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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큰 나무 꼭대기로 강림하는 한라산신을 모시기 위해…… 날짜 2018.01.17 12:52
글쓴이 고규홍 조회 532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큰 나무 꼭대기로 강림하는 한라산신을 모시기 위해……

○ 엊그제 《나무편지》와 같은 내용에 사진만 바꾸어 띄웁니다  ○

  한라산 산행을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마침 《나무편지》를 띄워야 할 월요일 이른 아침에 산행 일정을 잡은 탓에 엊그제 《나무편지》는 제주의 큰 나무 이야기를 글로 담기는 했지만 안타깝게도 사진은 예전 사진을 전해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그래서 엊그제 띄운 《나무편지》와 똑같은 내용에, 사진만 엊그제 현장 사진으로 바꾸어서 새로 띄웁니다. 특히 오랜만에 제주 지역에 폭설이 내린 직후여서, 한라산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산천단 곰솔의 풍경도 꼭 보여드리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이 아침에 새로 띄우는 《나무편지》는 그러니까, 아래부터의 본문은 그대로이고, 사진 9컷만 엊그제의 사진으로 바꾸었으니, 본문은 그냥 넘기시고, 사진만 살펴보시면 됩니다. 맨 위의 사진은 백록담 거의 다 올라가서 만난 설국의 풍경입니다. 다음 《나무편지》에서는 눈 소복히 쌓여 환상적인 설국을 이룬 한라산의 구상나무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 “신은 높은 나무 꼭대기로 강림한다” ○

  일요일인 어제 이른 아침에 제주에 도착해 제주에서 만날 수 있는 몇 그루의 큰 나무를 만났습니다. 이번 제주 답사에서 만난 나무는 여럿입니다만, 그 가운데 우리나라의 살아있는 곰솔로서 가장 늠름한 자태를 지닌 〈제주 산천단 곰솔군群〉을 오늘의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아쉬운 건 오늘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는 〈제주 산천단 곰솔군群〉의 사진은 어제 촬영한 사진이 아니라, 지난 답사 때의 사진이라는 겁니다. 한두 해 전의 곰솔 사진과 지금의 곰솔 사이에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만 그래도 오늘의 사진을 보여드리지 못하는 건 아쉽습니다. 나중에 사진만이라도 따로 보여드리도록 하고, 오늘은 〈제주 산천단 곰솔군群〉에 얽힌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일본의 근대 소설가인 고다 로한(幸田 露件, 1867~1947)의 딸이면서, 일본예술원상 수상작가인 고다 아야(幸田 文, 1904~1990)의 유작 산문집 가운데 《나무》(차주연 옮김, 달팽이출판 펴냄, 2017)라는 가볍지만 상큼한 작품집 있습니다. 이 책은 작가가 늙마에 일본 곳곳의 거목들을 찾아다니며 쓴 아주 담백한 에세이인데요. 여기에서 그이는 일본의 대표적인 삼나무 거목, 야쿠시마 조몬스기(삼나무)를 이야기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7천2백 년 된 나무라고 자랑하는 큰 나무이지요. 그 거대한 나무 앞에 서서 작가는 “신은 높은 나무 꼭대기로 강림한다고 하는데, 그 말이 이해가 되는 장소”라고 말합니다.

○ 한라산신이 머무르기에 알맞춤한 나무를 찾아서 ○

  바로 우리의 〈제주 산천단 곰솔군群〉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입니다. 일본의 고다 아야는 야쿠시마 삼나무가 마치 신이 내려올 만한 신성한 자리라고 이야기했지만, 우리의 제주 산천단 곰솔은 바로 신이 내려온 나무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오래 전부터 사람살이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한라산에 깃들어 사는 산신에게 제사를 올렸다고 합니다. 해마다 양력 이월, 그러니까 음력으로 정월 즈음이었던 겁니다. 제사는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까지 올라가서 지내야 했지요. 그런데 정월의 한라산은 등반이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요즘이야 잘 정비된 등산로가 있어서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겠죠. 더구나 한라산신께 올릴 제수용품을 이고진 채 산길을 오르는 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하릴없이 한라산신제는 언제나 힘들게 이뤄졌습니다.

  그러던 중에 제주 지역에서 선정을 베푼 사람으로 이약동(李約東, 1416 ~ 1493)이라는 사람이 제주에 부임합니다. 조선 성종 때에 제주목사로 부임한 그는 한라산신제를 지내기 어려워 하는 백성들의 사정을 알아채고, 더 좋은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심지어 제수를 짊어지고 산을 오르다 목숨을 잃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으니, 고을 목사로서 새로운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겠죠. 그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앞에서 이야기한 고다 아야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즉 하늘, 혹은 산 깊은 곳에 머무르는 산신(山神)은 사람이 올리는 제사 때에 하늘에서 내려오다가 잠시 머무르는 곳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곳이 바로 신령하고 맑은 나무 가지 위라는 겁니다.

○ 융융한 기세의 곰솔 여덟 그루가 중심인 신령한 숲 ○

  제주목사 이약동은 한라산신이 머무를 만한 나무를 찾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낸 나무가 바로 산천단 숲의 곰솔이었습니다. 키 큰 곰솔 여러 그루 무리지어 서 있는 이 숲이야말로, 한라산신이 강림하기에 가장 알맞춤한 신성한 숲이었고, 높지거니 자란 곰솔이야말로 산신이 잠시나마 평안히 머무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훌륭한 나무로 보였던 겁니다. 이약동 목사는 이곳에서 산신제를 올리기로 하고, 곰솔 숲 한가운데에 제단을 세웠습니다. 이로써 제주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한겨울에 한라산을 오르는 고행을 겪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이약동이 제주목사로 부임한 첫 해, 조선 성종 원년인 1470년입니다.

  지금까지 산천단 숲은 아름다운 곰솔이 중심에 우뚝 선 아름다운 숲이지만, 이약동 목사가 산천단을 짓기로 한 오백 여 년 전에도 아름다운 숲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당시 이곳에는 맑은 물이 솟아나오는 소림천(小林泉)이 있었고, 인근에 소림사(小林寺)라는 절도 있었다고 합니다. 절집이나 샘의 흔적은 가뭇없이 사라졌지만, 당시 하늘로 높이 솟았던 나무들은 필경 그때보다 더 높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올랐고, 언제 보아도 산신이 머무르기에는 더 없이 알맞춤한 숲임에 틀림없습니다. 곰솔 외에 주변 풍광을 아름답게 하는 여러 그루의 팽나무와 멀구슬나무 등이 어우려저 숲의 정경은 싱그럽습니다.

○ 기쁨과 평화의 한 해가 펼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여덟 그루의 곰솔은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고, 그 가운데에는 널찍한 공간이 있어서, 옛 사람들이 제를 올리기 위해 마련한 공간으로 짐작할 수 있기도 합니다. 울타리 한켠에는 산천단을 이곳에 세운 이약동 목사의 치덕을 기억하기 위한 공덕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가 제주를 떠나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산천단의 흔적은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기억했지만, 제단조차 사라지고 나무만 남아서, 옛 일을 기억하고 있었지요. 그러던 중에 1997년 들어서 곰솔 숲의 공터에서 이약동이 건립한 ‘한라산신고선비(漢拏山神古禪碑)’가 발굴되어 옛 일을 드러냈습니다.

  자! 이제 한라산 구상나무를 찾아서 산을 올라야 할 시간입니다. 저물기 전에 내려와야 하기 때문에 마음 먹은 만큼 꼼꼼히 살펴보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더 오래 나무 곁에 머무르겠습니다. 별 일 없으면, 백록담까지 올라가 옛 제주 사람들의 한라산신제를 혼자서라도 마음으로 올리겠습니다. 모두에게 기쁨과 평화의 한 해가 펼쳐지기 바란다는 소원 가득 담아서요.


- 제주 한라산 산행을 마치고 돌아와 1월 18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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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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