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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야흐로 연꽃의 계절 …… 불현듯 떠오른 백송의 기억 날짜 2017.07.16 12:14
글쓴이 고규홍 조회 354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바야흐로 연꽃의 계절 …… 불현듯 떠오른 백송의 기억

  바야흐로 연꽃의 계절입니다. 화들짝 달려들었다가 금세 돌아서더니 다시 또 달려드는 장맛비가 연꽃송이는 성가시지 않습니다. 함초롬히 빗물을 머금은 채, 바라보는 사람과 고요히 눈을 맞춥니다. 한여름의 내음을 가득 담고 피어난 연꽃입니다. 비 그친 짧은 사이, 연꽃 앞에 머무릅니다. 색색의 한지로 빚은 듯한 연보랏빛 꽃잎이 봉긋한데, 그 안쪽에는 새 생명의 씨앗이 꿈틀거립니다. 가만가만 생명의 노래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옵니다. 하염없이 흔들리는 길쭉한 꽃대궁 위에서 도도하게 피어난 꽃송이가 싱그럽습니다. 꽃송이 한가운데에서 환하게 피어난 생명의 광휘가 찬란합니다.

  연꽃 피어난 연못 가장자리에서 불현듯 꽃잎 못지않게 환한 광채로 빛나는 줄기를 가진 백송이 떠올랐습니다. 장마 들기 전에 찾아보았던 경기도 이천 작은 마을 뒷동산에 서 있는 ‘이천 신대리 백송’입니다. 소나무의 한 종류인 백송은 줄기 껍질이 희다는 남다른 점을 가진 나무이지요. 자작나무 종류를 빼면 여느 나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흰 빛입니다. 회색의 얼룩무늬와 함께 어울린 백송의 줄기는 자작나무 종류의 흰 빛과 전혀 다른 느낌을 가졌습니다. 신비롭다 해도 될 겁니다.

  중국이 고향인 백송은 우리나라에 그리 많지 않습니다. 고향 아닌 곳에서는 잘 자라지 않을 뿐 아니라, 옮겨심기도 잘 안 되는 까탈스러운 나무인 때문이지요. 상서로운 빛깔의 백송을 키우려는 손길이 늘면서, 우리나라의 곳곳에 많이 심어 키우는 편이지만 그건 최근의 일입니다. 그래봤자 아직은 어린 백송들이어서, 크고 오래 된 백송은 많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몇 그루 되지 않는 오래 된 백송에는 그래서 중국과 우리나라의 문화 교류의 결이 담겨 있게 마련입니다.

  이천 신대리 백송 역시 옛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나무입니다. 이백십년 전 쯤 이 마을에는 전라감사를 지냈던 민정식이라는 분이 살았습니다. 이천 신대리 백송은 그가 자신의 할아버지인 민달용의 묘지 앞에 심은 표지송입니다. 민정식이나 그의 할아버지인 민달용이 중국과 어떤 관계를 가졌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게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 전라감사 정도의 지위라면 중국을 몸소 방문했다거나 아니면 중국에서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고, 그런저런 관계를 바탕으로 중국이 고향인 한 그루의 나무를 선물받을 위치 아니었을까 짐작하게 됩니다.

 

  별 탈 없이 지난 이백 여 년 동안 잘 자란 이천 신대리 백송은 이제 높이가 16미터를 넘을 만큼 컸습니다. 줄기는 뿌리 부분에서부터 두 개의 큰 가지로 나뉘며 솟아올랐는데, 가슴높이에서 잰 그 가지의 둘레는 제가끔 2미터 정도 됩니다. 이 정도의 크기라면 우리나라의 여러 백송 가운데에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큰 나무입니다. 나무는 아직 건강한 상태로 잘 살아있습니다. 비탈 중간에 자리잡고 있지만, 위치가 불안한 정도는 아닙니다. 나무를 돌아가며 바라보려는 사람의 입장이 조금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나무로서는 큰 문제 아닌 듯합니다.

 
 

  큰 나무를 만나서 그 나무 곁에 오래 머무를 때면 언제나 드는 생각이 “사람은 떠나도 나무는 남는다”는 사실입니다. 고작해 백 년을 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무를 심고 애지중지 키웁니다만, 나무가 제 몸을 온전히 풀기도 전에 사람은 그 곁을 떠나기 십상이지요. 뒤에 남은 나무가 홀로 사람의 향기와 무늬를 기억할 따름이지요. 사람살이의 무늬, 즉 인문의 향기를 이 땅에 가장 오래도록 머금는 생명으로, 나무만한 생명체는 없지 싶습니다. 지금 나무를 찾아 그 곁에 더 오래 머물러야 할 이유입니다.

 
 

  다시 연꽃입니다. 지역에 따라 기후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이제 연꽃 앞에 머물러야 할 때입니다. 씨앗 형태로 천오백 년을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의 신비를 갖춘 오래 된 식물, 연꽃입니다.

  무더위와 장대비가 번갈아 찾아오는 여름입니다. 건강 잃지 마시고 평안한 날들 보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나무를 찾아 나무 곁에 더 오래 머무를 생각으로 7월17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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