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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생각w
제목 나무를 본다는 것은 마음 깊이 그리움을 쌓는 것 날짜 2020.03.28 11:52
글쓴이 고규홍 조회 266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 생각] 나무를 본다는 것은 마음 깊이 그리움을 쌓는 것

  아무래도 책 몇 권 더 읽어야 할까봅니다. 개강을 두 주나 미룬 대학은 비대면수업을 한 주 더 미뤄 삼 주 째 학생들을 만나지 못하게 됐습니다. 다음 주로 예정됐던 초중고 개학일정도 순조롭지 않습니다. 오늘 내일 사이에 개학 여부를 결정한다니 기다려 봐야겠네요. 봄바람 따라 피어나는 봄꽃 찾아 길 위에 오르려는 생각도 더 멈추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이월 말에 제주에 다녀온 뒤로는 ‘잠시 멈춤’과 ‘거리 두기’로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다가오는 봄을 마음으로만 느끼는 중입니다. 남녘의 매화 개화 소식에서부터 곳곳에서 전해오는 봄꽃 소식들에 설레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모두가 잠시 멈춰 서 있는 이 즈음에 홀로 중뿔나게 밖으로 나돌 수 없겠지요. 그래서 다시 인터넷 서점에 베개만한 책 몇 권 더 주문하고 《나무편지》 띄웁니다.

○ ‘보고 싶은 마음’이 쌓이고 또 쌓이면 ○

  삼월 한 달 동안에 변함없이 진행한 건 토요일마다 진행하는 라디오방송의 《나무 이야기》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방송에서 하는 나무 이야기도 조심스러웠습니다. 나무 이야기를 할 때면, “꼭 한번 찾아가 볼 나무입니다”라는 표현을 빼놓지 않고 덧붙여 왔지만, 이 즈음에 나무를 찾아보기 위해 길에 나서라고 선뜻 말씀드릴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나무를 본다는 것은 마음 속에 그리움을 쌓는 과정”이라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다가설 수 없는 나무들을 차곡차곡 마음 깊이 잘 쌓아둔다면, 내년 봄에 다시 나무를 만나게 된다면 마음 깊이 쌓아두었던 ‘보고 싶은 마음’이 살아나 여느 때보다 더 반갑고 고맙고, 즐겁고 기쁠 게 분명합니다.

  봄이면 언제나 그랬습니다. 매화 꽃 피어났다는 소식에 남녘으로 발길을 재우쳐 나설라치면, 다른 들판의 자디잔 풀꽃들의 아우성이 걸렸고, 푸르게 돋아나는 느티나무 새 잎을 찾아나서려면, 늙은 은행나무 굵은 줄기에서 피어나는 새싹도 궁금했습니다. 아무리 서두르고 재우쳐봤자, 직접 만날 수 있는 나무는 몇 그루 안 됩니다. 어쩌는 수 없이 ‘보고 싶은 마음’을 마음 속애 쟁여두어야만 합니다. ‘그리움을 쌓아두는 것’이지요. 이십 년을 그렇게 살았지만, 봄이든 가을이든 ‘보고 싶은 마음’을 흡족하게 채운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 도시의 거리에서 하염없이 피어나는 풀꽃을 찾아 ○

  그래서 지금 이 봄에는 도시의 길 모퉁이에서 만나는 꽃들이 더 반갑습니다. 보도블록 틈을 뚫고 피어나는 냉이 꽃이 그렇고, 조경사의 가위질로 뭉툭해진 회양목 낮은 가지 위에서 피어나는 자디잔 꽃이 그렇습니다. 조금 더 있으면 하얀 꽃을 피울 쥐똥나무 가지에 솟아오른 연초록 잎사귀도 그렇고, 쇠창살 울타리 사이에서 피어나는 개나리꽃도 그렇습니다. 아! 아파트 단지의 목련, 어떤 공공건물 화단 가장자리에 서 있는 산수유는 조금은 우울한 표정이지만 그래도 이미 활짝 피었습니다. 이 땅의 모든 분들이 그러시는 것처럼, 이번 주에도 다시 봄 향한 걸음을 멈추겠습니다. 그리고는 사람 많지 않은 이른 아침에 집 바깥의 도심 거리에서 하염없이 피어나는 풀꽃들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이천이십년 봄이 난감하게 흘러갑니다. 아쉽고 안타깝고 답답하지만, 지금 이 시기가 우리의 지난 날들을 돌아보고, 더 평화롭게 이 땅에 머무르고 나무와 사람이 더 온전하게 더불어 살 수 있는 날을 마련하는 아주 고마운 날들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두 평안하십시오.

- 하염없이 피어나는 도시의 풀꽃들 사이에서 다시 걸음을 멈추며
3월 30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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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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