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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어서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한 많은 넋… 넋… 넋들이여 날짜 2017.10.09 19:33
글쓴이 고규홍 조회 146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죽어서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한 많은 넋… 넋… 넋들이여

  그 쓸쓸한 곳엔 어떤 나무가 서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아무리 긴 명절 연휴지만 아무도 찾지 않을 묘지를 찾았습니다. 경기도 파주시에 자리한 북한군 묘지입니다. 정확한 이름은 ‘북한군-중국군 묘지’입니다. 그건 휴전선 이북에서 태어나 살다가 전쟁 통에 이남으로 밀려와서는 그토록 그립던 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이승에서의 삶을 마무리한 실향민 아버지를 둔 아들로서 내가 명절 즈음에 꼭 한번 찾아야 할 곳이라고 생각한 때문이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맞이한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평생 궁핍을 면치 못하고 남루한 삶을 마친 내 아버지를 생각한 발길이기도 했습니다.

  ○ 내일, 수요일 부천 상동도서관 《나무강좌》 안내 ○

  북한군 묘역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이달의 《나무강좌》부터 간단히 알려드립니다. 명절 연휴 시작 즈음에 띄운 《나무편지》에서 알려드렸던 강좌입니다. 다달이 둘째 주 수요일에 여는 《나무강좌》, 오늘이 화요일이니 바로 내일 오전에 여는 《나무강좌》입니다. 이미 드린 말씀처럼 이번 《나무강좌》의 주제는 “문학 작품에 나타나는 나무 이미지”입니다. 도연명 장초 전후 등 중국 시인들의 한시를 시작으로, 이규보 김구 정습명 등 고려의 시인, 이언적 이수광 김병연 이덕무와 같은 조선의 문인, 박죽서 김금원 김부용 등 여자 시인이 남긴 한시를 비롯해 해안 만해 스님 등이 남긴 선시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작품에 나타난 나무 이미지를 찾아보겠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여유 있을지 모르겠으나 한시에 이어서 이 계절에 맞춤하게 가을과 단풍을 노래한 현대시 몇 수, 그리고 레오 리오니의 그림책, 르 클레지오의 동화, 아테네 에리쉬크톤의 신화까지 살펴볼 계획입니다. 많은 성원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이제 북한군 묘지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이 묘역은 제네바협약의 인도주의 정신을 따라 지난 1996년에 조성했습니다. 1950년부터 1953년 휴전까지 이 땅에서 벌어진 한국전쟁 때 휴전선 이남에서 목숨을 잃은 이북 지역 출신의 군인과 중국의 군인, 그리고 한국전쟁 뒤에 벌어진 갖가지 사건에서 목숨을 잃은 이북 군인들의 유해를 수습한 묘지입니다. 6,099제곱미터, 옛 단위로는 약 1800평 남짓 되는 면적을 두 개의 묘역으로 나누어 조성했습니다. 처음에는 자그마하게 봉분을 하고, 그 앞에 병사의 이름을 새긴 허름한 나무 십자가를 세워두었지만, 지금은 나무십자가와 봉분을 모두 헐어내고, 돌비석의 평장으로 바꾸었습니다.

  ○ 이름 없이 묻힌 한 많은 넋들의 묘 ○

  많은 분들이 짐작하시는 대로, 이 묘역에는 이름이 분명하게 밝혀진 유해보다는 이름 없이 죽어간 무명 병사의 유해가 더 많습니다. ‘무명인’이라는 이름의 비석이 그래서 훨씬 더 많지요. 물론 이름이 알려진 유해가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런 경우도 꽤 있습니다. 한국전쟁 때에 어느 지역의 전투에서 전사한 누구누구라는 식으로 이름과 소속을 정확히 밝힌 경우가 그런 경우죠. 또 한국전쟁 뒤로 ‘1.21 사태’와 같이 잘 알려진 사건으로 숨진 병사들의 이름이 대개는 확실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땅에는 참 많은 사건이 있었네요.

 

  그러나 임진강을 떠내려 온 이름 모를 병사의 사체도 있고, 제대로 알 수 없는 사건에 의해 목숨을 잃은 병사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남해안 침투 반잠수정 사체’ ‘불상 무장공비’ ‘3사단 침투 무장공비’ ‘임진강 표류 사체’ ‘6.25 불상 전투’ 등으로 사정을 적고, 이름은 ‘무명인’으로 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그냥 사체가 발견된 지역 이름만 적고 ‘무명인’으로 한 묘지도 있습니다. 중국 군인의 묘지에는 한자를 함께 써 두었습니다. 또 어떤 묘지는 하나의 묘지에 여러 구의 유해를 함께 모시고, ‘북한군 11구’ ‘중국군 34구’라고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 죽어서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떠돌아 ○

  중국 군인의 경우, 유해를 본국으로 송환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이곳에 남은 묘지는 유해를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남은 빈 묘지인 셈이지요. 아무도 찾아올 리 없다고 생각한 건 당연한 짐작이었습니다. 상당 수의 묘지가 무명인의 묘지인 건 물론이고, 본국에서조차 채 송환하지 않은 유해인데 누가 이 묘지를 돌보겠는가 하는 짐작은 당연한 것이지요. 그런데 누군가가 이곳을 다녀간 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것도 작정을 하고 찾아온 겁니다. 여러 송이의 꽃까지 마련해 들고, 이역에서 목숨을 잃은 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불쌍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누군가 있었던 겁니다.

 

  많은 건 아니지만, 몇 기의 묘지 앞에는 흰 국화 한 송이가 꽂혀 있었습니다. 꽤 오래 전에 다녀간 누군가가 꽂아둔 듯합니다. 꽃송이와 잎사귀는 모두 시들어 축 늘어졌습니다. 서럽게 서럽게 시들었습니다. 이북이 고향인 군인의 묘역을 넘어 가면  중국 군인과 이북 출신 군인의 묘지를 함께 조성한 제2묘역이 있습니다. 제2묘역의 묘지 앞에 놓인 꽃은 더 많았습니다. 흰 국화 뿐 아니라, 빳빳한 비닐에 포장하여 묘지의 비석 위에 한 송이씩 놓아 둔 노란 색이나 빨간 색의 장미 꽃도 여럿, 눈에 띄었습니다. 또 중국 군인들의 묘지 앞에는 아예 오랫동안 시들지 않을 빨간 색 조화를 꽂아놓은 곳도 있었습니다.

 

  ○ 사람이 벌인 죄악을 대신 참회하듯 서 있는 나무 ○

  죽어 넋이 되어서도 고향을 찾지 못하고, 이국 땅을 떠돌아야 하는 젊은 넋들이 이 땅에 남긴 슬픈 자취를 가만히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필경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아버지였을 수도 있을 그들의 참담한 인생이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설날이어도 추석이어도 또 어떤 명절이라 해도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이 을씨년스러운 이국의 묘지에 묻힌 그들의 짧은 삶이 서러워 그냥 한참 바라만 보았습니다. 바라볼수록 가슴은 더 아파옵니다. 그나마 온전한 채로가 아닌 유해도 많다고 합니다. 전쟁의 포화로 토막난 시체의 일부만 묻힌 한 많은 넋들 곁으로도 길었던 추석 명절 연휴의 바람이 흘러 갑니다. 산 사람에게도 죽은 사람에게도 세월은 똑같이 흐릅니다.

 

  그곳에 나무! 굴참나무가 있었습니다. 제1묘역 한가운데에는 굴참나무와 소나무가 마치 수문장처럼 우뚝 서 있고, 묘역 가장자리에서는 누구도 보살피지 않는 한 많은 넋들을 위로하려는 듯, 묘역 안쪽으로 가지를 드리운 굴참나무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벌인 숱하게 많은 죄악, 어쩌면 끝나지 않고 이어질지도 모를 사람의 죄악을 나무가 대신 참회하듯, 나무는 가만가만 묘지를 향해 나뭇가지를 드리웠습니다. 산 사람이 미처 하지 못한 위로와 치유의 손짓을 죽은 넋에게 말없이 내밉니다. 불어오는 소슬바람에 하나 둘 내려놓는 굴참나무 도토리가 묘지 안쪽으로 또르르 굴러갑니다. 도토리 한 알에 평화의 기원이 가득 실렸습니다. 무명인의 묘지 위에 건듯 스치는 바람에 평화의 기원이 머무릅니다.

 

  죽어서도 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한 많은 영혼들 앞에 서서 다시는 그처럼 서러운 역사가 되풀이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 나무에 담아 띄우고 쓸쓸한 발길을 돌렸습니다.

  긴 연휴를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처럼 긴 연휴는 아무래도 쉽지 않겠지요. 오랜만의 풍요로운 충전으로 다가오는 가을은 더 알차게 맞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더 건강하고 좋은 가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 이 땅의 모든 한 많은 영혼들의 평안을 기원하며 10월 10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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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권오남 (2017.10.10 11:03)
교수님 명절은 잘 지내셨나요?? 명절중간에 남한산성을 보았습니다..
어떠한 이유라도 전쟁은 없어야한다고 다시한번 더 생각하게하는 영화였습니다..
고규홍 (2017.10.11 08:16)
네. 오랜만에 저도 연휴를 길게 쉬었습니다. 저도 영화 한 편 보았습니다. 그 영화 '남한산성'은 아닙니다만, 이 즈음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라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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