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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의 마을을 평화롭게 하는 세상의 모든 나무들 날짜 2018.03.10 20:27
글쓴이 고규홍 조회 572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사람의 마을을 평화롭게 하는 세상의 모든 나무들

  지금은 그 학교 운동장도 떠들썩하겠지요. 새 학기 시작하기 며칠 전에 찾았던 그 학교의 운동장은 참 고요했습니다. 저물녘이어서였을까요? 심심한 아이들이라도 나와 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너른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었고, 먹구름 밀려오는 어두운 하늘 아래 운동장은 적막했습니다. 운동장 가장자리에 서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 가지 위로 어둠이 천천히 내려앉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 은행나무 앞에서 겨울 바람과 함께 싸늘하게 내리는 어둠을 맞이했습니다. 평안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뛰노는 초등학교 운동장, 늘 아이들을 품고 서 있는 나무 곁이어서인지, 바람이 찼지만 마음은 따뜻했습니다.

○ 모레 수요일에는 상동도서관 삼월 《나무강좌》가 열립니다 ○

  우선 알려드릴 이야기부터 전합니다. 내일 모레인 수요일은 삼월의 둘째 수요일, 삼월 십사일입니다. 여러 가지로 번거롭고 분주한 일이 많이 일어나리라 짐작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둘째 수요일에는 부천 상동도서관에서 어김없이 월례 《나무강좌》를 엽니다. 삼월 강좌에서는 우리 문화의 속내, 특히 조선 시대 선비와 왕가王家의 문화를 담은 나무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더불어 소나무 가운데에 아주 특별한 생김새를 가진 나무들을 사진과 이야기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덧붙여 ‘삼월의 나무’로 나무들 사이의 거리를 잘 보여주는 남녘 마을의 큰 나무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여러 가지로 마음이 분주한 날 되겠지만, 나무와 함께 평안한 시간 될 수 있도록 잘 준비해 찾아뵙겠습니다.

  이제 학교 운동장의 은행나무 이야기입니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에 있는 청안초등학교 운동장의 은행나무입니다. 청안초등학교는 천구백십일 년에 문을 연 오래된 학교입니다. 올 이월의 졸업식이 무려 백육회 졸업식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네 거개의 시골 학교가 그렇듯이 학생 수는 적습니다. 올 삼월에 입학한 학생은 여섯 명이었습니다. 전체 학생 수를 모두 합해봐야 마흔여덟 명밖에 안 됩니다. 학교 건물에 비하면 썰렁하다 싶을 정도로 아이들이 적은 겁니다. 늘 한적할 수밖에 없는 이 학교가 언제라도 풍요롭게 느껴지는 건 무엇보다 운동장 가장자리에 우뚝 서 있는 한 그루의 오래 된 은행나무 때문입니다.

○ 고을 백성의 평안한 즐거움을 위해 애쓰던 사또 ○

  〈괴산 읍내리 은행나무〉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 제165호로 지정해 보호하는 이 나무는 무려 천 년 넘게 이 자리에서 살아왔습니다. 지금부터 천 여 년 전이라면 고려시대가 되겠지요. 바로 고려의 성종(재위 981∼997) 때 이 자리에는 근사한 연못이 있었다고 합니다. ‘맑은 못’이라는 뜻의 ‘청당淸塘’이라는 고유의 이름까지 가진 연못이었습니다. 연못 청당은 그때 이 고을의 사또, 지금으로서는 군수를 지내던 분이 고을 백성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려 하다가, 기왕이면 연못이 있는 풍경에서 벌이는 잔치가 더 좋겠다고 생각하고, 파낸 연못입니다. 연못을 파낸 뒤에 사또는 연못 가장자리에 여러 그루의 나무를 심었는데, 지금의 은행나무는 그때 심은 나무들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늘 백성의 살림살이가 평안하고 즐거울 수 있도록 애쓰던 사또가 백성을 위해 지은 연못이고 그 곁을 지킨 나무인 거죠. 사또는 얼마 뒤 백성들 곁을 떠났지만, 고을 사람들은 그 뒤에도 사또의 뜻을 기리며 연못과 나무를 잘 보살폈습니다. 그러나 세월 흐르면서, 연못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곁에서 잘 자라던 나무들도 하나 둘 스러지고 말았지요. 그 가운데 은행나무 한 그루만 살아남아, 오래 전의 사또를 기억하게 했습니다. 나무를 소중하게 지켜온 마을 사람들 사이에 전해오는 전설도 있습니다. 은행나무 줄기 안에 다른 짐승처럼 두 귀가 달린 뱀이 산다는 것이지요. 나무를 지키며 살아가는 이 뱀은 나무에 해꼬지하는 사람에게 큰 벌을 내린다는 전설입니다.

○ 괴이한 뱀이 지킨다는 전설 아니어도 잘 지켜질 나무 ○

  지금 이 초등학교 아이들이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그 전설을 알기는 할까요? 안다면, 나무 안에 깃들어 사는 귀 달린 뱀을 무서워는 할까요? 나무 곁에 다가가면 그 무시무시하게 생긴 뱀이 훅 튀어나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학교의 모든 아이들을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몇 해 전에 이 나무 그늘에서 아이들과 함께 둘러 앉아 오래된 나무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 은행나무가 옛날의 훌륭한 사또가 심은 나무라는 것까지 또렷하게 이야기했지만, 귀 달린 뱀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물론 나무 곁에 앉아서도 무서워 하는 느낌을 가진 듯한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지요. 이제는 흉측하게 생긴 뱀이 아니라 해도 아이들이 더 소중하게 나무를 잘 지켜나갈 것임을 믿을 수 있는 까닭입니다.

○ 세상의 모든 나무들과 평화롭게 더불어 살아갈 수 있기를 ○

  느티나무와 회화나무를 뜻하는 한자 槐를 고을 이름에 지니고 있는 괴산槐山은 제가 참 좋아하는 지역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느티나무라고 서슴지 않고 이야기하는 〈괴산 오가리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밖에도 찾아보아야 할 나무는 많습니다. 얼마 전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렸던 〈괴산 삼송리 소나무〉도 그렇습니다. 물론 삼송리 소나무는 예전의 융융한 모습을 잃었지만요. 이제 봄 오면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밖에는 볼 수 없는 나무, 즉 순백의 꽃을 피우는 미선나무 군락지도 괴산에 여러 곳이나 있습니다. 저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곳입니다만, 은행나무 소나무 미선나무, 그리고 미처 다 소개하지 못한 회화나무, 소나무 연리지를 비롯한 여러 그루의 좋은 나무들이 있는 곳입니다.


  당장은 아니라 해도 괴산 지역의 다른 나무 이야기들도 《나무편지》에서 전해드리게 되겠지요. 세상의 모든 나무가 그러하지만, 유독 사람에게 편안한 마음을 건네주는 괴산의 나무들을 그리며 오늘의 《나무편지》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사람의 마을을 평화롭게 하는 세상의 모든 나무를 떠올리며 3월 12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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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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