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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어도 죽지 않는… ‘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나무 날짜 2018.02.25 18:28
글쓴이 고규홍 조회 679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죽어도 죽지 않는… ‘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나무

  우리 나무 소나무 가운데에 ‘왕소나무’로 불리던 나무가 있었습니다. 과거형으로 써야만 하는 게 안타깝습니다만 어쩔 수 없는 일이 됐습니다. 왕소나무의 위엄이 완전히 무너앉은 까닭입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이제 영원히 다시 볼 수 없게 된 왕소나무의 옛 모습과 지금 상태를 사진과 함께 전해드리겠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우선 〈서강대 평생교육원 강좌〉 소식부터 전해드리고 왕소나무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 서강대 평생교육원 봄 강좌 〈나무인문학 - 나무의 문화〉 ○

  서강대 평생교육원 봄 학기 소식, 한 번 더 알려드립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첫 강의가 시작되니, 이번 주까지는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소규모로 이어가는 강좌여서, 여느 대중강연회에서의 강연과는 다른 느낌이 있는 강좌입니다. 이번 학기에는 가을 학기와 차별성을 두어 〈나무의 문화〉를 중심으로 진행할 계획입니다. 삼월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7시부터 3시간씩 15강좌 모두 45시간에 걸친 강좌입니다. 이번 학기에는 의미 있는 현장 답사도 두 차례 포함돼 있습니다. 〈나무인문학 2- 나무의 문화〉 강좌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서강대 평생교육원 〈나무인문학〉 강좌 신청 페이지

  이제 다시 왕이라 불리던 소나무 이야기입니다. 바로 괴산 삼송리 소나무입니다. 천연기념물 제290호로 지정해 보호하던 나무이지요. 오늘 《나무편지》의 위에 보여드린 석 장의 사진은 이 소나무가 왕으로서의 위엄을 가지고 서 있던 옛날 모습입니다. 맨 위의 사진은 왕소나무를 둘러싸고 여러 그루의 소나무가 이룬 작은 솔숲의 전체 풍경이고, 둘째와 셋째 사진은 작은 솔숲 안에 우뚝 서 있는 왕소나무입니다. 사진에서처럼 여러 그루의 소나무가 그 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왕소나무를 호위하고 서 있었습니다. 맨 가운데에 서 있는 왕소나무는 사진에서처럼 늠름하고 근사했습니다. 특히 줄기의 껍질 부분이 붉은 빛이 환하게 드러나서 우리 소나무의 특징을 잘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 언제나 평안하고 아름다운 풍경의 중심이었던 나무 ○

  나무가 서 있는 곳은 괴산 청천면 삼송리입니다. 여기의 삼송리는 한자로 三松里라고 씁니다. 오래 전에 이 마을에 세 그루의 크고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지요. 하지만 그 세 그루 가운데 두 그루는 아주 오래 전에 가뭇없이 사라졌고, 한 그루만 왕소나무라는 이름으로 남았지요. 그리고 이 왕소나무는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주변의 다른 소나무들에 둘러싸여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모두가 이 소나무를 마을의 자랑으로 삼았습니다. 마을 뒤편 동산 언덕 위에 서 있는 이 솔숲은 마을 사람들의 아주 좋은 쉼터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무를 찾아갔을 때, 마을 사람들이 숲 안쪽 그늘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쉬기도 하고, 때로는 아예 드러누워 낮잠에 빠진 사람도 볼 수 있었지요. 이 왕소나무를 찾아보기 위해 멀리서 찾아온 사람을 만난 적도 몇 차례 있었습니다. 어느 풍경이든 사람과 나무가 더불어 살아가는 편안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솔숲의 중심이자 마을의 자존심이었던 왕소나무는 예전의 그 웅장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없게 됐습니다. 그게 지금부터 육년 전, 이천십이년 여름의 일입니다.

○ 태풍 볼라벤의 습격에 어이없이 무너앉아 ○

  그보다 조금 전에 나무에 문제가 있긴 했습니다. 나무가 워낙 웅장하게 잘 생기기는 했습니다만, 세월이 지나면서 나무가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기 시작한 거죠. 어떻게든 이 나무를 잘 보존하려고 마을 사람들을 비롯해 천연기념물을 관리하는 분들이 여러 생각들을 나눴습니다. 왕소나무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다른 소나무들이 커지면서, 정작 왕소나무의 생장 공간이 줄어들었는데, 특히 한쪽의 공간이 부족한 게 원인이라는 판단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나무가 기울어가는 반대편 쪽의 공간을 열어주기로 결정하게 됐습니다. 오랜 숙의 끝에 솔숲의 한가운데에서 왕소나무의 균형을 훼방하는 몇 그루의 나무를 잘라냈습니다. 솔숲 중간이 중동무이난 모습은 볼썽사나웠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긴 시간이 지나면 왕소나무가 빈 공간을 채우며 자라서 다시 아름다운 솔숲 동산이 될 것이며 아울러 중동무이난 솔숲도 다시 온전해지리라 기대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천십이 년 여름에 나무 곁으로 큰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볼라벤’이라는 이름의 강력한 태풍이었습니다. 그렇잖아도 한쪽으로 많이 기울었던 나무는 빈 공간으로 들이닥친 바람의 마력을 견디지 못하고, 뿌리째 뽑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말 참담한 노릇이었습니다. 얼마가 걸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얼마간의 시간만 버텨냈다면 왕소나무도 솔숲도 모두 더 아름답고 건강하게 우리 곁에 오래오래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허사가 되고 말았어요. 볼썽사납던 풍경에 대한 안타까움 억누르며 기다렸던 기대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 살아나기를 많은 사람들이 한 해 넘게 기원했건만 ○

  나무가 뿌리 째 뽑힌 뒤 사람들은 나무가 드러누운 채로라도 살아나기를 바랐습니다. 뿌리가 뽑혀 드러누운 채 살아간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모두가 나무에 공을 들였습니다. 위의 사진들에서 보시는 것처럼 나무 곁에 비계를 설치하고 나무 곳곳을 꼼꼼히 살피면서 수액 주사도 놓으면서 나무를 살리려 애썼습니다. 그렇게 한 해 넘게 많은 분들의 수고와 마을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이 있었지만, 나무는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이듬해인 이천십삼 년 겨울을 앞둔 십일월에 최종 고사 판정을 내렸고, 할 수 없이 천연기념물에서도 해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무는 이제 죽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나무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 상태 그대로라도 마을 사람들은 나무를 소중하게 여깁니다. 뿌리 뽑힌 채 드러누운 처참한 모습의 왕을 찾아보러 갔던 며칠 전에도 쓰러진 나무를 찾아보러 마을 사람들이 다녀갔습니다. 솔숲의 왕소나무는 죽었지만, 사람들의 마음 속 왕소나무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나무는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 속에 오래오래 살아남습니다. 그래서 나무입니다.

○ 드러누운 왕소나무 곁에 수직으로 우뚝 선 후계목 ○

  아, 참 그리고 한 가지 이야기 덧붙입니다. 왕소나무가 죽은 뒤에 마을 사람들은 주민회의를 통해 왕소나무의 후계목을 정했습니다. 바로 위의 사진 두 장이 바로 그 후계목의 사진입니다. 바로 곁에서 왕소나무를 호위하고 있던 호위무사 소나무 가운데 가장 잘 생긴 나무 한 그루입니다. 드러누운 소나무 곁에 수직으로 우뚝 서서 새 희망을 지피고 서 있는 나무에게 큰 박수를 보내며 오늘의 《나무편지》 마무리합니다.


  고맙습니다.


- 드러누운 왕소나무 곁에서 새 희망을 키우는 나무를 성원하며 2월 26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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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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