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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외로이 피어난 봄꽃… 봄바람 다가와도 즐겁지 않은 봄 날짜 2020.02.28 10:37
글쓴이 고규홍 조회 309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 생각] 외로이 피어난 봄꽃… 봄바람 다가와도 즐겁지 않은 봄

  지금 봄 바람 불어오고 봄꽃은 피어납니다. 봄꽃이 줄줄이 피어나고 있습니다만, 봄처럼 즐거울 수 없는 봄날이 너무 길게 이어집니다. 봄꽃 피어나는 속도만큼 사라지는 것들도 늘어납니다. 지난 이월에도 그랬는데, 삼월에도 연이어, 준비된 거의 모든 일들이 취소됩니다. 대학 개강이 미뤄진 건 이미 오래 전이었습니다. 사람의 역사에서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오래 전부터 역사를 바꾸었고, 지금도 여전히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쉽지 않은 날들입니다. 이 즈음의 시간을 힘겹게 보내는 모든 분들께서 사람에 대한 애정과 내일을 향한 용기 잃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그리고 봄 바람 불어오고 봄꽃은 피어납니다. ○

  그리고 봄 바람 불어오고 봄꽃은 피어납니다. 도심의 거리도, 버스도, 심지어는 늘 빈 자리가 없던 제주행 항공기의 좌석도 빈 자리가 눈에 띕니다. 지난 주에는 한산해진 여러 길 위에 올랐습니다. 주초에는 이 땅의 봄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주는 천리포수목원의 아름다운 숲을, 이어서 주중에 제주의 숲을, 다시 또 주말에는 천리포 숲에서 하룻밤을 머무르고 돌아왔습니다. 수목원 숲의 봄꽃은 모두 봄 바람을 불러오느라 찬란한 봄노래를 부르고 있었지만, 바라보는 이 적어 외로워보였습니다. 유채꽃 활짝 피어난 제주의 들녘에도 사람들의 발걸음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봄마중 손님을 맞이하려던 제주 사람들의 아우성이 가슴에 남습니다.

  그러나 봄 바람 불어오고 봄꽃은 피어납니다. 아무리 그래도 봄꽃은 어김없이 피어납니다. 눈처럼 하얀 설강화 꽃송이들이 무리를 지어 활짝 피어났고,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노란 복수초도 환하게 웃음짓습니다. 봄꽃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사진에 담으려고 이맘 때면 분주하게 이어지던 이런저런 모임들의 발걸음도 없습니다. 찾아오는 사람 없어도 매실나무의 꽃 매화는 활짝 피었습니다. 비교적 개화기간이 짧은 크로커스 노란 꽃도 꽃봉오리를 봉긋이 열었습니다. 눈맞춤을 나눌 사람을 기다리는 꽃들의 기웃거림이 안타깝습니다.

○ 그래도 봄 바람 불어오고 봄꽃은 피어납니다. ○

  그래도 봄 바람 불어오고 봄꽃은 피어납니다. 도서관도 박물관도 평생교육관도 생태체험관도 문화유적지도 문을 닫아 걸었습니다. 장례식장에도 결혼식장에도 사람의 발걸음이 줄었습니다. 사람들은 너나할 것없이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길을 나섭니다. 마스크 없이는 박물관에도 생태체험관에도 들어설 수 없습니다. 끝이 보일 듯하다가 다시 가물거립니다. 그래도 지금 봄꽃들처럼 우리의 길을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다음 주에는 늦춰진 대학이 다시 문을 엽니다. 모두 봄꽃처럼 건강하고 찬란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멀리 다른 나라에서 우리 땅으로 공부하러 찾아온 외국 유학생들을 포함한 모든 젊은 그들의 아름다운 얼굴, 환한 웃음 가득 담은 그들의 온전한 입 모양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봄 바람 불어오고 봄꽃은 피어납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겨낼 건강한 힘을 모으는 것 이상으로 더 필요한 일은 없어 보입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 체력을 다지는 일 아닐까 싶습니다. 어차피 사람보다 식물보다 더 많은 개체수를 가지는 미생물의 세계입니다. 미처 알지 못하는 미생물들의 세계. 완벽한 퇴치 방법을 찾는 것 못지않게 건강한 공존의 방법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깊은 숨 고르고, 체력단련장으로 서둘러 나가겠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에 담은 사진은 위에서부터 설강화, 매실나무 종류, 영춘화, 산수유, 복수초입니다.

  모두 건강하시기를 다시 한번 기원합니다.

- 그래도 어김없이 피어나는 봄꽃에 고마워 하며 3월 2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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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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