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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상의 나무라 불리는 가죽나무 꽃 떨어진 길을 걸었습니다 날짜 2015.06.07 17:37
글쓴이 고규홍 조회 4127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 생각] 천상의 나무라 불리는 가죽나무 꽃 떨어진 길을 걸었습니다

??노란 꽃이 소복이 깔린 길을 걸었습니다. 올에는 여느 해의 이맘 때에 비해 비가 무척 적게 내렸습니다. 여느 해의 이 때 쯤에는 길 위에 깔린 노란 꽃송이가 대부분 비에 씻겨 내리곤 했지만, 지금은 길 한 가득 노란 꽃송이가 소복합니다. 바삭하게 마른 길 위에 노란 꽃가루를 골고루 뿌려놓은 듯합니다. 가만가만 걷는 걸음걸이가 가볍습니다. 바로 커다란 가죽나무에서 낙화한 앙증맞은 꽃입니다. 노란 가죽나무 꽃이 필 때는 몇 차례에 걸쳐 비가 내리고, 꽃송이의 노란 느낌을 채 가슴에 안아 들이기도 전에 내리는 비가 꽃을 쓸어가곤 했습니다.

??게다가 우산을 쓰고 이 길을 지나다보면 높지거니 솟은 가지 위에서 피어난 가죽나무 꽃 송이를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높이 쳐들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나무의 존재감은 여느 나무에 비해 강렬했지만, 피어난 꽃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올에는 늦은 봄부터 내내 낙화한 가죽나무 꽃이 아침 산책 길에 나선 사람의 발걸음을 상큼하게 맞이합니다. 아직 가지 끝에 남은 가죽나무 꽃을 유심히 바라보게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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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집 근처의 나무들 이야기를 엮은 새 책에 대한 인터뷰 때마다 받은 질문 가운데 하나가 “집 근처의 나무를 바라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나무는 어떤 나무냐?”였습니다. 머뭇거리지 않고, ‘가죽나무’라고 대답했습니다. 열 일곱 해 전 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렇습니다. 보면 볼수록 훌륭한 나무임에 틀림없지만, 비슷하게 생긴 데다 새 순을 나물로 무쳐먹을 수 있던 참죽나무 때문에 불명예스러운 ‘가짜 참죽나무’라는 뜻의 이름을 갖게 됐다는 건 얄궂습니다. 먹을 수 있는 나무여서 ‘참’이라 이름 붙이고, 먹을 수 없는 나무여서 ‘가짜’라는 이름을 붙인 겁니다. 가난했던 우리 민족의 옛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한 흔적이겠지요.

??우리 뿐이 아닙니다. 중국의 고전,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 편 십사 장에도 가죽나무는 그리 명예롭지 않은 나무로 등장합니다. “줄기는 울퉁불퉁하고, 가지는 비비 꼬여 목수가 거들떠보지도 않는 나무”라는 혜자의 이야기가 그 대목이지요. 오로지 목수의 좁은 소견에 따른 쓰임새를 바탕으로 한 판단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판단에 대해 장자는 “나무 곁에서 한가로이 쉬면서 유유히 낮잠에 들 수 있지 않느냐”는 말로 혜자에게 대거리합니다. 목수의 쓰임새로 보아서는 쓸모가 없다고 볼 수 있지만, 다른 쓰임새로 보자면 여느 나무 못지 않게 훌륭한 나무라는 장자의 큰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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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람들이 오로지 이 나무의 생김새만을 놓고, 천상의 나무 Tree of Heaven 라고 부른 것도 장자의 가르침처럼 바라보기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가죽나무가 태풍에 약하다고 알려지면서, 제가 사는 집 앞에 살던 가죽나무도 상당 수가 뽑혀나갔습니다. 나뭇가지를 넓게 펼치는 나무인 까닭에 바람에 약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요. 그러나 꼭 가죽나무를 뽑아 없애고 다른 나무를 심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을까를 자꾸만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의 소용에 따라 사람의 마을에 들어와 생명을 일으켜 사람을 위해 살아오다, 무참히 뽑혀나가는 하나의 생명을 향한 안타까움은 도무지 떨칠 수가 없습니다.

??많은 가죽나무가 뽑혀나가고 몇 남지 않은 가죽나무가 여전히 꽃 피우고 열매 맺는 생명살이의 안간힘이 아슬아슬합니다. 언제 다시 또 사람의 사나운 날이 저들의 굵은 생명 줄기를 파고들지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살아있는 가죽나무 가지를 더 간절한 마음으로 한 번 더 바라보게 됩니다. ?

- 사람살이를 일으키고 사람에 의해 죽어가는 생명들을 떠올리며
유월 팔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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