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를 찾아서 W > 나무 생각 W
나무 생각w
제목 치자나무 흐뭇한 꽃 향기가 그리운 계절입니다 날짜 2016.06.25 19:10
글쓴이 고규홍 조회 3954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 ??

[나무 생각] 치자나무 흐뭇한 꽃 향기가 그리운 계절입니다

??치자나무 꽃 향기가 그리워 길 떠났습니다. 집안 베란다의 화분에서 기르던 치자나무가 몇 그루 있었습니다. 맨 먼저 집에 들어온 치자나무는 십 년 쯤 전이었나봅니다. 그때의 치자나무 화분은 내가 가져온 것도, 돌본 것도 아니었어요. 다른 식구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잘 자라던 그 치자나무는 요즘같은 장마 즈음 되어 우윳빛 꽃을 피우곤 했지요. 탐스럽고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송이는 눈으로 보기에도 좋았지만, 그의 향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그때 그 꽃의 향기를 한참 바라보며 썼던 글이 있습니다.

?〔내 집 베란다에는 치자나무가 산다. 아내가 어디에선가 얻어와 애지중지 기르는 갸날픈 나무다. 그 작은 나무에서 피어나는 고독한 향기는 베란다에 갇힌다. 꽃 피우기 전, 화분을 살피는 아내의 손길은 자못 조심스럽다. 가만가만 나무를 돌보는 손길이 음전하다. 아내의 손길을 닮아 음전하게 자라던 한 그루 작은 치자나무는 꽃까지 아늑하다. 이때만큼은 아내가 호들갑스러워진다. 아내의 호들갑에 이끌려 베란다 문을 열어젖히면 어느 틈엔가 내게도 그의 고혹한 향기가 참 기특하게 다가온다. 화분의 치자나무는 꽃잎 떨구고 음전하게 겨울을 지나는데, 아내는 지금 서울의 사막을 훌훌 털고 이틀 째 여행 중이다. 남쪽 나라 어디에선가 그이의 손길을 타고 자라던 치자나무 향기라도 탐색하는가.〕 - 《나무가 말하였네 1》 중에서

??아내의 그 치자나무는 그로부터 얼마 뒤에 병이 들었어요. 몇달 동안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명을 다하고 말았지요. 다시 또 치자나무 한 그루를 화분에 옮겨 들여온 건, 지난 해 이른 봄이었습니다. 제가 얻어와 순전히 제 손길만으로 키우려 한 나무였습니다.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씨와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의 한 단계였어요. 그녀와 제가 같은 종류의 나무를 화분에 심어 키우면서, 나무의 느낌을 공유하자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나무 키우기에 자신이 없기는 했지만, 성의를 다해 나무를 돌봤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차츰 시들어 갔습니다.

??뿌리에 문제가 있는지 몰라서, 흙을 다 털어내고 정성껏 분갈이도 했건만 나무는 겨우 생명의 끈만 놓치지 않은 채 시름시름 약해졌습니다. 처음에 사십 센티미터 쯤 자란 나무로 시작한 까닭에 지난 여름에 꽃을 피울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기까지 했건만 나무는 꽃은 커녕 살아남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지난 봄에 완전히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하릴없이 화분을 치워냈습니다. 이제 다시 치자나무를 들여올 때까지 당분간 집에서는 다가설 수 없는 치자나무의 향기입니다. 그 아름다운 향기가 그리워 길 떠났습니다.

??그 숲 한켠에 지금 치자나무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아직 숲의 길섶에 서 있는 치자나무는 꽃을 피우지 않았지만, 사방을 유리로 막은 울 안에 나즈막히 자라난 치자나무에서는 여러 송이가 화려하게 피어났습니다. 울 안쪽으로 발길을 들여놓는 순간 우윳빛 마알간 꽃송이에서 피어나는 향기가 저절로 발길을 멈추고 눈을 감게 합니다. 가만히 눈 감고 치자나무 꽃 향기에 다가섭니다. 소리 없이 서 있다가 뒤 돌아설라치면, 긴 숨 따라 가슴 깊이 스민 꽃 향기가 다시 발길을 이끕니다. 다시 치자나무 꽃 향기 앞으로 돌아갈 수밖에요. 그렇게 되돌아가기를 한번, 두번, 세번……. 시간 흐르는 줄 모르고 아련한 꽃 향기에 다가섭니다.

??치자나무 곁에 화려하게 피어난 여러 송이의 시계꽃 Passiflora caerulea L. 에 눈길을 돌린 건 한참 뒤였습니다. 향기는 젖혀놓고라도 생김새만으로도 발길을 멈추게 하는 특별한 생김새의 꽃입니다. 덩굴성 여러해살이풀인 이 식물의 우리말 이름이 왜 시계꽃인지는 잠깐만 바라보아도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꽃시계덩굴, 시계초라고도 부릅니다만, 국가표준식물목록의 추천명은 ‘시계꽃’입니다. 브라질을 중심으로 한 남아메리카 지역이 고향인 시계꽃은 아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의 따뜻한 곳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여러 곳에서도 많이 심어 키우는 바람에 이제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꽃이 됐습니다. 꽃 모양이 예뻐서 관상용으로 정원 가장자리에 심어 키우는게 대부분이지만, 꽃으로 차를 만들어 마시기도 한답니다. 그러나 아직 시계꽃으로 지은 차는 흔하지 않은 듯합니다. 하긴 한 순간의 미각을 위해 저 정교한 생김새의 꽃송이를 꺾어낼 엄두가 나지 않을 듯도 합니다.

??이번 장마에는 예년에 비해 비가 많이 온다는 기상청 예보가 남부지방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네요. 장맛비 시작된 지난 주초부터 지금까지 남부지방을 제외하면 비 내리는 날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과학의 힘으로 장마는 물론이고 자연의 흐름을 정확히 알 수야 없을 겁니다. 예보에만 기대지 말고 모두 이 여름 평안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 꽃 향기의 추억을 가만가만 되새기며 6월 27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솔숲닷컴(http://solsup.com)의 '추천하기'게시판에 '나무 편지'를 추천하실 분을 알려 주세요.
접속이 어려우시면 추천하실 분의 성함과 이메일 주소를 이 편지의 답장으로 보내주십시오.

○●○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글쓴이 비밀번호
등록
목록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