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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를 이어갈 2세들이 지켜가는 특별한 나무의 기품 날짜 2018.11.18 12:55
글쓴이 고규홍 조회 394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대를 이어갈 2세들이 지켜가는 특별한 나무의 기품

  가을이 떠난다고 해야 할지, 겨울이 다가온다고 해야 할지……, 빠르게 아주 빠르게 계절이 흘러갑니다. 어제와 오늘이, 아침과 저녁의 날씨가 조금씩이나마 분명하게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는 시절입니다. 봄도 그렇지만 이 땅의 가을은 참 짧습니다. 어쩌면 이 가을의 빛깔이 너무 아름다운 까닭에 스치듯 지나는 시간이 더 아쉬운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곁에서 우리와 더불어 지난 계절을 잘 살아낸 나무들도 겨울 채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곱게 단풍 물 올렸던 나뭇잎들은 하나 둘 낙엽하여 차곡차곡 뿌리 곁에 쌓였습니다. 지난 여름의 무더위가 몹시 견디기 어려웠던 것처럼 다가오는 겨울 추위도 견디기 쉽지 않으리라는 기상예보로, 여느 해보다 겨울 채비가 더 조심스러워야 할 늦가을입니다.

○ 어미 나무를 이어갈 다음 세대의 후계 나무들 ○

  겨울 채비야 그렇다 해도 나무가 대를 이어갈 다음 세대에 대한 채비까지 서두를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사람의 곁을 흐르는 시간의 속도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매우 느린 속도로 흐르는 시간을 살아가는 나무이니까요. 나무의 다음 세대를 걱정하는 건 순전히 사람의 조바심 탓이겠지요. 그래도 한 그루의 큰 나무가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모습은 여간 대견한 게 아닙니다. 어미 나무의 늠름한 위용을 따르기에는 아직 턱없이 어린 나무이건만 다음 세대를 채비하는 후계목의 당돌한 애옥살이가 한층 푸르러 보입니다.

  평범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호적까지 가졌을 뿐 아니라 재산까지 소유하고 특별한 명성을 지키고 있는 예천 석송령의 후계목 이야기입니다. 예천 석송령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나무입니다. 이웃의 풍기 지역에 큰물이 들었을 때,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로 뿌리째 뽑혀 떠내려오던 소나무가 지나던 나그네의 손에 의해 꺼내어져 개울 근처 마을 어귀에 심어진 건 지금으로부터 육백 년 전의 일입니다. 잃을 뻔했던 생명을 사람에 의해 되찾은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면서 마치 생명의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마을의 사람살이를 지켜주는 당산나무가 되었지요.

○ 사람에 의해 되찾은 생명으로 사람을 지켜 ○

  평범한 당산나무라고 하기에는 그의 생김새는 지나치게 훌륭하게 컸습니다. 이곳에 심어진 지 육백 년 만에 나무는 하늘을 향해 10미터 정도 키를 키웠습니다. 높이로는 그리 큰 나무가 아니지만 나뭇가지는 무려 30미터 정도까지 사방으로 펼쳤습니다. 높이 솟아오르기보다는 사방으로 더 넓게 퍼지는 특징을 가진 소나무 종류, 즉 반송입니다. 오래 전에 눈이 많이 오던 때에 한쪽의 큰 가지라 부러져 전체적인 균형이 조금 흐트러지기는 했지만 묘한 불균형이 오히려 그를 더 아름답게 합니다. 물론 그의 위용은 여전히 엄청나다 할 만합니다.

  이 한 그루의 소나무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나무로 널리 알려지게 된 건 1927년의 일입니다. 당시 마을에는 이수목이라는 노인이 살았습니다. 모자랄 것 없이 살던 노인이었지만, 그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자신의 전재산을 토지로 바꾼 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듯 나무에게 물려주었습니다. 노인이 나무에게 물려준 재산은 토지 2천 평이었고, 석송령이라는 이름으로 호적에 등기를 올린 것도 그때 그에 의해서였습니다. 나무가 지키는 마을이 석평마을이고, 또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의 이름이 석간천이어서 석씨 성을 지어주었고, 영혼이 있는 나무라는 뜻에서 송령이라는 이름을 붙여 ‘석송령’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겁니다.

○ 두 그루의 후계목이 이어갈 석송령의 신령함 ○

  사람처럼 호적에 등기한 이름을 갖고 재산을 소유한 나무로는 우리나라의 첫 사례입니다. 그 뒤로 그리 멀지 않은 예천 용궁면에서 또 하나의 재산 가진 나무(이 나무 이야기는 다음 편지에서 전하겠습니다)가 나오기는 합니다만, 이처럼 독특한 사례를 처음 선보였다는 점에서 석송령은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무는 자신의 몸에서 낳은 씨앗으로 자손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위의 사진과 오늘 《나무편지》의 위에서 세 번째로 보여드린 사진이 바로 석송령의 자손인 후계목입니다. 두 그루의 후계목은 아직 청춘인 나무여서 자라는 속도가 무척 빠른 편입니다. 볼 때마다 부쩍 더 자랐다는 느낌을 주곤 합니다만, 이 가을에 찾아본 석송령 후계목 두 그루는 유난히 더 커 보였습니다.

  후계목들이 대를 이을 채비를 마치고 잘 자라고는 있지만, 석송령은 여전히 건강합니다. 굳이 자손에게 자신의 재산을 물려줄 채비를 서둘러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래도 두 그루의 나무가 후사를 잘 준비한 석송령을 만나면 언제나 흐뭇해집니다. 사람과 더불어 사람의 마을에 살면서 마치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이름은 물론이고, 재산까지 가졌으며, 재산을 관리할 통장까지 갖고, 가진 재산에 맞춤한 세금까지 납부하며, 자신의 후사를 이어갈 건강한 후손까지 거느린 나무이니까요. 매우 특별한 나무 석송령 가족이 앞으로도 우리 곁에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아남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 재산 가진 나무 석송령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며 11월 19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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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신명기 (2018.11.23 07:54)
후계목이라는 낱말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대를 이을 수 있다는 건 행복이라는 말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핏줄로 따지자면 제 대를 이을 사람이 자식이겠지만
사람에게 후계자는 꼭 자식에게 한정되지는 않을 겁니다.
고규홍선생님이 일구고 가시는 나무 이야기 후계자가 누가 될지 궁금합니다.
지금 어디에선가 팔팔하게 젊은 피로 석송령 후계목처럼 자라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고규홍 (2018.11.25 08:42)
후계...... 벅차게 다가오는 말씀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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