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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낼 모레가 추석이군요 …… 내 곁의 나무를 한번 더! 날짜 2017.09.24 15:20
글쓴이 고규홍 조회 176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낼 모레가 추석이군요 …… 내 곁의 나무를 한번 더!

  아침 바람 소슬하니,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어머니 계시는 따뜻한 고향 마을, 그 곳 마을 어귀에는 지금도 큰 나무 한 그루가 예전처럼 웅숭깊은 모습으로 서 있겠지요. 고향 마을을 떠올릴 때마다 어머니보다 먼저 떠오르는 그 둥구나무 말입니다. 늙은 부모님만 남은 고향 마을! 굳이 풍경이 달라져야 할 까닭을 찾기 어렵지만, 지난 번 그대로는 아닐 겁니다. 그 사이에 이런저런 변화가 스쳐지났겠지요. 때로는 어머니의 고운 손길처럼, 때로는 맹수의 사나운 발톱처럼 우리 살던 옛 마을 풍경을 할퀴어 놓을 겁니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이 옛 모습 그대로 머무를 수는 없을 테니까요. 시골 고향 마을이 더 애틋한 건 나도 몰래 스쳐지나는 변화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 고향 마을 정자나무처럼 내 곁의 나무를 ○

  고향 마을 동구 밖 정자나무가 그렇듯이 도시의 우리 곁에서 살아가는 나무들도 한번 더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지난 주중에는 한 그루의 특별한 큰 나무를 찾아가 만났습니다. 전주 삼천동 곰솔입니다. 나뭇가지의 대부분이 잘려나간 채 처참한 몰골로 남아있는 나무입니다. 나무가 서 있는 곳은 전주시의 중심이랄 수 있는 도로 곁입니다. 전주 KTX 역이 이어지는 도로의 이름은 ‘곰솔길’입니다. 나무의 의미를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 붙인 이름이겠지요. 도로 양 옆으로는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고, 왕복 10차선이나 되는 넓은 도로에는 교통량이 무척 많은 편입니다. 나무가 살아가기에는 결코 좋은 환경이라 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이 사진은 지금의 처참한 형태로 바뀌기 전의 모습입니다. 이때 이 나무는 우리나라의 살아있는 곰솔 가운데에 가장 아름다운 나무로 손꼽혔지요. 예전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봐야 20여 년 전의 모습입니다. 사진만으로도 나무의 늠름하면서도 아름다운 풍채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나무는 우리의 고향 마을 정자나무가 그렇듯이 사람의 지극한 정성으로 보살핌을 받으며 잘 살았습니다. 얼핏 사진의 배경으로 보이듯이 그때와 지금의 주변 풍경은 그야말로 상전벽해입니다. 완전히 다릅니다. 낮은 산과 들이 이어지는 평온하고 고요한 풍경이 그때의 풍경입니다.

  ○ 사람의 탐욕에 의해 처참하게 희생된 나무 ○

  나무 바로 곁으로 10차선 대로가 뚫리고, 주변에 고층 빌딩이 들어서게 된 건, 1990년대에 들어선 뒤의 일입니다. 전주시에서 내놓은 신도시 개발 계획에 나무가 서 있는 이곳 삼천동 일대가 포함되었습니다. 이른바 안행택지지구입니다. 창졸간에 마을은 상전벽해를 겪게 됐습니다. 나무 바로 곁으로 넓은 대로가 똟리고, 상큼한 바람을 전해주던 바람 길은 나무의 키보다 훨씬 높은 키의 고층아파트가 가로막았습니다. 나무 곁으로 난 새 도로 위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동차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나다니며, 나무에게 낯선 내음과 성가신 먼지를 뿜어냈습니다. 몸살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무가 갑작스레 푸른 솔잎을 한꺼번에 내려놓으면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습니다.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 나무의 상태를 살펴보니, 아뿔싸! 나무 줄기 아래 쪽에서 예리한 기구로 뚫은 구멍이 여러 개 발견됐고, 구멍 안쪽에는 나무에 치명적인 독극물의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도시 개발 과정에서의 이해 관계를 염두에 두고 누군가가 계획적으로 벌인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미 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태여서, 나무 주변의 땅은 개발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거죠. 나무가 죽어 사라진다면 뒤늦게라도 개발 관련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 저지른 소행이 분명합니다.

  ○ 공생의 행성, 지구에서 바르게 살아남기 위해서 ○

  독극물의 공격으로 시름시름 앓던 나무는 급기야 나뭇가지의 상당 부분을 내려놓았습니다. 예전의 아름답던 모습은 사라지고, 마침내 지금처럼 처참한 몰골로 남게 됐습니다. 그 뒤로 우리 앞에 드러난 나무의 변화는 참담했습니다. 고작 이십 년 정도 전에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그 사이에 나무는 예전 모습을 완전히 다 내려놓고, 새로운 모습으로 남았습니다. 처음 나무의 사연을 알게 된 2000년부터 지금까지 아마도 한해에 한 번 쯤은 이 곰솔을 찾아왔습니다. 그 동안 사진으로 담아두었던 나무의 형체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바로 위의 사진은 십년 쯤 전 여름의 사진이고, 아래 사진은 7년 쯤 전 겨울의 사진입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언제나 변화를 향해 움직입니다. 생명의 불안정함은 살아있음의 뚜렷한 증거입니다. 나무도 그렇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으로서 나무는 오늘과 다른 내일이 예정돼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더불어 살아야 할 사람의 탐욕에 의해 나무가 변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이 나무처럼 처참한 몰골로 나무를 죽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건 공생의 행성인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 원칙을 깨뜨리는 일입니다. 참담한 몰골로 서 있는 전주 삼천동 곰솔을 바라보며 생명을, 그리고 우리 사는 세상의 잔혹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무를 바라보며 한참을 “이 땅에 살아남기 위하여”라는 생명의 화두를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추석 명절입니다. 고향에 편안히 잘 다녀오십시오 ○

  이제 며칠 뒤면 고향으로 떠날 시간입니다. 길 위에서 긴 시간을 보내면서도 고향 마을 어귀를 지키고 서 있을 한 그루의 나무를 떠올리면, 은근히 미소부터 지어지시겠지요. 그리고 그 나무 그늘 아래에 홀로 서서 이제나 저제나 돌아올 자식들 생각으로 눈시울 적시는 어머니도 떠오르겠지요.

  저는 이제 함께 살던 집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못할 먼 곳으로 떠나신 어머니 아버지의 흔적을 모신 그곳으로 떠날 채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모두 즐겁고 보람된 한가위 명절 보내십시오!

- 보람된 한가위 명절을 기대하며 9월 25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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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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