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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 한 그루에 목 하나, 나뭇가지 하나에 팔 하나” 날짜 2017.05.28 13:15
글쓴이 고규홍 조회 303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나무 한 그루에 목 하나, 나뭇가지 하나에 팔 하나”

  겨우 한 주일 지났습니다. 천년을 살아온 큰 나무들이 우거진 태고의 숲을 걷고 돌아온 건 고작 이레 전입니다. 일정에 맞추느라 서둘러 움직이며, 욕심만큼 나무 곁에 머무른 시간이 짧았던 탓일까요. 벌써 그 많은 나무들의 안부가 그리워집니다. 보고 싶습니다. 나흘 동안 큰 숲에서 만났던 큰 나무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그러나 너무 늘어지지 않게 나누어 전해드리겠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천연의 원시 숲을 들어서기 전에 먼저 찾았던 인공의 편백 숲 이야기부터 전해드립니다.

  사람의 힘으로 가꾸고 사람의 손으로 공들여 지킨 숲이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삼백 년 전 쯤인 에도시대 때부터 조성한 숲이니 그리 가벼운 숲은 아닙니다. 숲에 살아있는 거개의 나무들은 대략 삼백 년 정도의 나이를 가진 큰 나무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편백은 대략 백년 정도 된 나무입니다. 우리나라의 편백은 대략 1900년대 초반에 일본에서 들여와 심기 시작했으니까요. 우리나라의 편백 숲에 대한 깊은 감흥을 생생히 떠올리자니, 삼백 년이나 된 편백이 즐비한 숲을 들어서는 마음이 설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흘 동안 바쁘게 걸었던 숲 트레킹은 바로 이 삼백 년 편백 숲에서 시작했습니다.

  나가노長野 현 우에마츠上松 쵸의 남서부에 자리한 아카자와赤沢 자연휴양림이 그곳입니다. 숲 입구에서부터 편백 특유의 향이 온몸을 감싸는 듯한 신비로운 체험으로 트레킹은 시작됐습니다. 우리나라의 여느 편백 숲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깊은 생명의 기운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는 가슴은 숲의 초입에서부터 두근거렸습니다. 곧게 뻗어오른 편백의 굵은 줄기, 대개는 하나의 줄기가 곧게 솟아올랐지만, 간간이 둘로 나뉘어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친 나무도 적지 않았습니다. 줄기 아랫부분의 굵은 둥치가 보여주는 긴 생명의 약동 또한 활기찼습니다. 어둠이 빨리 찾아오는 깊은 숲이어서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무 곁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은 하릴없었습니다.

  아카자와 숲은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정확히는 1080m에서 1558m에 이르는 고원지대에 조성된 편백 숲입니다. 무려 728 헥타르에 이르는 큰 숲입니다. 옛 단위로 하면 2백2십만 평을 넘는 규모로, 여의도의 두 배 반 정도 되는 면적입니다. 숲 안의 모든 나무를 찬찬히 살펴보려면 몇 년이 걸리고도 모자라겠지요. 이 깊은 숲은 이제 일본의 삼대 아름다운 숲의 하나로 알려졌지만, 천연의 원시림은 아닙니다. 에도 시대인 1600년 대 중반에 나고야 번이라고도 부르는 오와리尾張 번에서 관리를 맡으면서부터 엄격하게 사람의 손으로 지켜온 인공의 숲입니다.

  당시 오와리 번에서는 신궁神宮 건축용 목재를 보호한다는 생각이었지요. 물론 오와리 번에서 본격적으로 관리하기 전부터 이 숲에는 목재용 나무, 그 가운데 일본 건축에 많이 쓰이는 편백이 우거졌다고 합니다. 이 지역의 편백은 예로부터 목재로서의 가치가 높아서 불상이나 신사 건축 재료로 많이 쓰였답니다. 자연히 숲의 나무들은 쉽게 벌목되었겠지요. 벌목이 극단에 이른 건 에도시대 초반이었습니다. 비교적 평화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그때에 사람들은 집 짓기에 나섰습니다. 건축재로 각광받던 이 숲의 편백이 남벌된 건 당연한 순서였습니다. 울창했던 나무들이 베어지고 숲은 황폐해졌습니다.

  황폐화한 이 숲은 1615년에 오와리 번에 양여되었습니다. 오와리 번에서는 숲의 나무를 관리하는 건 곧 나라를 지키는 일이라 여기며 철저한 관리를 시작합니다. 급기야 1708년에는 벌채 금지령을 내리지요. 살벌할 정도로 엄격한 금지령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나무 한 그루에 사람 목 하나, 나뭇가지 하나에 사람의 팔 하나〉라는 으스스한 정책으로 숲 지키기에 나섰습니다. 아카자와 숲은 그때부터 삼백 년 동안 철저하게 지켜온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숲을 지키고 서 있는 대부분의 나무들은 대략 삼백 년 안팎을 살아온 나무라고 보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아카자와 숲은 변화를 겪습니다. 1947년에는 국유림으로 편입되고, 1950년에는 국가에서 학술보호림으로 지정합니다. 여전히 숲을 보호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1969년에는 드디어 일본 최초의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됩니다. 이어서 1982년에는 아카자와 숲에서 삼림욕 이벤트를 열면서 본격적으로 삼림욕 문화의 발상지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때만 해도 삼림욕이라는 게 일반에게는 생소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아카자와 숲은 그같은 정책을 바탕으로 지금의 삼림욕 문화를 이끌어가는 시발점이 된 거죠. 그 뒤 아카자와 숲은 2001년에 일본 환경성의 〈향기로운 풍경 백선〉에, 2006년에는 〈산림 테라피 기지〉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숲에는 일본사람들이 히노키라고 부르는 편백이 주종이지만 이밖에 화백(サワラ 사와라) Chamaecyparis pisifera (Sieb. & Zucc.) Endl. 나한백(アスナロ 아츠나로) Thujopsis dolabrata (Thunb. Ex L.f.) Sieb. & Zucc. 금송(コウヤマキ 고오야마끼) Sciadopitys verticillata (Thunb.) Sieb. et Zucc. 일본측백(ネズコ 네즈코) Thuja standishii (Gordon) Carrière 등이 있습니다. 편백 화백 나한백 금송은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침엽수 가운데 하나이지만, 이 가운데 네즈코라고 불리는 나무가 아리송했습니다. 찾아보니 우리나라에는 없는 나무인 측백나무 종류여서 여기서는 그냥 ‘일본측백’이라고 했습니다.

  일천미터를 넘는 고지대에 위치한 이 숲의 연평균 기온은 섭씨 8도 정도여서, 한여름에도 상쾌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겨울에는 1미터 넘는 폭설이 내리기도 해서 산책은 어렵다고 합니다. 대략 사월부터 십일월까지 개방하는 이 숲을 찾는 방문객은 한햇동안 평균 12만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숲에는 몇 개의 산책 코스가 지정돼 있는데, 일부 구간은 비공개 구역으로 지정하여 산림 자원을 보호하는 데에 신경을 씁니다. 2백만 평이나 되는 숲을 모두 살펴본다는 건 불가능하겠지요. 그저 한 그루 한 그루를 더 오래 바라보며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고 싶은 간절함만 아득해 안타까웠습니다.

  짧게 쓰려 했는데, 오늘 《나무편지》도 길어졌습니다. 큰 숲, 큰 나무들을 향한 마음이 깊은 때문이겠지요. 아카자와 숲 근처에는 오래된 민가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키소 마을이 있습니다. 이 마을에는 오래 된 칠엽수가 한 그루 있습니다. 일본의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나무이지요. 무려 천년 된 칠엽수입니다. 우리나라에 칠엽수가 처음 들어온 게 1920년대 초 일본으로부터이니, 우리나라에서 만날 수 있는 칠엽수의 원조 격이라 해도 될 만한 나무입니다. 이 칠엽수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다음 편지에서 전해드려야 하겠네요.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그 천년 칠엽수의 한 부분만 보여드리고 마무리합니다. 〈나무 한 그루 사람 목 하나〉라는 살벌한 정책, 그건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무를 더 잘 이용하기 위한 겁니다. 그래도 그같은 엄혹한 정책 속에 살아남은 큰 숲의 생명 이야기가 가슴에 물결쳐 오르는 아침입니다. 고맙습니다.

 

- 큰 숲, 큰 나무를 그리워 하며 5월 29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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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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