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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매를 짓고 익히는 가을 나무의 속사정에 귀 기울입니다 날짜 2015.09.06 15:56
글쓴이 고규홍 조회 1602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 생각] 열매를 짓고 익히는 가을 나무의 속사정에 귀 기울입니다

??비 쏟아지고 나니 바람 선선합니다. 지난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린 팜파스글라스는 이 바람 맞으며 제 꽃을 더 아름답게 피워올리겠지요. 조금씩 더 맑은 빛으로 몸을 바꾸며 가을 지나 북서풍 몰아치는 겨울 초입까지도 시리도록 아름다운 꽃으로 숲을 지킬 겁니다. 가을을 누구보다 화려하게 보내는 식물입니다. 저리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느라 뜨거운 햇살 내리쬐던 지난 여름을 얼마나 힘겹게 지냈을까요. 결과가 아름답고 훌륭할수록 그를 지어내기까지 그가 겪어야 했던 노동의 수고가 얼마나 크고 힘들었을지 함께 생각해야 할 겁니다. 팜파스글라스에 곁을 주지 않고 스쳐온 지난 봄 여름의 날들 동안 그가 홀로 치렀을 수고의 나날들에 뒤늦은 박수를 보냅니다.

?

??초가을 숲을 거닐며 가만히 눈을 감았습니다. 나무들의 속 사정을 헤아려 봅니다. 어쩌면 이 즈음의 숲 풍경은 무척 심심해 보일 수 있습니다. 꽃이 없는 건 아니지만, 숲의 나무들은 봄 여름 지나며 잠깐 숨을 돌릴 틈을 찾는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화려한 꽃은 드물고, 단풍 들기도 이른 철이니까요. 게다가 꽃 못지 않게 좋은 열매들조차 아직은 연두 빛이나 초록 빛으로 덜 익은 채 초록 그늘 아래 숨어 있으니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요. 생각해보면 지금이 숲의 나무들에게는 가장 바쁘고 힘겨울 때 아닐까요. 그저 눈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야 나무의 속 사정을 어찌 속속들이 짚어볼 수 있겠습니다. 힘겹게 재우치는 나무의 가을 채비는 도통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눈으로 본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이어가게 됩니다. 본다는 것, 시각은 현대 과학 발전과 함께 다른 감각을 압도할 만큼의 권력을 획득하게 됐지요. 모든 실험과 관찰은 기본적으로 시각에 의한 관찰을 바탕으로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으로 관찰한 것만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할 수 있을까요? 특히 지금처럼 숲에 별다른 변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때라면 그런 생각이 더 깊어집니다. 꼼짝 않고 해만 바라보고 수굿이 서있는 나무들이지만, 분명히 그들은 누구보다 요령있게 가을을 맞이해야 합니다. 한 해 노동의 결실을 맺어야 할 뿐 아니라, 다가오는 북풍한설에 맞설 채비까지 갖춰야 할테니까요.

??채 여물지 않아 고작해야 초록의 자잘한 돌기 상태라 할 만큰 앙증맞은 열매 앞에 서서 눈을 감고 그들의 힘겨운 노동의 아우성에 귀기울입니다. 하염없이 시간이 흘러 지나가도 내 안에 들어오는 나무의 신호는 깨닫기 어렵습니다. 그저 머릿속에 든 나무살이 상식에서 비롯된 짐작만으로 그들의 지금 삶이 얼마나 힘겹고 고통스러울지 생각할 뿐입니다. 나무 앞에서 더 오래 눈을 감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눈으로 바라보았던 나무들에게서 내가 보지 못한 것, 느끼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느끼겠습니다. ‘나무를 본다는 것’의 의미는 그렇게 나무에 다가설수록 자꾸만 눈을 감게 합니다.

??오늘 편지에 보여드린 세 장의 열매 사진은 위에서부터 말채나무, 좀작살나무, 왕초피나무의 열매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여름에는 여름 꽃의 상징이랄 수 있는 무궁화 꽃을 한번도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가게 됐습니다. 나무편지 끝에 무궁화 꽃을 덧붙입니다. 이제 이 무궁화 꽃 앞에서 눈을 감고 서 있으려면 다시 또 한해를 기다려야겠지요. 세상의 모든 꽃은 단 한번만 피어난다는 자연의 진실을 다시 한번 떠올리는 가을입니다.

- 눈으로 볼 수 없는 나무의 속사정을 떠올리며, 9월 7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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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maeam (2015.09.07 11:59)
가톨릭에서는 생물체이 있는 혼을 生魂이라 하는데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실감하게 됩니다. 가을에 듣는 여러 소리들~ 귀뚜라미 소리, 곡식 익는 소리, 책 읽는 소리에 가을 나무의 속사정에 귀기울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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