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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울타리 곁에서 애면글면 봄바람을 불러오는 꽃들 앞에서 날짜 2020.03.14 16:29
글쓴이 고규홍 조회 351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 생각] 울타리 곁에서 애면글면 봄바람을 불러오는 꽃들 앞에서

  실내 공간의 트래드밀 위에서 걷거나 뛰는 걸음 수를 빼면 하루에 고작 2천 걸음을 채 걷지 않으며 지내는 날들입니다. 휴대전화에 기록된 최근의 하루 걸음 수를 살펴보니, 어떤 날은 1천 걸음도 채 걷지 않고 작업실에 앉아서만 지낸 날도 있습니다. 지루하고 답답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 즈음이 아니라면 쉽지 않았을 일도 있어 좋습니다. 7백 쪽에서 1천 쪽이나 되어 보기만으로도 부담스러울 만큼 묵직하지만, 좋은 책이어서 언제든 보려고 책상 곁에 두었던 책들이나, 혹은 인터넷서점의 보관함에 담아두고 망설였던 책들에 얼굴을 파묻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이 즈음 아니면 어려운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식물에서 건져올린 토박이 지혜 ○

  나무를 아끼고 좋아하시는 《나무편지》의 벗들과 함께 읽어도 좋을 책으로 꼽을 만한 책이 있습니다. 《향모를 땋으며 Braiding Sweetgrass》라는 다소 생경한 제목의 책입니다. 제목에 들어있는 ‘향모 Hierochloe odorata’는 북아메리카 지역에 자생하는 초본 식물의 이름입니다. 향모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식물이지요. 원주민의 창조 신화에 따르면 이 땅에서 자란 최초의 식물입니다. 단순히 초록 식물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식물인 거죠. 당연히 향모는 오랫동안 성스러운 식물로 여겨져 왔지요. 이 책의 지은이 로빈 윌 키머러는 북아메리카원주민의 하나인 포타와토미 족 출신이며 현재 뉴욕주립대 환경생물학과 교수인데, 오랫동안 향모를 성스럽게 여기는 신화와 문화 속에서 성장한 식물생태학자입니다.

  책의 제목에 ‘향모’가 등장하지만, 이 책이 향모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포타와토미 족의 지은이 키머러는 원주민의 전통 문화 속에 살아있는 사람살이의 지혜를 지금 이 시대의 사람살이에서 잊고 있는 것과 비교해 짚어냅니다.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이라는 부제는 그런 이유에서 붙인 거지요. 포타와토미 족의 살림살이가 유럽의 이주민에 의해 말살되어가는 과정을 짚어보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 어떤 대목에서는 가슴이 찡할 정도로 뭉클하기도 합니다. 6백 쪽 가까이 되는 묵직한 책이지만, 자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이 즈음에 읽기 딱 좋은 책이지 싶습니다. 오랜만에 식물을 소재로 한 감동적인 책이었습니다.

○ 사람과 동물을 옮겨다니는 미생물의 생태를 짚어내 ○

  또 한 권의 책을 짚어보자면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입니다. 어려운 학술서적의 제목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무려 650쪽이 넘는 책이어서 조금 망설여지는 책입니다만, 일단 책을 열고 보니 무척 흥미진진했습니다. 첫 인상과 달리 이 책은 그리 어려운 책이 아닙니다. 전염병 특히 사람과 동물에 공통적으로 옮겨다니는 미생물에 의해 옮겨지는 전염병에 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흥미로운 자연 칼럼 정도로 생각하면 꼭 맞을 겁니다. 실제로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콰먼은 《내셔널지오그래픽》의 고정 필자이며, 이 책에 포함한 칼럼의 일부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의뢰에 따른 취재이기도 했습니다. 또 그는 자연사 분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 가운데 하나인 《도도의 노래》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제가 읽게 된 것은 최근의 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관심의 확장이었지요. 답답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은 생각에서 그의 또 다른 묵직한 책 《진화를 묻다 The Tangled Tree》와 함께 준비한 책입니다. 두 권 가운데 먼저 손에 든 책이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Spillover : Animal Infections and the Next Human Pandemic》입니다. 양장본의 두툼한 책에 약간은 주눅이 든 채 책을 펼쳤지만, 1994년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나타난 헨드라 바이러스 이야기인 첫 페이지부터 흥미진진합니다. 전염병이 처음 나타난 과정과 이 전염병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한 과학자들의 지난한 노력을 풀어헤치는 게 마치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듯 흥미롭습니다. 박쥐로부터 비롯한 헨드라 바이러스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책의 이야기들은 더불어 이 즈음 우리 현실을 위협하는 바이러스에 대한 이해의 실마리를 주기도 합니다. 《향모를 땋으며》와 함께 지금 방안에 갇혀 지내는 이 즈음 우리에게 맞춤한 책이지 싶습니다.

○ 한껏 움츠려야 하는 이 즈음 건강 상하지 않으시기를 …… ○

  어김없이 이 땅의 낮은 곳에서부터 꽃들은 봄바람을 불러 옵니다. 도시의 울타리에 애면글면 기대에 서 있는 개나리 가늣한 가지에서도 꽃봉오리가 부풀어 오릅니다. 읽을 만한 두 권의 책을 소개하면서 오늘의 《나무편지》는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에 담은 사진은 위에서부터 크로커스 종류의 꽃, 삼지닥나무의 꽃, 수선화 종류의 꽃, 만병초 종류의 꽃봉오리, 목련 종류의 꽃봉오리, 낙우송 종류의 뿌리 부분입니다.

  봄바람 따라 활짝 기지개를 켜는 자연과 달리 한껏 움츠리기만 해야 하는 이 즈음, 몸 상하지 않도록 건강 잘 돌보셔서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 세상의 모든 생명들과 더불어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며
3월 16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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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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