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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년 원시 숲의 나무들이 들려주는 생명 이야기 날짜 2017.06.11 08:50
글쓴이 고규홍 조회 241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천년 원시 숲의 나무들이 들려주는 생명 이야기

  일본의 숲 가운데에는 천연 상태가 오랫동안 보존된 아름다운 숲이 여럿 있습니다. 그 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는 가미고치 上高地 라는 숲이 있습니다. 일본팔경의 하나인 숲으로, 일본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천연림입니다. 표고 3,190미터 높이의 오쿠호타카 봉우리를 비롯해 3,180미터 높이의 야리가봉, 3,090미터의 마에호타카 봉우리 등 삼천미터가 넘는 일본 북알프스의 큰 산봉우리들을 한꺼번에 내다볼 수 있는 신비로운 풍광에 어우러진 아름다운 숲입니다.

  일본의 큰 산들이 빚어낸 절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까지는 로프웨이를 타고 오를 수 있습니다. 신호다카 온천역과 니시호타카 입구역을 잇는 로프웨이입니다. 우리는 케이블카라고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로프웨이라고 부릅니다. 북알프스의 전망이 펼쳐지는 표고 2,156미터 높이의 니시호타카 전망대까지 오르려면 로프웨이를 한번 갈아타야 합니다. 니시호타카 역에 내리면 곧바로 전망대에 오를 수 있습니다. 봄날 내다보는 눈 덮인 산봉우리 연봉의 풍경은 신비롭습니다. 일본 최고의 절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망대를 나와 눈 덮인 니시호타카 부근 숲을 걸었습니다. 편백이 주종이기는 하지만 그 사이로 하얀 수피를 가진 사스래나무가 어우러진 숲길 바닥에는 하얀 눈이 겹겹이 쌓였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잦은 산책로이지만, 쌓인 눈은 그대로입니다. 워낙 많은 눈이 쌓여서 금세 녹아내리지 않았습니다. 가벼운 봄옷 차림으로 눈 덮인 산길을 걷는 느낌은 특별합니다. 가끔씩 눈길에 미끄러지며 걸으면서 하얀 눈밭 위에 서 있는 푸른 나무들을 바라보는 건 흥미로운 일입니다. 나무 뿌리 부분은 나무가 살아있는 생명의 기운 탓에 둥그렇게 눈이 녹아 깊이 패였지만, 나뭇가지 위는 푸른 잎이 한껏 싱그럽습니다. 2천 미터가 넘는 높은 산에서나 느낄 수 있는 경험이겠지요.

  신호타카 부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천연림으로 미즈기사와 水木沢 숲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숲으로, 역시 숲을 이룬 나무의 주종은 편백입니다. 미즈기사와 숲은 지난 번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렸던 아자카와 숲이 인공림인 것과 달리 천연 상태 그대로 보존된 자연림입니다. 숲 안에는 오래 된 큰 나무들이 무리지어 크고 깊은 숲을 이루었습니다. 장관입니다. 높이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치솟아오른 편백 무리 사이를 걷는 길에서 느껴오는 숲 바람의 삽상함은 천년의 세월을 품은 덕일 겁니다.

  미즈기사와 숲의 길섶 곳곳에는 종이 걸려 있습니다. 숲에 자주 출몰하는 야생의 곰에게 사람이 지나가는 중이니 알아서 피하라는 신호를 보내기 위한 종이라고 합니다. 미즈기사와 숲에서는 곰의 습격에 의한 피해가 자주 발생한답니다. 그래서 단체 등산객이 아닌 경우에는 숲의 입구 관리소에서 산행 중에 각자 허리춤에 찰 수 있는 작은 종을 제공합니다. 실제로 곰을 만난 건 아니지만, 숲 안에 발을 들여놓으면, 언제라도 야생의 곰이 나타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할 만큼 숲이 깊습니다. 곰들도 이 숲에서 오래도록 나무와 더불어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참 깊고 오래된 숲입니다.

  숲을 몇 개의 구획으로 나누어서, 원시의 숲, 천연의 숲, 태고의 숲 등 각각의 코스마다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 숲에 서 있는 나무들은 얼핏 봐도 수백 년이 넘은 큰 나무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나무로 550년 된 편백이 있습니다. 등산로 곁에 있어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또 출중한 그의 몸피 때문에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챌 수 있어요. 높이가 30미터나 되는 거목입니다. 나무 곁에 선 사람은 고작해야 작은 인형처럼 보입니다. 위에 연속한 두 장의 세로 사진이 바로 그 거목입니다.

  일본의 나가노현에서 가장 뛰어난 절경은 아무래도 명승 가미코치 를 꼽아야 합니다. 가미코치는 일본의 북알프스 지역의 히다산맥 골짜기에 위치한 표고 1,500미터의 고원지대입니다. 폭 1킬로미터의 평야 지대가 10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진 매우 넓은 평원지역입니다. 이 정도로 높은 지대에 이만큼 넓은 평원이 펼쳐진 곳은 일본 전 지역에서도 유일하다고 합니다. 가미코치의 전 지역을 둘러보는 일정이 아니어서, 세세한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분명히 특별한 지형입니다. 가미코치 숲을 걸으며 사방으로 훤히 내다보이는 북알프스 연봉의 풍광은 참으로 빼어납니다.

  오래도록 자연 상태가 유지된 이 넓은 숲의 식물들을 꼼꼼히 관찰하는 건 하루 이틀의 트레킹으로는 언감생심입니다. 일본의 특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가미코치 지역은 기후로 보면 낙엽활엽수와 침엽수가 무리지어 살아가는 경계 지역이어서 다양한 식물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미즈기사와 천연림이 편백 위주의 침엽수림인 것과 달리 걸음걸음을 따라 나타나는 다양한 식물들을 즐거이 만날 수 있어 더 즐겁습니다. 갓파 다리 河童橋를 중심으로 세 시간 쯤 걸리는 코스를 걸으며 여러 종류의 식물을 만났습니다. 짧은 만남만으로도 숲의 건강함과 다양성을 느끼는 데에는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조릿대가 무성하게 덮인 숲길 사이를 걷다 보면, 낮은 키의 다양한 초본식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땅에서 찾아볼 수 있는 족두리풀이 피운 빨간 꽃, 하얀 헛꽃을 무수히 피워낸 백당나무, 하얗게 피어난 바람꽃 종류를 만나 바쁜 걸음을 멈춰야 했습니다. 나그네 발길을 붙잡는 나무와 풀꽃 앞에서 걸음은 더뎌질 수밖에요. 하늘을 향해 꼿꼿이 솟아오른 큰 나무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편백은 물론이고, 우뚝 선 너도밤나무가 많았고, 낙엽송이라고도 부르는 일본잎갈나무, 추운 지역에서 잘 살아가는 하얀 수피의 사스래나무 등을 번갈아가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줄기가 중동무이난 큰 나무도 있습니다. 오래 된 숲, 오래 된 나무들이니 그들의 삶은 사람살이처럼 제가끔 서로 다른 모습일 수밖에 없겠지요. 둥치가 부러져 쓰러진 나무가 조금은 흉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지만, 곁에 있는 다른 나무들과 어우러져 오히려 천연림의 자연스러움을 보여주는 듯도 합니다. 오래 전에 댕강 부러져 줄기 윗 부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 바라보는 이를 압도하는 거대한 크기로 남은 그루터기도 있습니다. 고작 해야 서너 시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가미코치의 숲에서는 크고 작은 식물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고원지대의 중간중간에서 습지를 만날 수 있다는 건 더 큰 기쁨이었습니다. 습지들이 품은 물 속에 서 있는 고사목들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풍광을 지어냅니다. 가미코치 풍광의 백미입니다. 넓고 길게 이어지는 습지 안의 고사목들과 그 뒤편 멀리로 내다보이는 설산의 풍경은 더할나위 없이 신비롭습니다. 물 가장자리에서 싱그러운 잎을 달고 있는 나무의 봄 풍경과 멀리 내다보이는 설산에 쌓인 하얀 눈의 겨울 풍경이 빚어내는 묘한 대조는 표고 1,500미터가 넘는 고원 지대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겠지요.

  모두가 싱그럽고 천년의 신비를 머금은 큰 생명들입니다. 그들 곁에 오래 머무르며 가만가만 그들의 깊고 깊은 줄기의 속내에서 흘러나올 생명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싶었습니다. 짧은 일정에 하릴없이 돌아와 이렇게 그들의 뒷모습을 새겨보는 일이 지금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그들의 큰 생명 이야기를 오래도록 곁에 남기려 이 아침에 《나무편지》 띄웁니다.

  다음 《나무편지》에서는 천년 된 일본측백나무와 표고 삼천미터 높이의 고지에 이룬 눈잣나무 군락지 이야기를 되짚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천년의 생명 이야기를 건져 올리며 6월 12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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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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