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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은행나무의 천번째 가을채비 … 《나무강좌》의 첫번째 가을맞이 날짜 2017.09.10 14:26
글쓴이 고규홍 조회 195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은행나무의 천번째 가을채비 … 《나무강좌》의 첫번째 가을맞이

  이 가을, 이 은행나무가 맞이한 가을은 천 번이 넘습니다. 이 한 자리에서 나무가 수굿이 보낸 이 땅의 세월은 천 년을 넘었습니다. 천 년의 은행나무! 충청남도 금산 요광리 행정 은행나무입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파리들이 노란 형광색으로 환하게 물들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워낙 덩치가 큰 나무여서 여느 작은 나무들에 비해 노란 단풍 물이 나뭇잎에 오르는 건 언제나 늦는 편입니다. 해마다 그렇습니다. 여느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바뀌었거나 심지어 낙엽까지 이룬 무렵에 찾아보아도 그 큰 나무의 몸집 끄트머리의 햇살 좋은 곳에 매달린 이파리만 겨우 노랗게 물들었기 십상이었습니다.

  ○ 생명의 양식을 지어낸 초록의 엽록소를 내려놓고 ○

  나뭇잎에 단풍이 들려면 우선 나무의 몸통에 들었던 물을 빼내야 합니다. 나무는 지난 여름까지 잎사귀의 엽록소가 지상의 모든 생명을 먹여 살릴 양식을 짓기 위해 광합성을 해야 했습니다. 햇살을 갈무리하고, 곁의 이산화탄소를 끌어들이는 잎사귀까지 물을 올려 주어야 엽록소는 광합성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무는 땅 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물을 끌어올렸습니다. 뿌리에서부터 물을 끌어올린 이파리는 부지런히 지난 계절 내내 생명의 양식을 지었습니다. 혹시라도 잎 안의 물이 마를까봐 커다란 제 몸통을 깊은 땅에서 길어 올린 맑은 물로 가득 채우고 조금씩 조금씩, 그러나 충분하게 물을 밀어냈습니다.

  그렇게 봄 여름이 지났습니다. 이제 나무는 가을 채비를 해야 합니다. 어쩌면 가을이 아니라 겨울을 채비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햇살의 온기 사라지고 바람 차가워지는 한 겨울에도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무는 이 가을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나무줄기 가장자리에 자리한 수관水管에 든 물을 덜어내야 합니다. 갈증을 견뎌낼 수 있을 만큼의 최소한의 물만 남긴 뒤, 대개의 물기를 덜어내야 합니다. 매운 바람 불어닥쳐도 얼지 않고 다시 또 새 봄을 환하게 맞이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일입니다. 워낙 몸집이 큰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는 당연히 몸 안의 물을 덜어내는 게 여느 나무들에 비해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 바람결 따라 다가오는 천번째 가을을 채비하는 은행나무 ○

  물을 덜어내고 엽록소가 광합성 활동을 중지하면 비로소 떠오르는 노란 단풍 빛깔이 늦을 수밖에 없습니다. 단풍 빛은 아직 이르지만,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나무가 서서히 가을 채비를 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습니다.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결에 스민 가을의 기미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요. 꽤 오랜만에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를 찾았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우선 나무 주변을 몇 차례 되풀이해 돌며 그 간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늘 혼자인 여행 길이건만 이번 여행에는 동행이 여럿 있었습니다. 사실은 어느 방송의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찾은 겁니다. 늘 고요하기만 하던 요광리 마을 어귀의 아침이 조금은 부산했습니다.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는 천년을 넘게 살아온 나무입니다. 워낙 크게 잘 자란 나무여서 나무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전합니다. 이를테면 마을 뒷산에 호랑이가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해 봄날, 배고픈 호랑이가 먹이를 찾아 마을까지 내려왔다고 해요. 그때 마을 사람 한 명이 바로 이 은행나무 그늘에서 낮잠에 깊이 들었다고 합니다. 호랑이는 허기를 채워줄 맛난 먹이인 사람을 잡아 먹으려고 다가서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사람 곁에는 마치 그를 지켜주려는 듯한 자세로 사람을 품고 서 있는 커다란 나무가 있었습니다. 숲속에서 살던 호랑이로서는 나무가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괴물로 보였던 겁니다. 결국 호랑이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다시 또 뒷산으로 돌아가야 했다고 합니다.

 

  이 은행나무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오래 전에 태풍이 불어 나뭇가지가 부러졌다고 합니다. 그 부러진 가지가 얼마나 컸던지, 마을 사람들은 부러진 가지를 잘라내어 밥상을 만들기도 하고, 죽은 사람을 편안히 모실 관을 짜기도 했답니다. 그러고 보니, 나무는 살아있는 동안 호랑이로부터 사람을 지켜주었을 뿐 아니라, 부러져서도 마을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편안히 해 주었던 겁니다. 따지고 보면 그게 어디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만 그렇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우리 곁에 살면서 오랫동안 우리의 삶을 더 평안하게 지켜주는 법이지요.

 

  ○ 《나무강좌》에서 이 가을, 더 풍요롭게 맞이하세요. ○

  가을의 기미 또렷해진 구월의 둘째 주를 맞이합니다. 다달이 둘째 주에는 어김없이 《나무강좌》가 이어집니다. 잘 아시다시피 부천시립 상동도서관 지하1층의 시청각실에서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두 시간에 걸쳐 풀어갑니다.

 

  이 달의 《나무강좌》에서는 오늘 편지의 제목에서 보여드린 것처럼 은행나무의 가을맞이 이야기를 주제로 풀어갑니다. 큰 주제는 〈단풍의 이유〉인데요, 세상의 모든 단풍 가운데에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이야기할 겁니다. 강좌를 준비하다 보니, 두 시간 안에 다 풀어내기에는 은행나무 이야기가 너무 많네요. 어쩌면 은행나무 이야기는 시월까지 이어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원래 시월의 《나무강좌》에서는 〈나무와 문학〉을 주제로 잡았는데, 계획을 바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뭐! 이 《나무강좌》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니까, 서두르지는 않겠습니다.

 

  부천 상동도서관의 구월 《나무강좌》에 나오셔서 우리 함께 손잡고 우리 곁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가을을 더 풍요롭게 맞이할 방법을 함께 이야기해요.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천년의 가을을 맞이하는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9월 11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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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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