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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생각w
제목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나무를 느끼기 위해 날짜 2016.06.06 11:37
글쓴이 고규홍 조회 3390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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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생각]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나무를 느끼기 위해

??오동나무 꽃 지면 만나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미 몇 번을 만나서 나눴어야 할 이야기가 많았지만, 해마다 그랬던 것처럼 봄이면 몸도 마음도 분주한 탓이었습니다. 오동나무 꽃이 지면 봄이 지났다는 이야기겠군요, 라고 답한 그 사람은 다른 말 보태지 않고 봄나그네의 초여름 방문을 기다려주었습니다.

??봄 지나고 만나기로 한 사람이 여럿입니다. 철 지나며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앞다퉈 피어오르는 봄 꽃들을 하나라도 더 만나려는 생각에 우선 그랬습니다. 이제 오동나무 꽃도 다 떨어졌습니다. 자주 찾는 숲의 개오동(파르게시개오동 Catalpa fargesii Bureau)도 가지 위에 달린 송이만큼 땅에 내려앉은 송이가 많습니다.

??물가에서 피어난 해당화(밤송이해당화 Rosa roxburghii f. normalis) 꽃들도 피고지고.……. 가지 위에 싱그러이 남은 꽃송이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차츰 봄은 꼬리를 감추고 그 자리에 여름이 성큼 들어섭니다.

??비교적 꽃차례가 오래도록 싱싱하게 살아있는 산딸나무 꽃이 숲에 들어서는 여름을 화들짝 반깁니다. 봄과 여름, 그 사이에서 오래도록 계절의 발걸음을 더디게 하는 건 산딸나무가 대표적이지 싶습니다. 무성히 돋아오른 초록 잎을 거느리고 우윳빛으로 불쑥 솟아오른 산딸나무 꽃차례는 그 자태가 서릿발 쨍쨍한 가을처럼 도도합니다.

??지난 가을로 시간을 거슬러 가야 하겠습니다. 지난 번 〈나무편지〉에서 말씀드렸듯이 우리 땅에서 가장 크기도 하거니와 크기 못지않게 아름답기로도 첫 손에 꼽히는 느티나무를 만나기 위해 안절부절하던 이야기를 들려드리렵니다. 《슈베르트와 나무》 프로젝트를 시작하던 처음부터 이 프로젝트의 마무리 탐색으로 염두에 두었던 나무인 괴산 오가리 느티나무입니다.

??아. 참! 《슈베르트와 나무》를 놓고, 팟캐스트 방송을 했습니다. 책에 담기 어려웠던 뒷 이야기와 예지씨의 숨겨진 모습 등을 털어놓은 방송입니다. 꽤 긴 분량입니다만, 한번 쯤 들어보시면 어떨까 싶어서 여기에 링크합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들으실 수 있습니다.

??팟캐스트 ‘독자적인 책수다’ 웹에서 듣기
??팟캐스트 ‘독자적인 책수다’ 모바일기기로 듣기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예지씨와 적지 않은 나무를 찾아서 여러 감각으로 느끼긴 했습니다만, 큰 나무를 탐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무를 만질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지요. 삼십 미터에 가까운 높이의 큰 나무를 눈으로 보지 않고 짐작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나무를 찾아보기로 약속한 날이 가까워올수록 지나친 욕심이었음을 알게 돼 황망했습니다. 홀로 나무를 찾아 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한참 바라보고 서 있다든가 혹은 나무 그늘에 오래 앉아있으면 풀리지 않던 삶의 어려운 문제들을 술술 풀어주기까지 했던 고마운 나무이건만 시각장애인의 나무 탐색에 대해서는 아무런 실마리도 던져주지 않았습니다. 하릴없이 그냥 돌아설 수밖에요.

??돌아오는 길에 문득 떠오른 소설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난 해 퓰리처상 수상작이었던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이라는 두 권짜리 장편소설입니다. 맹인소녀 ‘마리로르’가 이차대전을 겪어나가는 드라마틱한 이야기인데, 그 소설의 중요한 소재 가운데 종이로 만든 마을 모형이 있습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홀로 살아갈 방도를 마련해주겠다는 생각에서 맹인소녀 마리로르의 아버지가 정성껏 만든 작품입니다. 소녀는 모형을 만지며 마을의 길과 지형을 익힙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이야기하지요. “무언가를 만진다는 것은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요. 소설의 한 장면에서 문득 큰 나무 탐색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싶었습니다.

??〈머뭇거리지 않고 문방구로 달려갔다. 커다란 스케치북과 함께 두꺼운 색종이를 비롯한 종이 공작 도구를 넉넉히 구입했다. 참 오랜만에 만져보는 도구들이다. (중략) 전체적인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사진들을 프린터에 걸었다. 인쇄돼 나오는 사진에 골고루 풀칠을 해서 두꺼운 색지에 붙였다. 그리고 가위로 오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예민한 촉각을 가진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도록 나무의 윤곽을 세밀하게 오려내고 싶었다. 아무리 바깥 윤곽이라고는 하지만, 나무는 어느 한 곳에도 직선이 없다. 온통 곡선인 데다 그것도 구불구불하다.〉 - 《슈베르트와 나무》 206쪽에서

??〈한 굽이 두 굽이, 나무의 윤곽을 따라 가윗날이 종이를 스칠 때마다 나는 소설 속 마리로르의 아버지를 생각했고, ‘무언가를 만진다는 건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마리로르의 이야기도 떠올렸으며, 김예지의 여린 손길을 상상하기도 했다. 두꺼운 색종이를 오려내는 가위질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나무 사진을 프린트한 종이까지 겹쳐진 두 겹이니 더 그렇다. 긴 시간도 아니었는데 가위의 손잡이에 끼어 들어간 손가락 마디에 가벼운 통증이 실렸다. 두꺼운 종이를 살살 돌릴 때마다 가위를 잡은 손가락도 함께 좌우로 혹은 백팔십 도 반대 방향으로 돌려가며 절룩거린 탓일 게다. 기분 좋은 혹은 사랑 담긴 통증이다.〉 - 《슈베르트와 나무》 207쪽에서

??드디어 예지씨와 함께 괴산 오가리 느티나무를 찾아가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나무의 모형을 오려내 붙인 스케치북을 안고 나무 앞에서 예지씨와 나란히 앉았습니다. 그 장면 역시 책의 일부를 옮겨 보여드리겠습니다.

??〈김예지에게 스케치북을 건네줬다. “와! 보여요, 보여요!” 김예지가 스케치북의 첫 페이지에 담긴 나무 사진을 만지자마자 곧바로 ‘보인다’며 즐거워했다. 분명히 ‘보인다’고 했다. 늘 그러했지만, 얼굴에는 환한 미소를 띠었다. 스케치북에 도톰하게 올라 온 나무 사진의 윤곽선을 따라 그녀의 손가락이 쉼 없이 헤엄친다. 표정은 점점 더 환해진다. 그녀의 환한 표정을 바라보자니, 두꺼운 색종이를 오려붙이며 고민하던 지난 며칠 동안의 작업들이 즐겁게 스쳐 지난다.〉 - 《슈베르트와 나무》 246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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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북의 나무 모형을 만지며 분명 ‘보인다’고 한 예지씨와의 느티나무 탐색 작업은 내내 즐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작은 가장 어려운 작업이었던 게 분명하지만, 결과로는 가장 큰 기쁨이 있었던 작업이었습니다. 예지씨는 그 날 괴산 오가리 느티나무를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자기만의 느티나무로 가슴 가득히 채웠으리라 믿습니다.

??몇 차례에 걸쳐 〈나무편지〉에 예지씨와의 나무 체험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있습니다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삼백열두 쪽 분량의 책에 담은 내용보다 더 많습니다. 짬짬이 이 프로젝트의 사연을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편지에 포함한 사진에도 지난 번 〈나무편지〉에서처럼 인터넷 서점의 책 페이지를 링크했습니다. 계속적인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새 책 《슈베르트와 나무》 정보 보기 혹은 구입하기


- 눈으로 볼 수 없는 나무를 바라보며 6월 7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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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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