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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동나무 꽃 지면 편안히 만나자 했던 동무 생각으로…… 날짜 2020.05.09 18:44
글쓴이 고규홍 조회 278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생각] 오동나무 꽃 지면 편안히 만나자 했던 동무 생각으로……

  맵차게 피어나는 꽃 찾아 나서느라 해마다 봄이면 발길은 매오로시 분주했습니다. 만나야 할 동무들 만나기 쉽지 않은 이유였지요. 봄숲 나무 곁에서 동무의 전화를 받게 되면 버릇처럼 “오동나무 꽃 질 때쯤” 만나자고 했어요. 개나리 매화에서 시작하는 빠른 개화 속도가 오동나무 꽃 질 즈음이면 조금 늦추어지리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오동나무 꽃 질 때쯤”이라는 말이 “봄 지나고 여름에 들어서는 즈음”이라는 뚜렷한 신호였습니다. 하지만 이 봄에는 누구도 만나지 못하고 작업방에 틀어박혀 지내는 동안 오동나무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느 해와 다르게 이제야 운동화 끈을 조이고, 길 위에 오를 채비로 분주해졌습니다. 완전히 거꾸로입니다.

○ 희고 노랗던 봄빛에서 여름의 화려한 여름 빛으로 ○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즈음에 피어나는 오동나무 꽃은 여느 꽃 못지 않게 반갑습니다. 봄 내내 우리 곁을 밝혀주던 거개의 꽃들과는 빛깔과 모양에서 또렷이 다른 때문이겠지요. 흰 빛과 노란 빛에 물들어있던 세상을 사뭇 다른 빛깔로 물들일 태세인 거죠. 사실 오동나무 꽃 전이라고 해서 오동나무 꽃 빛깔에 버금가는 보랏빛 꽃이 없는 건 아닙니다. 진달래 꽃이 그렇고, 그에 잇달아 피어나는 철쭉 꽃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동나무처럼 넓은 잎에 높지거니 솟아오른 큰 나무 꼭대기에서 붉은 빛으로 피어나는 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최소한 제 관찰 버릇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동나무 꽃은 계절과 계절의 사이를 매듭지어주는 하나의 표시이고, 미루어둔 동무들과의 만남을 위한 겨를의 시작이었던 겁니다.

  오동나무와 관련해서는 떠오르는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옛날에 딸 아이를 낳은 아비들은 딸 아이 혼사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오동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를 먼저 떠올리시겠지요. 물론입니다. 오동나무 한 그루 잘 키워서 혼사 때에는 근사한 장롱 한 채 지어주려는 아비의 마음, 어쩌면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할 딸 아이를 위한 ‘이별의 채비’인 거죠.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오동나무의 추억은 젊은 시절에 한참 매달려 두드렸던 장구의 통입니다. 장구 통 가운데에는 오동나무로 만든 게 품질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오동통 장구’는 선배들만 칠 수 있었지요. 그때 그 오동통 장구와 더불어 꽹과리 북 징을 함께 치던 동무들 생각을 가만가만 짚어보곤 합니다.

○ 오동나무 천연기념물은 여태 한 그루도 없어 ○

  오동나무를 찾을 때에는 그래서 언제나 옛 동무들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워낙 우리에게 오래 전부터 흔한 나무인 때문일까요. 그리 크고 오래 된 오동나무가 별로 없습니다. 단적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오동나무는 한 그루도 없습니다. 그나마 오동나무와 가까운 친연관계를 가진 나무 한 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정도죠. 경북 청송 홍원리 개오동나무입니다. 나무 이름에 들어있는 ‘개’가 대개 그렇지만, ‘가짜’ 혹은 ‘비슷한’ 이라는 뜻이니까, 개오동나무도 오동나무와 무척 비슷한 나무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건, 꽃 빛깔입니다. 개오동나무의 꽃은 보랏빛이 아니라 흰 빛이거든요. 그래서 여느 오동나무에서 가지는 느낌과는 다르다는 게 아쉽습니다.

  오동나무를 이야기할 때, 또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겨울에 활짝 피어난 오동나무 꽃 이야기를 아시나요? 그 겨울의 꽃을 보고 놀란 스님은 한창 공 들여 짓던 절집의 이름을 ‘오동나무 꽃 화려한 절집’이라고 했지요. 바로 대구 팔공산의 동화사와 그 창건주인 심지대사 이야기입니다. 동화사에는 창건주 심지대사와 오동나무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기 위해 이 절집 안에서 가장 크게 자란 오동나무에 ‘심지대사 오동나무’라는 뜻깊은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지요. 이 ‘심지대사 오동나무’가 얼마 전부터 건강이 안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뒤로 찾아가지 못해 지금의 상태가 궁금하네요.

○ 나무를 보며 사람을 더불어 떠올리게 되는 날들 ○

  오동나무 이야기는 지금 미처 떠올리지 못하는 것도 많을 겁니다. 개오동나무뿐 아니라, 오동나무와 헷갈리기 쉬운 벽오동도 함께 이야기할 나무이지요. 더불어 벽오동을 이야기한다면 전설의 새 봉황을 이야기해야 하고, 봉황을 이야기하면 또 대나무를 이야기할 수밖에요.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겁니다. 그러나 오동나무 이야기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시인 황진이의 오언율시 《奉別蘇判書世讓》이지 싶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겠지요. 한 많은 삶을 살아온 이 시인은 시 속에 오동나무를 딱 한 번 불러냈습니다만, 오동나무의 이미지를 절묘하게 드러낸 절창이라 기억됩니다.

  황진이의 절창 이야기는 다음 《나무편지》에서 전해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아쉽게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의 사진은 위에서부터 1. 오동나무 꽃, 2. 개오동나무 잎, 3, 청송 홍원리 개오동나무, 4, 청송 홍원리 개오동나무, 5. 대구 동화사 심지대사 오동나무, 6. 대구 동화사 심지대사 오동나무입니다.

  고맙습니다.

- 오동나무 꽃 피어나는 여름의 문턱을 바라보며 5월 11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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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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