월 28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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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신명기 (2019.01.31 11:43)
호스피스병동
오늘 글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입니다
천년 은행나무가 팔다리 잘리면서 가는 길이 꼭~~
천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은행나무로부터 받았을 위안을 생각하면
이제 남은 힘겨운 여정은 위안을 받은 후손들이 챙겨줘야~~될 듯 싶습니다
한기필 (2019.02.11 09:48)
어릴적에 소풍을 가거나 친구들 따라 놀러 소사동에 가면 엄청 큰 은행나무가 우리를 반겨주었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늘 푸르게 살것 같은 이 나무도 늙고 병이 들어 이렇게 살고 있군요
교수님!! 새해 건강하시고 우리도 이 은행나무 처럼 병들지 말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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