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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두워가는 저녁, 오래된 제주 민속마을의 큰 나무 날짜 2018.02.04 18:08
글쓴이 고규홍 조회 511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어두워가는 저녁, 오래된 제주 민속마을의 큰 나무

  두 차례에 걸쳐 띄운 한라산 구상나무 이야기의 《나무편지》 편안히 보셨는지요. 특히 두 번째로 띄운 지난 일월이십구일치 《나무편지》의 구상나무 이야기는 나중에라도 짬을 내서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구상나무에 대한 약간의 오해를 조금이라도 올바르게 풀어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쓴 이야기이거든요. 알려진 이야기에 큰 문제가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언제나 사랑의 마음은 상대에 대해 올바로 아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 때문입니다. 구상나무를 ‘크리스마스 트리의 원조’라는 식의 구상나무에 대해 과장된 생각은 오히려 나무에 대한 사랑을 훼방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 어둠 속에서 실루엣으로나마 나무와 나눈 안부 인사 ○

  구상나무에 이어 오늘 《나무편지》도 제주의 나무 이야기로 이어가겠습니다. 구상나무가 아니더라도 제주 답사는 하루 이틀로 모자랍니다. 마찬가지로 제주의 나무 이야기를 담아야 할 《나무편지》도 한두 차례로 마무리하기는 어렵습니다. 지난 주 중에는 충북 괴산의 나무를 찾아보았고, 그 나무들의 애틋한 이야기도 전해드려야 하지만 제주의 나무 이야기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 제주 성읍민속마을의 큰 나무 이야기입니다. 이 마을에는 오래 된 큰 나무가 여러 그루 있습니다. 제주에 들르게 되면 빠짐없이 만나는 나무들입니다.

  이번 답사는 제주 지역이 흔치 않은 폭설에 덮인 상황이어서, 이동이 그리 순탄치 않았습니다. 길 위에 내려놓은 시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제주에서의 두 번째 답사지였던 제주 산천단 답사를 마치고 돌아나오면서 자동차가 눈밭에 빠져 옴쭉달싹 못했다는 말씀은 지난 《나무편지》에서 말씀드렸지요. 그렇게 더디기만 했던 첫날 답사에서는 계획했던 길의 절반 쯤 겨우 지나자 해가 서쪽 바다로 기울어갔습니다. 부랴부랴 성읍민속마을로 달려갔습니다. 마을 입구에 이르렀을 때에는 아직 밤이라고까지야 할 수 없지만, 이미 어두웠습니다. 나무의 세세한 상태를 살피는 건 글렀지만, 그래도 어둠 속에서 나무의 실루엣이라도 바라보며 안부 인사나 나누고 돌아서자는 마음이었습니다.

○ 몇 해 전 태풍 무이파로 쓰러진 한 그루의 팽나무 ○

  제주도 남동 해안 근처의 서귀포시 성읍리는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 제188호로 지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오래 된 마을의 원형을 거의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한 마을인데 여전히 사람들이 살림살이를 이어가고 있는 곳이어서 적지않은 변화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최근 이 마을 전 지역을 원형으로 복원하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그 성읍민속마을의 한가운데에는 크고 잘 생긴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있습니다. 한 그루의 느티나무와 일곱 그루의 팽나무. 모두 합해 ‘제주 성읍리 느티나무 및 팽나무 군’이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 제161호로 지정한 나무들입니다.

  여덟 그루의 노거수 가운데에 한 그루의 팽나무는 지난 이천십이년 팔월에 제주에 불어닥친 태풍 무이파를 견디지 못하고, 뿌리째 뽑혀 넘어갔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느티나무 한 그루와 팽나무 여섯 그루만 남은 셈입니다. 쓰러진 한 그루의 팽나무는 마을의 중심이랄 수 있는 일관헌日觀軒 바로 곁에 서 있던 나무였습니다. 몰아치는 태풍을 견디지 못하고 뿌리 째 뽑혀 쓰러지면서 일관헌 지붕을 파손하기도 했지요. 그때 《나무편지》에서도 쓰러진 나무의 소식을 전하면서, 다시는 복원할 수 없는 나무보다 일관헌이라는 옛 건물의 파손을 더 아쉬워 하는 언론의 보도가 불만스럽다는 이야기를 전해드렸던 기억이 나기도 합니다.

○ 고려 충렬왕 때부터 이 자리에서 자란 느티나무 ○

  남아있는 큰 나무 가운데 한 그루의 느티나무는 무려 천년을 살아온 고목으로 전합니다. 높이는 이십미터를 넘고, 가슴높이에서 잰 줄기 둘레도 사미터를 넘습니다. 다른 팽나무들도 매우 큰 나무입니다. 천년 느티나무보다는 조금 작지만 대략 높이가 십오미터에서 이십사미터 쯤 됩니다. 모두 크고 오래 된 나무들이죠. 가장 오래 된 느티나무의 나이를 천년으로 짐작하는 것은 고려 시대의 기록에 따랐습니다. 즉 고려 충렬왕(재위 1274∼1308) 때부터 이 자리에서 나무가 자랐고, 지금 살아있는 나무가 그 때 그 나무 가운데 하나이리라는 짐작입니다.

  성읍민속마을에는 몇 해 째 되풀이해 찾아오지만, 올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무엇보다 일관헌의 보수공사를 위해 마을 중심을 가리웠던 커다란 가림막을 철거한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칠 것 없이 먼 풍경이 훤히 내다보이는 마을 풍경은 시원했고, 어두워지는 저녁 빛 받은 나지막한 옛 집들은 다정했습니다. 게다가 서쪽 바다로 지는 해가 보여주는 붉은 노을과 큰 눈을 몰고 왔던 먹구름이 먼 바다로 흘러가면서 지어낸 저녁 하늘 풍경은 아름다웠습니다. 검푸른 하늘 아래 까만 실루엣으로 서 있는 느티나무와 팽나무는 그 동안의 여러 답사에서 느끼지 못했던 독특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드러냈습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래서 좋았습니다.

○ 가로등 불빛 품은 나무에 스미는 겨울 바람 ○

  바람 차고, 카메라를 든 맨손을 스치는 바람은 살을 에는 듯했지만, 여러 그루의 나무들 사이를 서두르지 않고 가만가만 걸었습니다. 지나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간간이 지나는 자동차만 띄엄띄엄 눈부신 헤드라이트를 내쏘며 지나다니는 이 한적한 마을에 조금 지나자 가로등이 하나 둘 추억처럼 켜졌습니다. 희미한 가로등에 비친 나무의 실루엣 역시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모든 생명이 자신이 가지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돌아보니 성읍민속마을의 큰 나무들은 유독 밝은 대낮에만 만났다는 게 새삼 떠오르면서 나무 곁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어차피 세세한 나무의 상태를 살펴보는 것도 틀렸고, 나무 곁을 오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나무 이야기를 듣는 것도, 또 나무와 더불어 살았던 이 마을 분들의 집을 찾아들어가 나무 이야기를 듣는 것도 어렵게 된 상황! 그저 홀로 어깨 위에 내려앉는 겨울 바람을 가만히 짊어메고 겨울 나무만 바라보았습니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마을 주변을 더 완벽하게 복원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일관헌 주변을 걸으며, 팽나무 한번 쳐다보고, 팽나무 그늘 아래 들어서서 멀리 바라다보이는 느티나무 한번 더 바라보고. 다시 마을 길을 걸으며 가로등 불빛 품은 팽나무의 나뭇가지 사이에 스민 바람결을 눈 감고 느끼는 늦은 저녁 시간의 나무 산책은 춥지만 감미로웠습니다. 그렇게 제주 성읍민속마을 큰 나무들과의 만남은 또 하나의 큰 추억을 가슴 깊이 새겨주었습니다.

○ 입춘 즈음 … 뒤늦게 알려드리는 일본 야쿠시마 답사 ○

  그러고 보니, 입춘이 어제였네요. 바람은 아직 차가운데 파란 하늘에서 내려오는 햇살에는 봄 기운이 담긴 듯한 느낌도 있긴 합니다. 다가오는 봄이 모두에게 더 즐겁고 보람찬 새봄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의 《나무편지》, 마무리하겠습니다.

  일본 야쿠시마 팔천년 조몬스기 답사 여행 안내 페이지

  아, 참! 한 가지 알려드립니다. 지난 해 가을, 태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취소했던 일본 야쿠시마의 조몬스기 답사 여행을 이번 봄에 다시 진행하게 됐습니다. 여행사 쪽에서는 며칠 전에 일정이 확정하고 참가하실 분을 모집했는데, 빠른 시간에 인원이 거의 마감됐다고 합니다. 겨우 한두 분 정도의 여유밖에 남지 않은 듯합니다. 더 일찍 알려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사월에 진행할 일본 최고의 삼나무 여행은 그래서 다녀와 더 상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입춘 지나며 우리 나무들의 초록 새싹을 기다리며 2월 5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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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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