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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어서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한 많은 넋… 넋… 넋들이여 날짜 2017.10.09 19:33
글쓴이 고규홍 조회 283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죽어서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한 많은 넋… 넋… 넋들이여

  그 쓸쓸한 곳엔 어떤 나무가 서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아무리 긴 명절 연휴지만 아무도 찾지 않을 묘지를 찾았습니다. 경기도 파주시에 자리한 북한군 묘지입니다. 정확한 이름은 ‘북한군-중국군 묘지’입니다. 그건 휴전선 이북에서 태어나 살다가 전쟁 통에 이남으로 밀려와서는 그토록 그립던 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이승에서의 삶을 마무리한 실향민 아버지를 둔 아들로서 내가 명절 즈음에 꼭 한번 찾아야 할 곳이라고 생각한 때문이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맞이한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평생 궁핍을 면치 못하고 남루한 삶을 마친 내 아버지를 생각한 발길이기도 했습니다.

  ○ 내일, 수요일 부천 상동도서관 《나무강좌》 안내 ○

  북한군 묘역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이달의 《나무강좌》부터 간단히 알려드립니다. 명절 연휴 시작 즈음에 띄운 《나무편지》에서 알려드렸던 강좌입니다. 다달이 둘째 주 수요일에 여는 《나무강좌》, 오늘이 화요일이니 바로 내일 오전에 여는 《나무강좌》입니다. 이미 드린 말씀처럼 이번 《나무강좌》의 주제는 “문학 작품에 나타나는 나무 이미지”입니다. 도연명 장초 전후 등 중국 시인들의 한시를 시작으로, 이규보 김구 정습명 등 고려의 시인, 이언적 이수광 김병연 이덕무와 같은 조선의 문인, 박죽서 김금원 김부용 등 여자 시인이 남긴 한시를 비롯해 해안 만해 스님 등이 남긴 선시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작품에 나타난 나무 이미지를 찾아보겠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여유 있을지 모르겠으나 한시에 이어서 이 계절에 맞춤하게 가을과 단풍을 노래한 현대시 몇 수, 그리고 레오 리오니의 그림책, 르 클레지오의 동화, 아테네 에리쉬크톤의 신화까지 살펴볼 계획입니다. 많은 성원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이제 북한군 묘지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이 묘역은 제네바협약의 인도주의 정신을 따라 지난 1996년에 조성했습니다. 1950년부터 1953년 휴전까지 이 땅에서 벌어진 한국전쟁 때 휴전선 이남에서 목숨을 잃은 이북 지역 출신의 군인과 중국의 군인, 그리고 한국전쟁 뒤에 벌어진 갖가지 사건에서 목숨을 잃은 이북 군인들의 유해를 수습한 묘지입니다. 6,099제곱미터, 옛 단위로는 약 1800평 남짓 되는 면적을 두 개의 묘역으로 나누어 조성했습니다. 처음에는 자그마하게 봉분을 하고, 그 앞에 병사의 이름을 새긴 허름한 나무 십자가를 세워두었지만, 지금은 나무십자가와 봉분을 모두 헐어내고, 돌비석의 평장으로 바꾸었습니다.

  ○ 이름 없이 묻힌 한 많은 넋들의 묘 ○

  많은 분들이 짐작하시는 대로, 이 묘역에는 이름이 분명하게 밝혀진 유해보다는 이름 없이 죽어간 무명 병사의 유해가 더 많습니다. ‘무명인’이라는 이름의 비석이 그래서 훨씬 더 많지요. 물론 이름이 알려진 유해가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런 경우도 꽤 있습니다. 한국전쟁 때에 어느 지역의 전투에서 전사한 누구누구라는 식으로 이름과 소속을 정확히 밝힌 경우가 그런 경우죠. 또 한국전쟁 뒤로 ‘1.21 사태’와 같이 잘 알려진 사건으로 숨진 병사들의 이름이 대개는 확실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땅에는 참 많은 사건이 있었네요.

 

  그러나 임진강을 떠내려 온 이름 모를 병사의 사체도 있고, 제대로 알 수 없는 사건에 의해 목숨을 잃은 병사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남해안 침투 반잠수정 사체’ ‘불상 무장공비’ ‘3사단 침투 무장공비’ ‘임진강 표류 사체’ ‘6.25 불상 전투’ 등으로 사정을 적고, 이름은 ‘무명인’으로 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그냥 사체가 발견된 지역 이름만 적고 ‘무명인’으로 한 묘지도 있습니다. 중국 군인의 묘지에는 한자를 함께 써 두었습니다. 또 어떤 묘지는 하나의 묘지에 여러 구의 유해를 함께 모시고, ‘북한군 11구’ ‘중국군 34구’라고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 죽어서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떠돌아 ○

  중국 군인의 경우, 유해를 본국으로 송환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이곳에 남은 묘지는 유해를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남은 빈 묘지인 셈이지요. 아무도 찾아올 리 없다고 생각한 건 당연한 짐작이었습니다. 상당 수의 묘지가 무명인의 묘지인 건 물론이고, 본국에서조차 채 송환하지 않은 유해인데 누가 이 묘지를 돌보겠는가 하는 짐작은 당연한 것이지요. 그런데 누군가가 이곳을 다녀간 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것도 작정을 하고 찾아온 겁니다. 여러 송이의 꽃까지 마련해 들고, 이역에서 목숨을 잃은 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불쌍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누군가 있었던 겁니다.

 

  많은 건 아니지만, 몇 기의 묘지 앞에는 흰 국화 한 송이가 꽂혀 있었습니다. 꽤 오래 전에 다녀간 누군가가 꽂아둔 듯합니다. 꽃송이와 잎사귀는 모두 시들어 축 늘어졌습니다. 서럽게 서럽게 시들었습니다. 이북이 고향인 군인의 묘역을 넘어 가면  중국 군인과 이북 출신 군인의 묘지를 함께 조성한 제2묘역이 있습니다. 제2묘역의 묘지 앞에 놓인 꽃은 더 많았습니다. 흰 국화 뿐 아니라, 빳빳한 비닐에 포장하여 묘지의 비석 위에 한 송이씩 놓아 둔 노란 색이나 빨간 색의 장미 꽃도 여럿, 눈에 띄었습니다. 또 중국 군인들의 묘지 앞에는 아예 오랫동안 시들지 않을 빨간 색 조화를 꽂아놓은 곳도 있었습니다.

 

  ○ 사람이 벌인 죄악을 대신 참회하듯 서 있는 나무 ○

  죽어 넋이 되어서도 고향을 찾지 못하고, 이국 땅을 떠돌아야 하는 젊은 넋들이 이 땅에 남긴 슬픈 자취를 가만히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필경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아버지였을 수도 있을 그들의 참담한 인생이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설날이어도 추석이어도 또 어떤 명절이라 해도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이 을씨년스러운 이국의 묘지에 묻힌 그들의 짧은 삶이 서러워 그냥 한참 바라만 보았습니다. 바라볼수록 가슴은 더 아파옵니다. 그나마 온전한 채로가 아닌 유해도 많다고 합니다. 전쟁의 포화로 토막난 시체의 일부만 묻힌 한 많은 넋들 곁으로도 길었던 추석 명절 연휴의 바람이 흘러 갑니다. 산 사람에게도 죽은 사람에게도 세월은 똑같이 흐릅니다.

 

  그곳에 나무! 굴참나무가 있었습니다. 제1묘역 한가운데에는 굴참나무와 소나무가 마치 수문장처럼 우뚝 서 있고, 묘역 가장자리에서는 누구도 보살피지 않는 한 많은 넋들을 위로하려는 듯, 묘역 안쪽으로 가지를 드리운 굴참나무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벌인 숱하게 많은 죄악, 어쩌면 끝나지 않고 이어질지도 모를 사람의 죄악을 나무가 대신 참회하듯, 나무는 가만가만 묘지를 향해 나뭇가지를 드리웠습니다. 산 사람이 미처 하지 못한 위로와 치유의 손짓을 죽은 넋에게 말없이 내밉니다. 불어오는 소슬바람에 하나 둘 내려놓는 굴참나무 도토리가 묘지 안쪽으로 또르르 굴러갑니다. 도토리 한 알에 평화의 기원이 가득 실렸습니다. 무명인의 묘지 위에 건듯 스치는 바람에 평화의 기원이 머무릅니다.

 

  죽어서도 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한 많은 영혼들 앞에 서서 다시는 그처럼 서러운 역사가 되풀이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 나무에 담아 띄우고 쓸쓸한 발길을 돌렸습니다.

  긴 연휴를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처럼 긴 연휴는 아무래도 쉽지 않겠지요. 오랜만의 풍요로운 충전으로 다가오는 가을은 더 알차게 맞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더 건강하고 좋은 가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 이 땅의 모든 한 많은 영혼들의 평안을 기원하며 10월 10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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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권오남 (2017.10.10 11:03)
교수님 명절은 잘 지내셨나요?? 명절중간에 남한산성을 보았습니다..
어떠한 이유라도 전쟁은 없어야한다고 다시한번 더 생각하게하는 영화였습니다..
고규홍 (2017.10.11 08:16)
네. 오랜만에 저도 연휴를 길게 쉬었습니다. 저도 영화 한 편 보았습니다. 그 영화 '남한산성'은 아닙니다만, 이 즈음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라 생각했습니다.
권순영 (2017.10.22 06:20)
가난에 찌들은 1971년에 비싼등록금 낼 길이 없어 대학2학년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가 월남전에 지원입대했다가
73년에 철수병력으로 돌아온 사람입니다
진짜로 치고 받고 죽고하는 전투는 안해봤지만 상황병으로 근무했던 저로서는 전과를 기록,보고하는 상황병인지라 수시로 아군과 적군의 사망 부상을 보고하는지라 많은 죽음을 간접으로 체험했습니다.
교수님이 무명묘지 다녀오셨다니 저도 오랜만에 멀리서 묵념드립니다
고규홍 (2017.10.22 08:50)
어린 시절.... <월남장병 아저씨께> 라는 위문편지를 학교에서 열심히 썼던 기억이 떠오르게 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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