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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풍양면 삼강주막 회화나무 그늘에 들어 주모를 그리며 날짜 2015.02.25 10:05
글쓴이 고규홍 조회 3385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 생각] 풍양면 삼강주막 회화나무 그늘에 들어 주모를 그리며

??설 쇠고 나서 띄운 설 인사의 나무 편지에서 삼강리 주막 회화나무 사진을 보여드렸습니다. 사진 설명으로 ‘문경 삼강주막’이라고 썼는데, 삼강주막은 ‘문경’이 아니라, ‘예천’입니다. 예전에 낸 책과 신문 칼럼에서도 버젓이 ‘예천’이라고 썼는데, 이번 편지에서는 뭣 때문에 헷갈렸는지, 문경이라고 잘못 썼어요. 사진 뒤편으로 보이는 ‘삼강교’라는 다리를 건너면 바로 문경시 영순면 달지리가 이어지기는 하지만, 삼강주막이 있는 풍양면 삼강리는 예천군에 속합니다. 문경과 맞붙어 있어서 늘 헷갈리기는 합니다만, 아예 삼강주막을 문경이라고 쓸 수야 없지요.

??예천에서 문경으로 강을 건너가는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나루터의 삼강주막은 우리나라에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주막으로 이야기하는 곳입니다. 과연 ‘마지막까지’라는 기준이 뭘까 하는 질문이 들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삼강주막이 주목받았던 근거는 무엇보다 이 주막을 오랫동안 열었던 ‘이 땅의 마지막 주모’가 살아계셨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2005년 시월 초하루에 주모로서의 일생을 내려놓고 이 땅을 영원히 떠나신 유옥연 할머니가 그 분입니다. 여든 아홉 해의 생이었습니다. 성함만큼 참 곱게 늙으신 할머니였습니다. 돌아가시기 바로 전 해에 찾아뵈었을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오르네요.

??‘골초’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담배를 꽤 좋아하셨죠. 고운 얼굴이지만, 미소를 띤다거나 나그네를 향해 살가운 이야기를 던지는 법이 별로 없는, 조금은 무뚝뚝한 어른이었습니다. 공연히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볼까 하고 주막의 툇마루에 걸터앉아 이런저런 너스레를 떨었지만, 아주 짤막한 대답만 던질 뿐이셨지요. 애초에 삼강주막을 유 할머니가 처음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 열 여섯에 이 마을에 시집와, 마흔 되던 해에 영감님이 돌아가시자 살림을 이어가기 위해 마을 주막을 넘겨받고 무려 오십 년 동안 허름한 주막의 주모로 살아오셨던 겁니다.

??유 할머니 살아계실 때에 삼강주막을 몇 차례 다녀왔습니다. 알아보실 법도 한 데, 알은 체는 전혀 안 하셨어요. 그저 무뚝뚝하게 대하면서도 편안하게 맞아주시는 정도였습니다. 그때 삼강주막은 초가가 아니라 슬레이트 지붕이었고, 기둥이 약간 비스듬히 기울었습니다. 할머니 돌아가신 뒤에 예천군에서 삼강주막의 가장 옛 모습인 1백 년 전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바람에 유옥연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의 느낌과는 전혀 다른 주막이 되었지요. 그러나 툇마루에 앉아 할머니와 함께 바라보던 커다란 회화나무만큼은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나무를 바라보며 지나간 사람들을 그리워 하게 됩니다. 다시 또 나무를 찾아 나서게 되는 까닭입니다.

- 2월 25일, 삼강주막의 옛 주모 할머니를 떠올리며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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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남 (2015.02.25 19:14)
특별히 하는것없지만 명절이 지나고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네요.모든것을 다 드러내던 나무도 곧 새싹이 앞 다투어 피겠지요.통도사의 영각앞에 홍매화는 거의 다 폈던데 화엄사의 각황전앞 홍매화는 아직도 좀 더 기다려라 그러고 주변의 모든 나무들이 봄 준비에 전부들 바쁘겠죠.
오늘은 나무수업을 마치고 대구수목원에 들렀습니다. 납매화랑 풍년화가 피어서 헹뎅그래한한 수목원을 밝히고 있더군요. 히어리 산수유 영춘화도 곧 필것처럼 만발의 준비를 하고 있고요.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좋은소식 많이 부탁드립니다..다음에는 예천도 가봐야겠어요.. 삭제
이경란 (2015.03.23 23:38)
부산에도 멋지다 못해 신령스런 회화나무가 있지요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되어 보호수가 됫는데 기가막히게도 주변사람들의 성화때문이랍니다 개발문제 때문이라네요. 제 학생들 데리고 또는 식구들데리고 혼자서 먹먹하리 만치 귀기 도는 괴정동 회화나무와 함께하다 오곤 한답니다
동네이름도 괴정동 이에요 회화나무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죠. 아직도 아주 건강히 아주 신령스럽게 괴정동을 지키고 잇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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