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를 찾아서 W > 나무를 찾아서 W
나무를 찾아서w
제목 다시 섣달…… 넘어가는 해를 붙잡고 싶은 마음 간절하여 날짜 2017.12.10 10:51
글쓴이 고규홍 조회 819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다시 섣달…… 넘어가는 해를 붙잡고 싶은 마음 간절하여

  지나가는 해를 붙들어 잡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스쳐 지나는 시간이 너무 빠르다고 느껴질 때라면 그럴 수밖에요!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이 즈음, 일쑤 그런 생각이 떠오르곤 합니다. 최소한 제게는 그렇습니다. 해를 넘기기 전에 마무리해야 할 일들과 만나야 할 사람들, 새해가 다가오기 전에 꼭 채비해야 할 일들과 또 만나야 할 사람들. 힘겨울 만큼 쌓인 게 많습니다. 돌아보면 해마다 이맘 때면 매오로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 해를 넘기면서 그런 일들을 만족할 만큼 마무리한 적이 있는 건 아닙니다만, 어쩔 수 없이 똑같이 맴도는 생각에 어질머리가 일어납니다.

  ○ 시간의 흐름이 아쉬운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아 ○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저 역시 올 한 해, 참 숨가쁘게 지내왔습니다. 봄 오기 전부터 새로 시작한 큰 일이 있었을 뿐 아니라, 한해의 중반을 넘기면서도 또 하나의 부담스러운 일이 생겼어요. 무엇보다 큰 일은 부천 시립 상동도서관의 월례 《나무강좌》와 서강대 평생교육원의 《나무인문학》강좌였습니다. 도서관 강좌는 오래 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일이었고, 서강대 강좌는 뜻밖에 생긴 일이었습니다. 둘 다 나무를 찾아보고, 이를 하나의 콘텐츠로 구성하며 보낸 지난 이십 년 세월의 흔적들을 길고도 큰 틀에 꿰어 넣는 일이었습니다. 여건만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라도 계속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일입니다.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흐르는 시절의 흐름과 함께 늘 시간을 재우치며 살아온 지난 한 해의 모든 날들의 자취들을 이제 하나의 매듭으로 남길 때입니다. 며칠 남지 않은 짧은 기간에 잘 마무리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지나는 해를 붙잡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흐름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흐르는 이 시대에만 그런 마음이 드는 건 아닐 겁니다. 동녘에 해 뜨면 들녘에 나가 일하고 돌담에 아무렇게나 흐드러진 분꽃이나 달맞이꽃 피어나는 해 질 무렵 되어 천천히 집으로 돌아와 저녁 밥 지어 먹고, 어두워지면 잠자리에 들던 옛날이라고 달랐을 리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시간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기게 마련이었을 겁니다.

  ○ 해가 넘어가지 않도록 붙잡아 매어둔 천년 느티나무 ○

  옛날옛적에 우리의 한반도 땅끝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살던 천동과 천녀라는 젊은 청춘남녀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느 날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르는 바람에 옥황상제에게 심한 꾸지람을 듣고 땅으로 내쫓겼습니다. 그들이 쫓겨나 떨어진 땅이 바로 전라남도 해남의 두륜산 정상이었습니다. 젊은 청춘남녀는 어떻게 해서든 하늘로 되돌아갈 수 있기를 소원하며, 옥황상제에게 간절히 용서를 청했습니다. 그러자 옥황상제는 젊은이들에게 “오늘 하루 안에 제가끔 정성들여 불상을 하나씩 완성한다면 다시 하늘로 올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두 젊은이는 하늘의 뜻이 고마웠지만, 과연 하룻만에 불상을 완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시간이었습니다. 두 젊은이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꾀를 냈습니다. 해가 서쪽 하늘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어딘가에 매어두려 한 겁니다. 그들에게 그런 생각을 가능하게 했던 건 산꼭대기에 서 있는 매우 큰 느티나무 때문이었습니다. 평소에도 해가 산을 넘어가려면 이 어마어마하게 큰 이 느티나무의 가지에 걸릴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했던 거죠. 천동과 천녀는 굵고 질긴 밧줄을 구해서 느티나무 가지에 걸고 하늘의 해를 걸었습니다. 서둘러 불상을 짓고, 돌아와 밧줄을 끊겠다는 생각이었던 거죠.

  ○ 폐허의 흔적만 남은 절터 앞마당에 우뚝 선 큰 나무 ○

  해를 붙잡아 맨 두 젊은이는 안심하고 불상을 짓는 데에 몰두했습니다. 이윽고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무렵 되어 천녀가 먼저 불상을 완성했습니다. 천녀는 서둘러 해를 붙잡아 매어둔 느티나무 앞에 와서 천동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천동은 오지 않고, 느티나무에 붙잡힌 해는 자꾸만 서산 너머로 지려 버둥거렸습니다. 천녀는 불안했지요. 한참을 기다려도 천동이 나타나지 않자, 천녀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초조한 마음으로 느티나무에 걸었던 밧줄을 끊었습니다. 해는 곧바로 서산으로 넘어갔고, 천녀는 하늘나라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해가 넘어가지 않으리라고 안심했던 천동은 불상도 채 완성하지 못했고, 다시 하늘에 들지도 못했으며, 마침내 두륜산 산신령이 됐다고 합니다.

  그때 천녀가 지은 북쪽 봉우리의 불상은 지금 국보 제308호로 지정한 북미륵암의 마애여래좌상입니다. 천동이 지은 불상은 입상의 형태로 남미륵암의 바위에 마애불입상이라는 이름으로 남았습니다. 천동과 천녀가 하늘의 해를 서쪽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매어둔 거대한 크기의 느티나무가 바로 오늘 《나무편지》의 사진으로 보여드리는 〈해남 두륜산 천년수〉입니다. 이 두륜산 천년수로 불리는 느티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오래 전에 무너앉아 지금은 절터의 흔적만 남아있습니다. 바로 만일암터입니다. 옛 절집의 이름인 만일암은 곧 잡아당길 만挽 과 해 일日로 이루어져, 옛 이야기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즈음입니다. 지난 한햇동안 스처지나간 모든 것들을 다시 되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좋든 싫든 그 모든 것들이 내일의 나를 이루어주는 더없이 소중한 바탕이 되겠지요. 고맙습니다.

 
 

- 한해를 잘 마무리하고 더 좋은 새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12월 11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솔숲닷컴(http://solsup.com)의 '추천하기'게시판에 '나무 편지'를 추천하실 분을 알려 주세요.
접속이 어려우시면 추천하실 분의 성함과 이메일 주소를 이 편지의 답장으로 보내주십시오.

○●○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글쓴이 비밀번호
보이는 순서대로 문자를 모두 입력해 주세요
등록
목록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